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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이랑 Nov 19. 2024

덕두원의 봄

 토종벌과 살던 빛바랜 추억

  덕두원의 봄  

    

  차가 밀리기 전에 서둘러 서울로 올라가자는 아내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의암댐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핸들을 꺾었다. 의암호의 잔잔한 물은 하얀 봄빛을 내비치며 군데군데 노랗고 붉은 봄꽃의 색깔을 머금고 있었다.


  강원도 춘성군 서면 덕두원리. 당시에는 의암댐에서 서면 방향의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어, 삼악산 등산로 입구를 지나 낚시터와 매운탕 집이 위치한 의암호 지류에서 왼쪽으로 꺾어, 거기서부터 버스로 한 삼십 분 올라가서 닿게 되는, 이십 호 정도의 농가가 사는 산골 마을이었다. 햇수를 계산해 보니 무려 17년 만에 다시 찾는 길이었다.


  철쭉이 유난히 연분홍으로 화사하게 피어 있는 부친의 산소에서, 두 아이는 꽃을 꺾어다 산소 상석 옆의 돌 화병에 꽂고는, 그 옆에서 흙장난하느라 부산했다. 나는 풀이 없이 밋밋한 산소 주변에 뗏장을 부리나케 심고는, 땀을 훔칠 겨를도 없이 하산하자고 가족들을 재촉했다.


  서울에 살면서 벌써 오 년 동안이나, 춘천 근교 선산에 있는 부친의 묘소에 봄가을로 성묘를 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오늘, 유달리 눈부시게 따스한 햇살 아래, 돌 화병에 담겨있는 소담스러운 철쭉꽃을 쳐다보다가 문득, 빌딩 숲에 가려있는 회사 사무실과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살면서도 항상 마음의 도피처로 묻어두었던 덕두원 마을에 대한 추억과 그 마을에 처음 들어가던 날, 산 마을에 분홍빛으로 피어 있던 봄꽃들의 정경이 떠올라, 오늘은 벼르고 있던 그 마을을 꼭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마을을 빙 둘러 서있는 산이 나무들의 초록빛 새순으로 싱그럽게 채색되는 사이로, 철쭉꽃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던 어느 봄날, 비어있는 방앗간 집 사랑채를 빌려 숙소로 정하면서, 이 마을에서의 일 년 간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바로 직장에 팔려 가기 싫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도피하듯 밀고 들어온 마을은, 그런 기분으로 지내기에는 좀 과하다 싶게 빼어난 풍광을 지닌 한적한 산촌이었다. 도시에 찌들어 살아왔던 처지에서는, 주위의 울창한 산들과 집 앞의 바위 계곡으로 줄기차게 흐르는 맑은 물을 접하고 있는 이곳이, 평소에 흠모하던 웅장한 자연을 만끽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홀로 방앗간 집의 사랑채에 누워 잠을 청하던 첫날밤, 아래쪽 계곡에서 밤새워 드세게 흐르는 물소리에 한밤중 불현듯 잠에서 깨었다. 그리곤 멀리 산 깊숙한 곳에서 서럽게 우는 소쩍새의 사려 깊은 울음소리에 마음이 아득하여, 미닫이문을 열고 한동안 달빛 아래 어둠에 접혀있는 앞산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해 여름휴가를 맞아 산골에서 고생하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놀러 온 친구들이 내가 첫날 겪은 것과 똑같은 감상에 젖어, 밤새 물소리와 산새 소리에 취해있던 점으로 보아서는, 이곳에서 나만 홀로 유별난 감흥을 느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보는 *토종벌  사십여 통을 각지에서 분양받아 키우기 시작한 건, 대학에서 전공 공부 중에 꿀벌에 흥미와 애착이 많았다는 점이 배려되어 내게 주어진 지자체의 큰 혜택이었으며, 한편으로는 관찰 내용을 학술적으로 기록하여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된 일이기도 하였다.     

* 토종벌은 아시아에 분포하는 동양종 꿀벌(Apis mellifera)을 우리 고유한 꿀벌로 지칭하는 것으로 토봉, 한봉, 재래종 꿀벌이라고도 불린다.


  "꿀벌이란 애들은 말이야, 얘네들도 사회활동을 하는 놈들이야. 좀 더 알고 보니깐, 신기한 구석이 아주 많더라고!"

  전국의 꽃을 찾아다니며 양봉을 는 사촌 형이 있다는 같은 대학 친구인 K가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겨울방학에  찻집에서 뱉은 첫말이었다. 이어서 한 시간 동안 설명 겸, 사업제안하며 떠든 말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꿀벌은 벌 종류 중에서도 특히 발달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암컷인 여왕벌과 일벌, 그리고 수컷인 수벌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식물이 꽃에서 나오는 꽃꿀과 꽃가루를 수집, 벌통에 저장하여 애벌레를 키움과 동시에, 이 저장된 먹이로 겨울을 난다.

