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마라톤, #실연, #여정
정재욱의 ‘가만히 눈을 감고’는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이 떠난 뒤에도, 습관처럼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노래다. 나는 그 가사를 좋아하지만, 그만큼 깊게 아픔을 겪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사람이 내게 머물렀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점점 희미해지고, 감정이입도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진다. 나는 강해진 걸까, 아니면 무뎌진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영화 「중경삼림」의 경찰 663은 말한다. “실연하면, 난 조깅을 한다. 조깅을 하면 몸속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오글거리는 대사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울면서 조깅이 가능할까.
울 때는 호흡이 가빠지고 리듬이 깨진다. 조깅은 일정한 호흡과 페이스를 요구하니, 감정의 격랑 속에서 억지로 리듬을 맞추려 하면 몸은 더 빨리 지치고 호흡은 흐트러진다. 그래서 실연의 감정에는 조깅보다 질주가 더 어울린다. 울음을 억누르며 규칙을 지키는 조깅보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전력으로 달리는 질주가 감정을 몸으로 토해내는 데 더 적절하다.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리고
발끝은 아스팔트를 두드린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비처럼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차라리 마라톤을 권하고 싶다. 일단 출발선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뛰기 때문에 속력을 내기가 힘들다. 그리고 간격을 맞추지 않으면 다른 이들과 충돌할 수도 있으므로 주변을 의식하면서 뛰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몸의 리듬과 호흡이 일정해진다. 좀 간격이 벌어질 때쯤 다리는 자동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뛰고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생각과 감정을 흘려보내면 된다.
어제의 나는, 너와 함께 걸었고,
오늘의 나는, 너 없이 달리고 있네.
너와 나눴던 말들이 바람결에 흩어지고,
차라리, 다리가 내 것 같지 않은 게 나아!
달리다 보면 체력은 소진되고 다리는 무거워지며 호흡은 거칠어진다. 마음이 괴롭다면 그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몸 전체로 느껴보라. 시간이 지날수록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고, 특히 레이스 중반을 지나면 그 간절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내쉴 때마다
이별은 가까워지고, 사랑은 멀어져 간다.
이 호흡의 반복은 감정의 거리감을 물리적 리듬으로 표현한 것이다. 거리마다 아른거리는 너의 흔적을 지나며, 텅 빈 그곳을 뒤로하고 한 발 또 한 걸음 내딛는다. 이 장면은 기억을 지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려본 것이다.
피니시가 2km쯤 남았을 때는 전력질주를 준비하라. 그리고 결승선이 보이면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당신 자신을 태워버려라. 그렇게 뛰고 나면 어깨와 다리에 쥐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마음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멈추지 말아 달라. 걷고, 달리며, 감정을 넘고, 기억을 지나, 결국은 다시 자기 자신을 회복해 가는 여정이 될 터이니...
힘들다고 바닥에 주저앉기보다는, 잠시 구석으로 가서 숨을 고르고,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셔보자.
그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 그래도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발짝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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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나왔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비는 언제부터 쏟아지기 시작했을까?
옷이 젖어버린 채, 문득 드는 어떤 생각
이제는 그것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것
그렇게 멀리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긴 여행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지만,
목적지에 가기 전까지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존재했던 무언가를,
단단히 묶고 또 묶어서 어디엔가에 두는 일
비는 다시 내리고,
코끝에 전해지는 젖은 나뭇잎 냄새
—방 안은 나왔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