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라의 앨리스
앨리스를 닮은 소녀는 서재의 출구 쪽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그녀는 실링(Scilling)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그 자리는 방금 전까지 서재의 문이 있던 위치였다. 이제는 실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흰색의 빛나는 문의 모습이었다.
실링은 마치 순백의 캔버스 같았다. 그에게 새겨진 금박 장식은 마치 화려한 레이스를 연상케 했다. 그 장식들은 마치 예술 작품 같아, 앨리스의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몸 가장자리를 따라 정교하게 새겨진 금박 몰딩은 마치 고대 신전의 기둥을 연상시켰고, 흰색과 금색의 조화는 마치 겨울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햇살처럼 고요하면서도 찬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에게서 반사되는 은은한 금빛은 앨리스에게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앨리스는 잠시 눈앞의 현실을 잊고, 실링의 모습에 깊이 빠져들었다.
소녀는 뒤돌아보며 미소를 짓고 손을 살짝 흔들었다.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볼게."라고 말한 후 흰색의 문을 열고 서재를 나갔다. 문이 닫히면서 그녀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녀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캐럴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동하자,"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앨리스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순간 책장을 연기하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책들을 쌓아 올려 높은 계단을 만들었다. 책 한 권 한 권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계단이 점점 더 높아졌다. 앨리스는 캐럴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천장까지 올라가자 테어도어(Theodoor)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붉은 모습이었다. 그의 팔과 다리는 강인하고, 표정에서는 진중함이 엿보였다.
"중요한 역할을 맡았군," 캐럴이 말했다.
테어도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경계를 담당한다는 건 매번 중요하지."
캐럴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물었다. "시간이 되기 전에는 문이 닫혀 있는 건가?"
테어도어는 신중한 눈빛으로 캐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 문을 열 거야. 그러니 신중을 기하도록 해."
앨리스는 테어도어의 말을 듣고 긴장된 표정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진지한 태도는 그녀에게 압박감을 주었다.
캐럴은 테어도어의 충고를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조금 후에 또 보자고."
테어도어는 그의 손잡이를 끼릭거리며 대답 대신 행동으로 인사를 표현했다. 앨리스는 그의 육중한 몸집에서 풍기는 묵직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캐럴은 다시 앨리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다른 문으로 들어갈 거야," 캐럴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안심시키려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앨리스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샛길이 있었다. 은은한 빛으로 둘러싸인 샛길은 어딘가로 이어지는 듯 보였다. 캐럴은 앨리스를 샛길로 이끌었다. 샛길의 끝에는 막다른 벽이 있었다. 그 벽은 균일한 크기의 갖가지 색깔의 원형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장식들은 은은하게 반짝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캐럴은 벽에 대고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두 사람, 남자 한 명과 소녀 한 명이요." 캐럴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캐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의 모든 원형 장식들이 캐럴과 앨리스를 향해 그들의 눈동자를 향했다. 원형 장식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눈동자들은 캐럴과 앨리스의 크기를 눈대중하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벽이 일부 갈라지며 벽을 연기하던 두 사람이 꿈틀대며 튀어나왔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자연스러웠다. 두 사람과 캐럴은 서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두 사람은 앨리스에게도 웃어보였다. 키가 큰 부인과 꼬마 남자 아이였다. 부인의 웃음은 따뜻했고, 꼬마 남자 아이의 웃음은 장난기 가득했다. 남자 아이는 앨리스와 키가 똑같았다. 꼬마 남자 아이는 앨리스에게 여유 넘치는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의 눈은 반짝이며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캐럴은 벽의 빈 자리에 자신의 등을 붙였다. 벽은 마치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앨리스는 캐럴이 한 것처럼 자신을 위해 비어진 듯한 벽의 한 공간에 몸을 붙였다. 그러자 앨리스가 기댄 벽이 점점 조여들어가면서 벽 밖으로 앨리스의 얼굴만 나와있는 상태가 되었다.
"무대장치를 잠깐 확인하고 가자." 캐럴이 말했다.
"알겠어요," 앨리스가 응답했다.
벽은 그 상태로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단단하게 벽에 고정된 상태로 몸이 위로 조금씩 향해갔다.앨리스를 둘러싼 벽을 연기하는 사람들은 꿈틀거리며 캐럴과 앨리스를 위로 들어올려주었다. 그들의 손길은 부드럽고도 힘이 넘쳤다. 앨리스는 그 중 천장을 연기하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앨리스에게 윙크를 해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앨리스는 조금씩 올라가는 동안 그의 미소를 떠올리며 안심했다.
작가의 말
무대 장치의 마법 같은 힘을 통해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습니다. 앨리스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정신적인 탐험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