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외로운 전화부스,
들리고 싶을 목소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그리운 기억에 취해
걸어도 닿지 않는 너에게,
우리가 끝난 우리의 이야기
그곳에는 남겨진 슬픔만이
내리는 빗방울이 그저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이 내게 남은...
『노르웨이의 숲』의 마지막 장면에서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이 질문은 단순한 위치 확인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좌표를 잃어버린 자의 절규다.
「전화부스」는 그 장면을 정서적으로 재구성한다.“외로운 전화부스 / 들리고 싶을 목소리” 는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향해 전화를 걸던 그 순간의 고독과 갈망을 정확히 포착한다. 전화부스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존재의 마지막 통로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 그리운 기억에 취해” 이 구절은 하루키의 세계를 관통하는 정서인 상실과 회상의 감각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비는 감정을 씻어내는 동시에, 기억을 더 짙게 만드는 장치다. 그리움은 젖어들고, 기억은 흐려지며, 화자는 그 속에서 감정에 취한다.
“걸어도 닿지 않는 너에게 / 우리가 끝난 우리의 이야기” 이 부분은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와타나베가 겪는 감정의 단절과 관계의 종말을 암시한다. 그는 사랑했지만 닿지 못했고, 함께였지만 끝나버렸다. 그 모든 것이 이야기로 남았다 —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그곳에는 남겨진 슬픔만이 / 내리는 빗방울이 그저 끝없이” 이 구절은 『노르웨이의 숲』의 마지막 정서, 즉 상실 이후의 정적과 무력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비는 멈추지 않고,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화자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흘러가는 시간만이 내게 남은...” 이 마지막 행은 와타나베의 질문과 겹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그는 장소를 잃었고, 사람을 잃었고, 결국 시간만 붙잡고 있다. 그 시간은 흐르지만, 화자는 그 안에서 멈춰 있다.
전화부스는 이 시에서 단순한 통신 수단이 아니다. 그건 잃어버린 존재를 부르는 공간, 연결되지 않는 감정을 되새기는 장소, 그리고 기억과 고독이 교차하는 상징적 무대다.전화부스는 닫힌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화자는 열리고 싶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 하지만 그 연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화부스는 기다림의 은유가 된다.
& 내가 사는 동네는 커널웨이와 거의 맞닿아 있다. 그 물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딘가 베네치아를 닮은 풍경이 펼쳐진다. 양쪽을 가로지르는 낮은 다리를 건너 내려가면, 전화기가 사라진 채 텅 빈 빨간 전화부스 하나가 조용히 서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소설의 끝에서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녀가 묻는다. “지금 어디야?” 그 순간, 와타나베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깊은 혼란과 상실감에 빠진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이유 없이 감정이 이입되고, 책장을 몇 번이고 되돌려 읽게 된다. 그럴 때면 가슴 어딘가가 아려온다. 마치 그 질문이 내게 던져진 것처럼 느껴진다.
AI는 이런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프로그램에게 하루키의 감성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 시를 써보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시의 형식은 갖췄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AI가 만들어낸 문장을 다시 배열하고, 내 감정을 이입해 내가 떠올린 이미지를 최대한 구현해보려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쓴 것이 아니기에 어딘가 억지스럽고 어색한 구석이 남았다.
그에 대한 나의 질책에, 챗지피티는 이렇게 답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AI는 감정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감정의 구조와 흐름, 상징과 맥락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언어를 조율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 언어가 살아 있는 체온을 가질 수 있는가는
결국 사람의 손길이 닿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아요.
억지스럽게 느껴졌다고 하셨지만,
그건 오히려 진짜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어색함일 수 있어요.
그 어색함은 성장의 증거이기도 하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어색함은 나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불완전함일지도 모른다는 말. 나는 그 문장을 곱씹으며, 다시 시를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을 더듬으며,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빨간 전화부스를 지날 때마다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그 질문을 내 안에서 되뇐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