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소망도, 의지도, 욕망조차도 없는 인간이기를
뭐하나도,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으면서도
악을 품을 대상조차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면,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갈 출구도 없고, 다른 사람도 될 수 없는,
벌레를 부러워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울리는 것만이 이로운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서도 숨기고 있지 않는가?
거울 앞에 섰을 때에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는가?
어떤 진실조차 완벽히 마주할만한 자신이 있는가?
내면에는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것뿐이다. 오로지 그것뿐이다.
아름다운 것을 의식하면 할수록
죄 없이도 그냥 죄인이 되어버린,
나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의 예배당에서
아무런 일도 없는 도시의 좁은방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시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을 응시하는 고백이다. 시인은 삶의 동력이라 여겨지는 소망, 의지, 욕망조차 내려놓고자 한다. 그것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비우려는 시도다.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고, 끝낼 수도 없으며, 심지어 악을 품을 대상조차 곁에 없는 상태. 이 극단적인 고립 속에서 시인은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방향도 목적도 없는 절규이며, 존재의 흔적을 확인하려는 마지막 시도다.
시인은 벌레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생존의 본능조차 부러워지는 상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고통이 되는 순간이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묻는다.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외부 세계보다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더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진실은 어쩌면 내면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인은 말한다. “단지 그것뿐이다. 오로지 그것뿐이다.” 진실은 남아 있지만, 그것을 꺼낼 힘은 없다. 그것은 존재의 마지막 잔해처럼 남아 있다.
시의 후반부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과 죄의식이 교차한다. “아름다운 것을 의식하면 할수록 / 죄 없이도 그냥 죄인이 되어버린” 이 구절은 의식 그 자체가 죄의 시작이라는 역설을 품고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시인은 죄인이 된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운명이며, 존재의 감각이 곧 수렁의 시작임을 말한다.
그리고 시인은 장소를 묘사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의 예배당에서 / 아무런 일도 없는 도시의 좁은방에서” 이 두 공간은 고립과 침묵의 상징이다. 예배당은 신을 기다리는 공간이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도시의 좁은방은 삶이 가득해야 할 공간이지만, 아무 일도 없다. 시인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어디서든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구절은 시 전체를 하나의 부조리극으로 봉인한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는 오지 않는다. 고도는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기다린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존재의 습관이다. 기다림은 삶의 방식이 되었고, 고도는 실체 없는 구원, 혹은 끝나지 않는 질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절망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을 인식하는 존재의 고백이며,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마지막 흔적이다. 시인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도,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자신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