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히버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I Sep 26. 2024

케이크 오어 스테이크

CAKE OR STAKE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늦은 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흐린 달빛이 드문드문 비치는 길을 홀로 걷는 여인이 있었다. 손에는 작은 생일 케이크가 들려 있었고, 여인의 치마자락은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도 늦었네..." 여인은 자신의 숨소리가 허공에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을 느꼈다. 긴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는 오로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린 아들 생각뿐이었다.


아들은 오늘 생일을 맞이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일 때문에 생일 축하를 해줄 시간이 없었다. 케이크를 사 들고 급하게 집으로 향했지만, 어두운 밤이 이미 세상을 덮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곧 갈게." 여인은 혼자 중얼거렸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며 나무들이 불길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 길가의 나무 그늘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은 걸음을 멈추고 숨을 삼켰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무시무시한 괴물 염소였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와 커다란 뿔이 달린 염소가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염소의 입에서는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케이크 한 조각 주면 안 잡아먹지." 그 목소리는 마치 바위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로, 여인의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이 케이크는 아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지만, 자신과 아들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게 우리 아들 생일 케이크인데..." 여인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케이크를 잡고 있던 손이 천천히 떨리며, 한 조각을 떼어냈다. 손가락에 묻은 달콤한 크림의 감촉이 더욱 그녀를 슬프게 했다. "아들아, 미안해..." 그녀는 작게 속삭였다.


그녀는 떼어낸 케이크 조각을 괴물 염소에게 던져주었다. 염소는 날카로운 이빨로 케이크를 덥석 물었다. 씹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케이크를 삼킨 염소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를 향해 무섭게 웃었다. "이번엔 봐준다." 염소는 냉정하게 말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괴물 염소가 사라진 후, 여인은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손에는 이제 조각이 떼어내진 케이크가 들려 있었고, 그녀의 마음은 아들의 미소를 떠올리며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일은 꼭 더 좋은 케이크를 사 줄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우리 아들." 여인은 조용히 다짐하며 집으로 향했다.


다음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다시 나타난 염소가 길을 막았다. 여인의 눈이 절망으로 가득 차오르며 염소를 쳐다보았다. "또... 또 너야?"


염소는 똑같이 말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케이크 한 조각 주면 안 잡아먹지."


이번에는 여인의 손이 더더욱 떨렸다. 케이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생존을 위해 다시 한 조각을 떼어내 염소에게 던져주었다. 염소는 또다시 만족스럽게 케이크를 먹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염소는 3번을 더 나타났다.


여인은 더이상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알았다. 다음 모퉁이에서도 염소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여섯 번째 모퉁이에 다다르자, 염소는 다시 나타났고, 여인은 이제 거의 다 떨어진 케이크에서 마지막 조각을 떼어내야 했다.


"이게 마지막이야..." 그녀는 속삭이며 조각을 던졌다. 염소는 여전히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엔 봐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케이크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마지막 길을 걸었다. 마침내, 집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염소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그의 눈이 더 깊은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케이크를 다 줬군. 이제 넌 쓸모가 없어." 염소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여인은 마치 시간 자체가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심장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그녀의 운명은 정해진 듯했다.


염소는 서서히 다가와 날카로운 이빨로 그녀를 덮쳤다. 피할 새도 없었다. 그녀의 비명은 한순간에 어둠 속에 삼켜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염소는 여인의 옷을 주워 입고, 그녀의 모습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커다란 뿔과 발굽을 감춘 채, 염소는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우리 아들, 엄마가 돌아왔어."


가짜 어머니가 된 염소는 천천히 여인의 집으로 다가갔다. 집 안에는 불빛이 켜져 있었고, 아들은 집 앞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엄마!"


염소는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래, 엄마가 돌아왔단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거야..." 아이는 엄마 품에 안기기 위해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오다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는 멈추어섰다.


어둠 속에서 그날 밤의 무서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지만은 않았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아이는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왜 메에에 메에에 소리만 내는거에요?"


"응... 조금 목이 쉬었나 봐," 가짜 어머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돌을 갈아내는 소리처럼 거칠었고, 아이에게는 그저 메에에 메에에 하는 울음소리로 들렸다.


아이는 망설이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아들, 왜 문을 잠근거니?"


가짜 어머니는 문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흔들리는 문 뒤에서 염소 울음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


아이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엄마, 왜 그렇게 울부짖으시는 거에요? 발을 좀 보여줘요. 어디 다친 건 아니죠?"


그 순간, 가짜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편함으로 천천히 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인의 발이 아니었다. 그 발은 단단하고 거칠며, 커다란 염소의 발굽이었다.


아이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이건... 엄마의 발이 아니야..." 아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공포가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문구멍 너머로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이가 마주한 것은 어머니의 다정한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붉게 빛나는 두 개의 무시무시한 눈동자였다.


아이는 그 눈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건... 염소다! 엄마는... 엄마는 잡아먹혔어!" 아이는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이내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재빨리 집 안을 둘러보며 도망칠 방법을 찾았다. "옥상... 비상계단으로 옥상으로 가야 해!" 아이는 다짐하며 안쪽 문을 열어 비상계단으로 뛰어갔다.


아이의 발소리가 계단을 따라 울려 퍼졌고, 가짜 어머니는 문을 강하게 발로 차 부러뜨렸다. "문 열어라, 우리 아들! 이리 와서 엄마 품에 안겨야지!" 그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거칠고 끔찍한 음조로 변해 있었다.


