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빛과 어둠이 만나면 색채가 태어나듯이
적과 청이 섞이면 다양한 빛깔이 피어나
백과 흑이 맞서면 강렬한 대비가 생기지
적은 열정과 용기와 사랑을 상징하고
청은 평온과 심오와 지혜를 나타내고
백은 순수와 청결과 무죄를 의미하고
흑은 어둠과 욕망과 죽음을 내포하지
각기 다른 색채를 가진 네 명의 친구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가장 행복했었고
무색무취 같던 나에게도 빛을 비추었어
우리의 우정은 영원할 거라고 믿었었지
하지만 나에게는 색깔이 없었어
뜨겁지도 않았고 차갑지도 않았어
그저, 나는 나만의 빛을 찾고 싶었어
그들이 아무런 대답 없이 떠나갔을 때
나는 내 안에 어떤 무언가도 다 사라졌고,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자처럼
어둠 속에 갇혀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었지
빛이 너무 부셨지만 어둠에 머무를 수 없었어!
드디어, 나는 순례를 떠난다.
그들과 재회하고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과거가 되었다.
드디어, 나는 순례를 마쳤다.
그들과 이별하고 그녀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것이 나의 현재가 되었다.
드디어, 나는 순례에서 돌아왔다.
그곳엔 어렴풋이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은 기적소리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색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성격일 수도 있고, 감정의 결일 수도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고유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그 믿음을 흔든다. 색을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 ‘무색’이라 느끼는 주인공 쓰쿠루는, 정체성의 결핍과 상실을 겪으며 내면의 어둠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 여정은 「빛과 색채를 찾아서」에서 시적으로 재현된다.
시의 화자는 네 명의 친구—적, 청, 백, 흑—을 통해 색채의 상징을 펼쳐낸다. 이들은 각각 열정, 지혜, 순수, 욕망을 상징하며, 쓰쿠루의 친구들인 아카(赤), 아오(青), 시로(白), 구로(黒)의 성격과도 맞닿아 있다. 시의 첫 연은 괴테의 『색채론』을 인용하듯,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색이 태어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현상이 아니라, 감정과 존재의 상징으로서 색을 이해하는 철학적 접근이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무색무취”로 표현된다. 이는 쓰쿠루가 친구들 사이에서 느낀 소외감과 동일하다. 그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색도 없다고 느끼며,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시에서 “그들이 아무런 대답 없이 떠나갔을 때”라는 구절은 소설 속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절연을 떠올리게 한다. 그 상실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자아의 붕괴이며,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자처럼”이라는 표현은 쓰쿠루가 겪은 무의식적 고통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후 시의 화자는 “순례”를 떠난다. 이는 쓰쿠루가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떠난 여정과 겹친다. 시의 구조는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며, 쓰쿠루의 감정 흐름과 시간의 층위를 반영한다. “그들과 재회하고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는 구절은 시로의 비극적인 죽음을 암시하며, 쓰쿠루가 마주한 진실의 무게를 담고 있다. “그들과 이별하고 그녀와 결혼하려고 했다”는 현재의 선택은, 사라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쓰쿠루의 결심과 맞닿아 있다.
마지막 연에서 “기적소리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은, 하루키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와 회복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것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어둠을 통과한 자만이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이며, 색채를 되찾은 자의 귀환을 의미한다.
결국, 「빛과 색채를 찾아서」는 하루키의 소설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과 감정을 시적 언어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색을 잃은 자가 빛을 찾아가는 여정은, 쓰쿠루의 순례이자, 우리 모두의 내면적 탐색이다. 색채는 타인에게서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상실과 고통, 사랑과 선택의 층위 속에서 스스로 피워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색은, 빛과 어둠이 만나 탄생한, 가장 인간적인 색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