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편집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마라톤

by 비루투스

*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1)



루틴과 하루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2)

나는 공항에서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고, 날마다 피로와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근무가 끝나면 아무리 피곤해도 보충제를 마시고 헬스장에 간다. 스트레스와 카페인에 절어 있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통해 몸의 긴장을 풀지 않으면 불면증이 찾아오고, 피로한 상태에서 보충제 없이 운동하면 코피까지 터진다.

"왜 그렇게까지 운동하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는 것보다 몸을 혹사하고 푹 자는 것이 정신 건강에 낫다. 그리고 패턴에 익숙해지면 생각보다 견딜만하다. 수동적으로 당하는 스트레스는 나를 갉아먹지만, 스스로 받아들이는 고통과 인내는 에너지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삶의 가능성은 한층 더 확장될 것이다.

세상에는 그보다 힘든 일이 훨씬 더 많고 어느 정도의 한계는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뺀 나머지 부분만 고민하면 될 일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에 수반되는 체력소모를 보충해 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짧은 시간에 운동을 밀도 있게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기초대사량이 높은 편이라, 일반적인 식사 수준의 영양 가지고는 몸이 감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이 끝나고 나면 기본 보충제에다가 필요한 영양제들을 파우더로 혼합하여 물과 함께 섭취한다. 그러면 좀 살만하다.

야간 근무가 끝난 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충제를 먹고, 하체와 복근 위주로 운동한 후 다시 영양을 보충한 후 깊은 숙면에 취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깊이 잠들고, 일어나면 또 다른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해야 하는 것들을 시작한다.



러닝과 트라우마

그래서 말인데,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에까지 몰아감으로써, 내 안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3)

내가 사는 곳은 인천의 러닝 명소로 불리는 곳이다. 사방 어디서나 러닝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마라톤 동호회 사람들과 훈련하거나 대회에 나가기도 한다. 일단, 나는 잠에서 깨어나면 커피를 마시고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으로 다시 하루를 준비한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면 러닝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적당한 신발을 고른다.

세상은 바라는 대로 돌아가는 길은 잘 없지만, 러닝을 할 때만큼은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내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페이스를 조절하며 몸 상태가 괜찮다면 스피드를 중점으로 달릴 것이고, 좀 무겁게 느껴지거나 다음날 훈련이 있다면 조깅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달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과 기억을 떠오르고, 그때만큼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토로할 수 있다.

과거의 나는 몸이 약한 편이었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했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유행병이 돌 때마다 앓아눕는 쪽에 속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체형부터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고3 2학기부터 조금씩 달리기를 시작했고, 자기 전에 팔 굽혀 펴기와 복근운동을 했다. 처음엔 형편없는 자세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체력이 붙고 몸이 서서히 변해갔고 그에 따라 자신감도 조금씩 생겼다.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 팔 굽혀 펴기와 복근, 달리기가 주가 되었던 체력 테스트에서 순위권에 들기도 했었고, 사람들에게 '괴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바벨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가 얼굴에 떨어뜨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나는 무게에 깔린 채 악을 쓰다가 겨우 들어 올렸다. 그러고 나서 거울을 봤는데, 입 주위에 하얀 가루가 묻어있었다. 그것은 바벨에 부딪혀 깨진 치아가 가루가 된 것이었다.

그날 밤, 온몸에 열이 나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바벨을 억지로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척추에 무리가 간 것 같았다. 이후에는 오른쪽 어깨가 수시로 욱신거렸고, 그때마다 나는 저린 어깨를 부여잡고 근육을 풀어야 했다. 그리고 걸음을 뗄 때마다 무릎이 아파왔고 보호대 없이는 정상적으로 걷기가 힘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폭식과 담배로 이어지며 몸무게는 90kg까지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지만 준비하던 시험에서도 연이어 미끄러지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무지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현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헬스장 트레이너가 보호대를 차고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언제부터 몸이 아팠냐고 물었다. 나는 "다친 지 몇 년 지났지만, 아직도 계속 통증이 엄습해 와서 포기한 채로 살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유심히 내 모습을 보더니 "그 정도 시간이면 이미 근육은 회복되었을 것이고, 회원님에게는 심리적인 리스크가 더 큰 것 같다."라며, "계속 보호대를 차고 걸으면 근육이 약해지니 앞으로는 보호대를 빼고 걷는 연습을 해보라."라고 말했다.

처음에 그 충고를 듣고 보호대 없이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아팠다. 하지만 통증이 오더라도 참고 걸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시험 삼아 달리기 해보았는데 더 이상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아직도 부상 트라우마가 남아있어 바벨을 잡으면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대신 턱걸이와 딥스 같은 운동과 팔 굽혀 펴기를 병행하고 있고, 달릴 때는 기록보다는 무리하지 않고 완주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적어도 나는, 주어진 만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고. 지금까지 그 싸움을 피한 적은 없다.

그때도 그랬지만 그 무게는 지금도 여전히 버겁다.


아모르파티


운동화 소리와 호흡소리와 심장의 고동이 뒤엉켜, 독특한 폴리 리듬을 만들어 나간다. 4)


러닝 전에는 반드시 스트레칭하고, 특히 고관절을 최대한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좌식 활동이 길어지게 되면 몸이 경직될 수밖에 없는데, 러닝 할 때 고관절이 뻣뻣하면 자세가 무너지게 되어 무릎, 허리, 발목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코어 근육, 허벅지 근육, 장딴지 근육을 꾸준히 단련해야 충격을 완화하고 속력을 낼 수 있고, 상체 근육이 받쳐줘야 호흡을 편하게 하고 자세에 안정성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달릴 때 또 다른 자신과 끊임없이 의사소통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헤드셋을 끼고 하루키처럼 Rock 음악을 선택한다. 지면을 느끼며 발끝을 붙이고, 감각을 온전히 흡수한다. 땀은 비처럼 흐르고, 신발 속까지 스며든다. 다리에 탄력이 붙고, 리듬을 따라 발놀림이 빨라진다. 잉베이 맘스틴의 광기 어린 기타가 울릴 때, 심장은 북처럼 울리고 내 속의 짐승이 깨어난다.


힘에 부친다고 도중에 쉬어버리면 돌아가는 길은 더 멀게 느껴질 뿐이다. 이 구간에서는 속도를 줄이더라도 끝까지 버텨야만, '그곳'에 이를 수 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다.


석양이 주변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나는 '선악의 저편'을 향해 달려간다.



©참고문헌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2016.12.15. >

1) 36p

2) 19p

3) 41p

4) 32p

5) 40p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5)




< 마라톤 >

대회가 시작된다.

후회가 밀려온다.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심장은 더욱 힘차게 뛰고,

리듬은 끊어지지 않는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보이는 않는 '끝'을 마주하고,

침묵 속에서 나는 '나'를 만난다.

어제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젖힌다.

두 발이 강하게 땅을 박차고,

모든 생각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오직, 앞으로 나아갈 '힘'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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