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말경 입양기관을 통해 해외로 입양 보낸 신우와 새끼 강아지 4마리는, 이후 나의 계속되는 분주한 일상으로 인해 한동안 잊고 지냈으나, 소중한 정을 나누었던 추억으로 인해 가끔씩 문득 그립고 생각나는 때도 있었다.
당시 신우를 가족으로 거두어들였던 동기는, 제대로 먹지 못한 그녀의 핼쑥한 모습으로 인한 측은지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마주친 촉촉이 젖은 그녀의 눈망울이 내 뇌리에서 계속 아른거렸던 이유가 더 컸다.
그녀 가족과의 가슴 아픈 이별 후유증으로 인해, 다시는 적어도 새로운 “가족의 연”은 맺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또한, 앞으로 혹시 주인 없는 개와 마주치더라도 눈빛만은 서로 교환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만나는 새로운 강아지가 있다면 동네 이웃으로 인사와 최소한의 정만 나누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나의 남은 인생 여정도 명확지 않은 마당에, 다른 생명체의 부양을 책임지는 무게를 감당할 자신과 사랑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적당히 즐기다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행 등으로 일정 기간 베트남을 떠나는 상황은 부차적인 이유였다.
우리 동네는, 도심에서 좀 떨어진 외곽지역으로 공기가 맑고 번잡하지 않은 조용한 환경이기에 상주하는 사람들 보다는, Second House로서 주말에 가족들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낯선 사람이나 반려견을 만나면 눈에 띄고, 평소 못 보던 강아지들도 주말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이웃 강아지와의 만남과 헤어짐이 자연스럽다.
금년 4월경 아침 산책 중, 평소 보지 못한 조그만 강아지 4마리가 풀밭에서 놀고 있었다.
신우 강아지 4마리와 오버 랩 되었다. 마치 그들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기 그지없었다.
주인집에는 밥을 챙겨 주는 아주머니가 한 분 있었는데, 이놈들은 어찌나 먹성이 좋은 지 늘 배가 통통했다.
붙임성도 좋아, 몇 번 만난 뒤부터는, 멀리서 내가 휘파람을 불면 쏜살같이 달려온다.
우리 부부가 조금 놀아주다가 산책을 떠나면, 계속 놀아달라고 4마리가 졸졸졸 우리를 따라온다.
이들은 주인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학습효과를 떠올리며 깊은 정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레 절제했다.
얼마 있다가 보니, 한 마리가 보이지 않더니, 다음번에는 다른 한 마리가 또 보이지 않는다. 두 마리가 다른 집으로 분양되었다고 한다.
남은 두 마리가 왠지 조금은 쓸쓸해 보여,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산책 갈 때 음식이나 먹거리를 조금 나눠 주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뒤, 남은 두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다음 날 그 집에서 밥을 주는 아주머니 표정이 무척이나 어둡다. 남은 두 마리 강아지를 누군가가 말없이 데려갔다고 한다. 단지 내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데려간 것 같다고 한다.
그 집도 단지 내 여느 집들처럼, 특별한 외곽 경계를 구분 짓는 담이 없이 엉성한 나뭇가지 울타리 너머로 풀밭이 있어 강아지들은 자연스레 바깥 풀밭에서 뛰어놀곤 했다.
뭐라고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모르던 우리도, 우리 강아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면서 말없이 돌아왔다. 주인 눈에 밟힐 강아지를 두 마리나 몰래 훔쳐 가다니 주인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조그만 강아지들에게 세숫대야만 한 큰 밥그릇에 쌀국수와 흰 밥을 듬뿍 담아주던, 그 아주머니의 슬픈 표정이 자꾸 생각난다.
잃어버린 사람은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하겠지만, 훔쳐간 사람은 불법행위로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혹시 자신의 아들, 딸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기쁨을 선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와 정을 나누었던 이들 강아지 4마리가 좋은 환경에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길 기원해 본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 去者必返)과 인과응보 사필귀정 (因果應報, 事必歸正)의 윤회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먼 나라 어디에선가 살고 있을 신우 가족의 행복도 다시 한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