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티 프렌즈 (Mighty friends)

by 해송

나는 "마이티 (Mighty)"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마이티 게임 (Mighty Game)"을 좋아한다.

중늙은이가 무슨 게임이냐고?


마이티는 대학 신입생 시절 배운 트럼프 카드놀이다.

마이티는 70년대 학번들이 즐겼던 놀이로, 4명이 플레이하는 "사마"나 3명이 플레이하는 "삼마"도 있지만, 그 재미가 5명이 다 같이 즐기는 "오마"에 비길 바 못된다. 이 게임에서는 통상 "마이티"라고 불리는 "스페이드 (Spade) 1번" 카드가 게임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기에 마이티 게임이라고 불렀다.


4종류 (스페이드(spades, ♠), 다이아몬드(diamonds, ♦), 하트(hearts, ♥), 클럽(clubs, ♣))의 무늬카드 각각 13장에다 조커 1장을 더해, 총 53장의 카드로 플레이한다.

오마의 경우, 다섯 사람이, 세 사람과 두 사람으로 두 패로 나뉘어서 시합을 한다.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10장의 카드를 손에 쥐고, 룰에 따라, “주공 (게임을 주도할 사람)”을 정하고, 주공 1명과 그의 친구 (Friend)가 한 패 (“여당”)가 되고, 나머지 세 사람이 다른 한패 (“야당”)가 되어 “점수 카드 (A, K, Q, J, 10, 총 20장)”를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한 게임을 하는 놀이다.

카드는 크게 마이티, 조커, 기루다 (으뜸 카드), 점수 카드, 조커 콜, 기타 일반 카드의 6가지 종류로 구분되는데, 카드 중에서 힘이 센 순서는 마이티, 조커, 기루다 순이고, 기루다는 어떤 무늬이든 주공이 정할 수 있다.


반시계방향 순으로, 주공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숫자와 기루다로 공약을 부르는데, 경매방식처럼 숫자를 가장 높여 부르는 사람이 주공으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16점 다이아몬드를 부른 사람이 주공으로 결정되면, 기루다는 다이아몬드로 정해지고, 여당은 점수 카드 총 20장 중 16장을 확보하겠다고 공약을 하는 셈이 된다. 게임 결과, 야당이 점수 카드 5장 이상을 확보하면 여당의 공약은 깨어지게 되고 야당이 승리하게 된다.

이 경우, 주공은 야당 두 사람에게, 프렌드는 야당 한 사람에게 정해진 금액을 지급해야 된다.

반대로 여당이 승리하면 주공은 야당 두 사람으로부터, 프렌드는 야당 한 사람으로부터 일정액을 수령한다.


마이티 게임은 야당과 여당 간에, “마공”, “싸인”, “조콜”, “초간”, “기간”, “역기”, “물조”, “노기” 등 다양한 전략 전술과 심리전이 등장하는 두뇌 싸움이기에,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20240808_121018.jpg
20240808_123418.jpg
20240808_122032.jpg
20240808_123915.jpg
20240808_125635.jpg
20240808_130323.jpg


나에게는 동네 “꼬치” 친구들도 있고, 고교 친구들도 있지만, 내가 한국에 가면 반드시 최소한 한 번은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대학교 1학년때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 네 명이다. B10반 친구들이었기에 “B10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저마다 살아온 궤적은 다르지만,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나이 들어서도 마이티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군사정권 시절이라, 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군사훈련을 가르치는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교련과목은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큰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곤 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100명이 넘는 정도의 학생들이 수업을 같이 받기에, 맨 앞 좌석에서 맨 뒷 좌석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고, 강의를 하는 교관의 목소리가 맨 뒷 좌석에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마이티를 좋아하던 같은 반 친구들은, 교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맨 뒷좌석 의자 뒤 바닥에 둘러앉아 교련 수업시간에 마이티를 즐기기도 할 정도로 마니아들이었다. 가끔씩 이 광경을 보고 터져 나오는 다른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긴장을 하면서 플레이를 했지만 운 좋게도 한 번도 교관한테 들킨 적은 없었다.


당시 마이티 마니아들은 캠퍼스 내 계곡 바위 주변에 앉아 마이티를 즐기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잔디밭이나 학생회관 등 둘러앉을 장소만 있으면 종종 마이티를 즐기곤 했다.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에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마이티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한 직장 상사는 바로 그날 퇴근 후 부서 내 5마 모임을 소집할 정도였다. 그만큼 마이티 게임은 대학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마약과도 같은 묘하고 강한 흡입력이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 한 동안 수시로 퇴근 후 직장 상사들과 밤늦게 마이티를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내가 직장 상사들에게 인기를 얻은 것은 순전히 마이티 때문이었다.


B10 친구들이 늘 나의 한국방문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마이티 때문이다. 내가 나타나면 그 친구들은 자연스레 모이게 되어 있다.

친구들은 내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이티 멤버의 한 구성원으로서 내가 필요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마이티 게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귀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내가 한국에 가면 반드시 최소한 한 번은 “B10 5마 모임”이 성사되는 것이다. 나이 들어 공유할 수 있는 취미나 놀이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친구들은, 각자 일정 조율 후에, 어렵사리 "행사" 일정이 정해지면,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린다.

1년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이루어지는 놀이이기에 "행사"라고 부를 만하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 되기에,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한 대접을 받는다. 우리 다섯 사람은 마이티 프렌즈 (Might Friends)다.

아마도 누군가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모임에 참석할 수 없게 되거나, 먼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는, 우리는 5마를 즐길 것 같다.


다양한 두뇌 싸움을 해야 하는데, 다들 예전만 못하다. 예전에는 없던 실수가 자주 나온다. 실수가 나오면 같은 편 친구로부터 치기와 농담 섞인 혹독한 비난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낙담하기도 한다.

천 원 단위의 돈이 오가는 놀이임에도 불구하고, “기차 비 잃었다”, “비행기 타고 돌아갈 돈 다 잃었다”라고 놀리기도 한다. 열받아, 바깥에서 담배 두 대 피우고 오는 친구도 있다.


늦은 오전에 만나 놀기 시작하는데, 한 친구는 라면과 김치를 준비하고, 한 친구는 빵을, 나는 주로 김밥을 사 간다.

모두들 점심 먹는 시간도 아까워 일사천리로 점심을 끝낸다.

타지방으로 이동해야 하는 친구도 있기에, 오후 다섯 시 전후로 놀이를 마치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간다.

딴 돈은 모두 테이블 위에 놓이고, 잃은 돈은 천 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다시 되돌려 가져간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친구나 염색한 친구들을 만나면, 각자 살아온 과거, 현재, 미래가 보인다.

친구들은 저마다 살아온 인생 스토리가 있고, 우리는 그 스토리를 존중하고 인정해 준다.

우리는, 우리가 공유해 온 추억들을 회상하기도 하고, 또 만나는 순간의 새로운 스토리가 우리들에게 더해진다.


담배 못 끊은 친구도 아직 있지만, 대부분 이제는 술도 반주 정도로만 곁들인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고, 운동과 여행에 대한 대화도 자주 나눈다.

만나지 못한 지난 수개월 동안 지내온 시간들에 대한 보따리가 풀리고, 축하와 위로, 격려와 박수가 이어진다.


최근 한 친구가 카톡 대화방을 통해 내가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보다는 마이티 게임이 그리운 것이다.

다음 주, 나는 마이티 프렌드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간다. 나도 그날이 기다려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우 (新友)의 행복을 바라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