(2026년 3월 20일)
얼마 전, 한 대학 후배가 나를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호찌민을 찾았다.
예순을 훌쩍 넘긴 그는 여전히 중동을 무대로 무역 일을 하고 있다.
그와 처음 만난 곳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었다.
1991년, 낯선 땅의 출장지에서 우리는 업무로 처음 마주쳤다.
그 인연은 어느덧 35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그는 드물게 대리 직급으로 종합상사 테헤란 지사장을 맡고 있었고, 나는 한 제조업체 수출부 과장이었다.
같은 그룹 계열사 직원이면서 대학 동문이라는 관계가 우리를 빠르게 가까워지게 했다.
그는 테헤란 지사장 임기를 마치자마자 이란에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한길만 달려온 결과, 지금은 국내외에 여러 채의 건물을 보유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우리는 서울이나 호찌민에서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며, 가족의 소식까지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다.
그는 언제나 수수한 차림으로 나타난다.
티셔츠와 편한 바지, 그리고 운동화.
겉모습만으로는 그의 삶을 짐작하기 어렵다.
호찌민에도 비슷한 성향의 지인들이 몇 있다.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균형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혼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이 됩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다져온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의 아들은 스타트업을 창업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에서 투자까지 유치했다고 한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가’이다.
최근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알게 된 스님과 함께 티베트의 산길을 걷고 있다.
부부가 함께 시작한 사교춤도 어느덧 6년째다.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다 보면, 운동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고 한다.
우리 부부와 함께 한 점심 자리에서도 대화의 중심은 늘 같았다.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벌 때는 앞만 보고 달리면 되지만, 쓸 때는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됩니다..”
“괜히 잘못하면 돈 자랑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내가 식사를 대접하려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형님, 오늘은 제게 기회를 좀 주십시오.”
베트남에서 26년을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도 요즘 자주 떠올리는 질문이 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어디에 머물게 될까.
우리는 여러 조건을 떠올린다.
교통, 병원, 자연, 산책로, 그리고 사람들.
함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거리와, 혼자 걸을 수 있는 여유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부부가 함께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 부부의 분명한 방향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일지도 모른다.
헤어지기 전, 그가 남긴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행복해야 할 형님의 남은 인생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말은 조용히, 그러나 쉽게 사라지지 않는 울림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