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전염

지킬 박사와 파라다이스

by MIHI

지킬 박사는 땅에 흰색 덩어리를 뱉어냈다.


흰색 덩어리 위로 비가 쏟아졌다.


그것은 꿈틀거리더니 세포분열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포분열의 결과로 하나로 합쳐지는 대신,


그것은 여러 덩어리로 나뉘어 갔다.


이제 길바닥에는 수많은 달팽이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징그러워하며 구역질을 했다.


달팽이들은 저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 숙주를 찾는 것처럼, 가까이 있던 한 중년 여성의 발에 민달팽이 하나가 닿았다.


민달팽이는 곧바로 그 여자의 발에 흡수되어 버렸다.


여자는 갑자기 슬픔에 겨워 축 처진 상태로 무기력하게 목적 없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달팽이를 손으로 잡으려던 남자아이에게도 변화는 일어났다.


달팽이가 남자아이의 손에 흡수되고 달팽이 껍질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이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아이를 끌어안은 어머니도 곧 무기력증에 감염되어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발을 질질 끌고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경찰관들은 이 상황을 지켜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지킬 박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옆을 보니 파라다이스 경은 고개를 숙이고서는, 한 마리씩 달팽이를 주워 모자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 달팽이들은 라크리마 헬릭스(Lacrima Helix)라고 합니다.


무기력증을 끊임없이 전염시키는 종이에요.“


파라다이스는 지킬을 올려다보았다.


”어때요, 지킬.


무기력증을 덜어내니 한결 상쾌하지 않아요?"


정말로 지킬 박사의 몸은 다시 가뿐해졌다.


"네, 정말 개운하네요.“


여전히 달팽이를 주우며, 파라다이스가 말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런던 사람들이 당분간 의욕을 잃어


그 무엇도 하지 않겠어요.


당신의 슬픔에 감염되어서 말이죠."


어느새 경찰관들과 사람들은 모두 의욕을 잃은 사람들처럼 목적 없이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지킬 박사와 파라다이스 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작가의 말


우리 내면의 어둠과 갈등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삼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