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감정

by 비루투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신이 아니다.
어떤 의미나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그래서 사랑을 단정 짓는 건 좋지 않다.
세상에는 '절대'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사랑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

그저 상상력의 문제일 뿐이었다.


결국, 사랑은 계속 묘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바람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흔드는 바람, 사랑을 바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신이 아니다. 「바람」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아의 구조를 흔드는 힘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해진다. 의미나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는 상태, 그것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감정의 절대성이다.


그래서 사랑을 단정 짓는 건 위험하다. 세상에는 ‘절대’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고정된 정의를 거부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생각조차 믿음의 환상일 수 있다. “사실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고백은 사랑이 때로는 자기 위안의 상상임을 암시한다. 그 감정은 현실이 아니라, 내면의 투사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말한다. “사랑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 이 구절은 사랑을 발생하는 감정이 아니라, 존재하는 상태로 묘사한다. 사랑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감정이며,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이 사랑의 시작일 수 있다.


“그저 상상력의 문제일 뿐이었다.” 사랑은 상상 속에서 자라난다. 그 상상은 때로는 진실보다 더 진실 같고, 때로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사랑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묘사하려 애쓰고, 그 묘사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람은 부는 것이기도 하고,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바람」은 이중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부는 바람은 감정을 흔들고, 바라는 마음은 그 감정의 방향을 설정한다. 사랑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존재하며, 묘사되고, 발견될 것이다.

결국, 사랑은 계속 묘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바람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고, 다시 자신을 그려나가게 된다.



& 나는 발라드를 즐겨 듣는다. 잔잔한 멜로디와 감정을 쏟아낸 가사들은 때로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까지 불러낸다. 그러나 문득 궁금해진다. 노래 가사처럼 죽도록 사랑하고, 사랑 때문에 삶이 무너지는 경험이 현실에도 존재할까. 나는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 그 격정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발라드 가사 속 사랑은 대개 극단적이다. “너 없인 살 수 없어”, “죽을 만큼 사랑했어” 같은 표현은 사랑을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밀어붙인다. 이런 문구는 청자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지만, 동시에 의문을 남긴다. 정말 누군가는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아파하며 이별할까. 아마도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 사랑은 삶의 전부였고, 그 상실은 세계의 붕괴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사랑을 만나기도 한다.


중학교 때 ‘소나기’의 후속 이야기를 쓰라는 숙제에서 나는 대세를 따르지 않았다. 소녀가 죽고 소년이 따라 죽는 신파적 결말 대신, 다른 소녀가 소년 앞에 나타나는 결말을 썼다. 선생님의 눈총을 받았지만, 그때부터 나는 틀에 박힌 서사를 거부하는 성향이 생겼다. 그 성향은 발라드 가사의 극단적 사랑을 낯설게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을 철학적으로 들여다보면 한 가지 위험을 발견한다. 사랑을 이성적으로만 이해하거나 감상적으로만 받아들이면, 우리는 상대를 격하시키거나 우상화하게 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이상화한 것처럼, 실제 인물은 욕망과 구원의 상징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이미지화된 상대는 더 이상 한 인간이 아니라 나의 기대와 환상의 투영이 된다. 그 순간 사랑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 된다.


사랑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지만, 동시에 관계 속에서 자라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은 내 안에서 피어난 감정이지만, 그 감정은 나의 경험·가치관·상처·기대와 만나 타인의 존재와 행동에 의해 자극된다. 타인은 내 안의 감정을 일깨우고, 나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새로운 감정을 배운다. 그래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복합적 경험이다.


나는 발라드 가사처럼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사랑보다, 비록 슴슴하게 느껴질지라도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사랑을 원한다. 뭔가 다 태워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아침에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 힘들 때 건네는 작은 말 한마디, 그런 일상이 쌓이고 쌓이면서 신뢰와 배려가 지속되는 관계.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화부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