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절친 로열젤리 동업자, '김대표'
내가 아는 벌 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김대표*', 그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선생님이나 사장님보다는 대표라고 부르는 게, 허락 없이 본인을 이곳에 불러낸 예우로 적당할 것 같다.)
내가 자기보다 한두 살 더 먹었다고 다짜고짜 '성(형의 사투리)'이라고 부르며, 늘 붙임성이 있게 대해주는 게 좋았다. 그래서 소탈한 그를 가끔이라도 만나면 그때마다 늘 즐겁고 유쾌하였다.
김대표는, 한마디로 죽자 사자하고 벌에게 달려들어, 벌을 어르고 다그친 끝에 절친한 친구로 만들어서, 값비싼 로열젤리를 무지하게 많이 생산하는 집념의 사나이다.
그를 안지 삼사 년쯤 지나서, 그가 삼십 대 중반에 목공일을 하다가 큰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것과 그 충격과 좌절로 인해 한동안 아무 일도 못하던 때, 이웃에서 벌 키우는 모습을 보고 양봉에 도전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경 속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부인과 어린 남매를 먹여 살려야겠다는 절실함으로 벌과 함께 살아오며, 결국 우리나라 양봉농가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자가 되었다. 티브이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겉보기와는 달리 벌을 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김대표처럼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에게는 너무 험한 일다. 꽃 따라 무거운 벌통을 싣고 옮겨 다니고, 수시로 수백 통의 벌통을 들춰서 일일이 돌봐주고, 벌을 털고 벌집을 채밀기에 넣어 꿀을 떠 드럼통에 담아 옮기는 것은 사지가 멀쩡한 정상인에게도 만만하지 않은 고된 일이다.
김대표는 결국 벌꿀보다는 '로열제리'를 택했다. 로열젤리 생산은 상대적으로 정교한 손기술을 더욱 필요로 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여왕벌 애벌레를 한 마리씩 선별하여 손톱만한 컵에 이식하여 키우면서, 일벌들이 먹이샘에서 분비하는 여왕벌의 먹이 로열젤리를 아주 작은 스푼으로 떠내는 작업이다. 대부분 양봉가들이 감히 엄두를 못 내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영역으로, 아주 섬세한 노동과 틀에 짜인 일정으로 인해 생산 과정에 압박감이 심하다.
잔손과 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으로 노동 시간에 비하면 생산량은 아주 적지만, 벌꿀 생산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다. 또한 꿀은 꽃피는 시기의 기상 조건에 따라 생산량에 변동이 크지만, 로열젤리는 비교적 기상과 환경 변화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김대표는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한다. 백여 개 벌통에서 사흘 전에 이식한 로열젤리 틀을 빼내어 부인과 서너 명 직원들에게 전해주고, 또 다른 수십 통 벌통에서 여왕벌이 될 애벌레를 골라낸다. 기술자들이 로열젤리를 수확한 작은 컵에 애벌레를 한 마리씩 이식하면 여왕벌을 배양하는 벌통에 넣어준 후, 전체 양봉장에서 벌의 활동을 점검하면서 일과를 마치면 오후 4~5시가 된다. 점심때 잠깐 쉬는 시간 외에는 하루종일 작업에 매달린다.
12월 하순에 삼사백통 벌통을 싣고 전남 강진에 마련한 제2양봉장으로 내려가 1월 말부터 4월까지 로열제리를 생산한다. 4월에 집이 있는 경기도 안성으로 올라와 아카시아꿀을 뜬 후, 로열젤리를 다시 시작해 10월까지 생산한다. 총 9개월 동안 계속 로열젤리를 생산을 하는 셈이다. 보통 다른 로열젤리 생산 양봉가들은 6월부터 8월까지 작업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 기간이다. 김대표 특유의 열정과 끈기, 그리고 땀 흘려 배우며 갈고닦은 양봉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로열젤리는 가장 세밀한 노동력이 필요한 품목으로, 중국이 그 생산기술에서는 서양보다 앞서 있다. 국가에서 장려하고 대학에서도 많은 연구를 한다. 김대표는 불편한 몸으로 중국의 생산 현장과 연구실들을 여러 번 다녀왔다. 그들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여건에 맞게 그 기술을 활용한 결과로 2020년 이후에는 연간 2만 병(병당 200g, 소매가 5만 원) 이상을 생산하는 전무후무한 신기록을 세웠다.
과다하게 로열젤리를 생산하면 벌을 너무 혹사하여 벌 건강을 해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로열젤리는 벌의 고유한 번식 습성을 활성화시켜 얻는 것으로, 부강한 꿀벌 공화국에서만 다량의 로열젤리를 얻을 수 있다. 젖소에게 영양이 풍부한 신선한 목초와 청정한 자연환경이 제공되었을 때, 양질의 우유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대표에겐 그가 키우는 벌이 사라지거나, 집단 폐사하는 일이 없었다. 그가 친구처럼 친숙하게 관리하는 꿀벌은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활발하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간 쌓아놓은 업적으로 유명세도 많이 타서 뽐낼만하고, 벌어놓은 소득으로 좀 쉬면서 일도 줄일 만 한데, 김대표는 늘 분주하다. 그가 친구처럼 다루는 일벌만큼이나 부지런하고 겸손하다. 그리고 솔직하다.
다행인 점은 김대표 아들이 대학 졸업 후, 한동안 학원 사업을 하다가 이제 아버지의 벌 치는 사업에 전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물론 김대표가 그동안 서너 명의 애제자를 배출하여 그들이 양봉업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그가 쌓아온 소중한 가업으로 대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모두에게 매우 뜻깊은 일이다.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로 칭송하고자, 김대표를 여기 소개한 것이 아니다. 꿀벌을 지배의 대상이 아닌, 같이 사업을 이루어 나가는 동반자로 예우하는 김대표의 태도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겸손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벌과 같이 노동하면서, 늘 웃는 모습의 그가 부럽다. 그가 벌 치는 사람들과 함께 끝까지 꿀벌을 지켜나가길 기대한다. 아니, 고개 숙여 정중하게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