아이는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발걸음이 무겁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침내 옥상 문에 다다랐다. 아이는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가, 문을 닫고 잠갔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아이는 옥상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문 저편에서 들려오는 괴물의 끔찍한 목소리를 들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염소는 엄마를... 그리고 나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둠 속에서 아이는 필사적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래 층에서 점점 더 거세지는 발걸음 소리와 괴물의 목소리는 아이의 두려움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곧 옥상까지 염소가 따라올 거야.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없을까..." 아이는 필사적으로 주위를 살피며, 어딘가에 쓸 만한 물건을 찾았다.


이제 아이는 마지막 결단을 내릴 때가 된 듯했다. 그는 염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


옥상 문 뒤에서 들려오는 두드림 소리와 괴물 염소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아이는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때 그의 눈에 띈 것은 옥상 한쪽에 놓인 물탱크였다. "저 물탱크 위로 올라가야 해..." 아이는 간신히 다짐하며, 물탱크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차가운 바람이 옥상 위를 휘몰아치는 가운데,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물탱크의 줄 사다리를 잡았다. "부디, 이게 나를 숨겨줄 수 있기를..."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줄 사다리를 타고 물탱크 위로 올라갔다. 아이는 물탱크 위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줄 사다리를 끌어올려 감추었다.


아래에서는 옥상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 염소는 네 발로 옥상에 들어서며 두리번거렸다.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들아, 어딨니?" 염소는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하지만 아이는 물탱크 위에서 몸을 최대한 숨기며 숨을 죽였다.


염소는 한참 동안 옥상을 두리번거리며 아이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염소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옥상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물웅덩이. 그 물웅덩이에 비친 것은 바로 물탱크 위에 있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거기 있구나..." 염소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염소는 특유의 네 발굽을 사용해 물탱크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였지만, 염소는 마치 고양이처럼 균형을 잡으며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는 그 광경을 보자 공포에 질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염소가 올라오면... 난 끝장이야!"


아이는 물탱크 위로 올라올 때 윤활제를 챙겨왔었다. 아이는 급히 그것을 집어 들고, 떨리는 손으로 물탱크 아래로 윤활제를 뿌리기 시작했다. 윤활제가 물탱크 표면에 번지며 미끄러운 막을 형성했다.


염소는 계속해서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염소는 고함을 지르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오르려 했지만, 물탱크 표면이 너무 미끄러워 쉽게 올라올 수 없었다. 분노에 찬 염소의 눈동자는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염소는 올라가는 걸 포기하고 아이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그러나 염소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 붉은 눈동자는 옥상 한편에 놓여 있던 낡은 도끼를 발견했다. 염소는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도끼를 향해 다가갔다. "좋아... 네가 그렇게 도망치고 싶다면, 내가 다 부숴버리겠다."


염소는 도끼를 들어 올리고, 물탱크를 향해 내리찍기 시작했다. "쾅!" 도끼날이 물탱크의 쇠붙이에 박히며 큰 소리를 냈다. 아이는 공포에 질려 물탱크 위에서 바라보며, 점점 물탱크에 생겨나는 금을 보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저 염소가 물탱크를 부수면...!" 염소는 도끼로 생긴 금을 발굽으로 짚어가며 물탱크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탱크에는 점점 더 많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금에서 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염소는 물이 새어 나오는 물탱크를 기어오르며 흉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여기서 도망칠 수 없어, 꼬마야. 내가 널 꼭 잡아먹을 거다!"


염소의 붉게 빛나는 눈은 잔혹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입가에는 흉측한 미소가 번졌다. "거기 숨어봤자 소용없다, 꼬마야."


아이는 숨이 막힐 듯한 공포 속에서 물탱크 꼭대기에 몰리며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염소의 발굽이 물탱크를 타고 오르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는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옆에 있는 피뢰침이었다. "저기... 저기라면...!"


아이의 마음은 절박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물탱크에서 뛰어올라 피뢰침을 붙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피뢰침은 차가웠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끝까지 올라갔다.


피뢰침 위에 도달한 아이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염소는 이제 거의 다 올라와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발굽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이는 피뢰침 꼭대기에 매달리며 숨을 헐떡였다. "이제...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그때, 갑자기 하늘이 번쩍였다. 차가운 바람이 잠시 멈추고, 아이의 눈앞에 금빛으로 빛나는 사다리가 하늘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다리는 빛을 발하며 아이 앞에 도달했고, 아이는 망설임 없이 그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마지막 기회야. 꼭 살아남아야 해!"


사다리를 오르는 아이의 손은 저려왔지만, 마음은 간절했다. 그는 하늘을 향해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하지만 뒤에서 염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를 가든 널 잡을 수 있다, 꼬마야."


염소 역시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를 쫓아 금빛 사다리를 기어오르며, 사악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올라간 후, 아이는 사다리 위에서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염소는 다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케이크 한 조각 주면 안 잡아먹지."


갑자기 염소의 손이 닿은 부분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금빛으로 빛나던 사다리가 마치 생크림처럼 하얗게 부풀어 올랐다. 그 부푼 부분은 점차 변색되며 녹슬기 시작했다. "이건... 이건 뭐지?"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염소는 더 이상 그 이상한 현상을 버티지 못했다. 그가 손을 뻗은 부분이 점점 더 약해지더니, 결국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염소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의 괴로운 비명 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사라져갔다.


이윽고, 물탱크에서 떨어져 내려온 물이 점점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물탱크의 붉은 물이 점점 더 퍼져나가며 옥상 전체를 물들였다. 아이는 그저 하늘을 향해 사다리를 계속해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하늘로, 더욱 높이 오르기 시작했다. 사다리가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가진 유일한 선택은 계속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어둠은 점점 옅어지고, 아이는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전래동화 ‘해님 달님’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기회를 찾아 쉼 없이 달려가는 모든 이들에게 

금빛 사다리가 내려와, 절망의 끝에서 빛을 따라 오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콰이어트 프리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