  꿀이 많이 수집되는 시기에는 사람이 꿀을 채취할 수가 있는데, 비교적 고가로 판매할 수 있다. 따라서 벌을 쳐서 꿀을 따는 일은 동식물을 키워 곡식과 과일 혹은 고기를 직접 취하는 농사일이나 축산업과는 다른 차원이다.

  벌을 꽃에서 꿀을 따오도록 잘 돌보아 주는 대신, 노동의 결과로 수집한 꿀을 이들과 재분배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벌을 치는 일은 지극히 적이며, 도덕적으로도 손색없는 양심적 경제활동임이 분명하니, 취직을 보류하고 당분간 이 사업에 매진해 보자.

   

  그렇게 열변을 토하던 K가 막상 덕두원이란 산골 마을에서 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자 슬며시 빠져, 당시에는 벌이가 좋다는 대기업 산하의  보험회사로 들어갔다. 술에 취해 객기에 그려본 산골의  벌치기 생활을 결국은 나 혼자서 감당하게 되었다. K는 취직할 당시 자신이 어울렸던 급진적 운동 성향의 친구들에 의해, 돈만을 좇아 화려한 화이트칼라로 전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젊은이들이 귀한 산골 마을에, 건네는 술을 마다하지 않는 수더분한 도시 청년이 흘러들었다는 소식을 접한 마을 총각들이, 거의 매일 밤 찾아와 술추렴을 하고 갔다. 그리고 관례가 된 농번기 품앗이에 성의껏 묵묵히 봉사해 준 나의 노력으로 해서, 이웃처럼 지낼 수 있는 쓸만한 외지인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봄날 아침 호기를 부려 삽 하나 들고 꽤나 높은 앞산의 가파른 산길을 오른 적이 있었다. 제법 굵은 칡뿌리 한 아름을 캐서 내려와 칡즙을 한 도가니나 우려내어, 지나는 마을 사람들한테 한 병씩 선사한 것도 도시에서 잔뼈 굵어 살았다는 나만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발한 책략이 되었다. 텃새가 드셀지도 모르는 시골 마을에서 그들과 소탈하게 어울려 생활해 가는 데 점차 익숙해졌다.     


  아빠가 이런 곳에서 일 년이나 살았다는 사실에 애들이 적잖은 호기심을 보이며 차창 너머를 두리번거렸다. 일정이 지체되어 오후 늦게 서울로 돌아가는 차들에 시달리게 되면, 서너 시간 족히 밀리게 되는 경춘 국도라, 내심 가족들 동의 없이 향하는 이 길이 애초부터 마음 편한 행로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라디오를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 그때의 그 풋풋한 산바람을 마음껏 만끽하자는 자세로 임했지만, 정작 생각보다 길이 딴판으로 달라져 있었고, 고만고만한 시멘트 포장길이 갈리는 곳에서 몇 번씩이나 길을 잘못 들게 되자 황망한 심정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동안 그때의 지형을 곰곰이 되짚어 보기에 이르렀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것은 별 어려움 없이 헤쳐 나갔는데, 정작 주업이 되어야 할 벌을 키우는 일에는 경험 부족에서 오는 난관이 많았다. 사람의 지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감각으로 움직이는 벌들의 습성과 행동은, 사전 준비한답시고 읽었던 관련된 책의 내용만으로는 도저히 소화해 낼 수가 없었다.

     

  남쪽 지방에서 트럭에 실려 온 토종벌 벌통을 집 앞 백 평 남짓 빈터에 놓은 지 사나흘 지나서였을 때였다.

   화창한 봄날 점심 무렵 갑자기 몇몇 벌통에서 나온 벌 떼들이 수천수만 마리의 무리를 지어서 한동안 벌통 주변을 하염없이 날아다녔다. 먼 곳에서 옮겨온 벌들이 이곳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꺼번에 나와, 주변 지형을 익힐 겸 날아다니고 있다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정작은 그게 아니었다.

   

  한동안 벌통 주변을 나는가 싶더니 점점 뒷산 쪽으로 이동해 가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벌이 하늘을 빙빙 돌며 서서히 산 중턱으로 움직여 가는 광경은 절로 감탄을 유발하는 웅장한 장면이었지만, 정작 벌들을 되돌리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그냥 오금이 저려 쩔쩔매고만 있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본 건넛집 청년이 허겁지겁 뛰어와선, 연기를 피우면 벌들이 냄새를 피해 돌아갈 거라며, 양동이에 젖은 볏짚을 욱여넣어 불을 붙인 다음 벌을 좇아 산 중턱으로 뛰어가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이 노력도 수포가 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여름철 집 지을 곳을 찾는 벌들을 유인해서 벌무리를 받을 요량으로, 노인들이 미리 산에 가져다 놓은 빈 벌통에라도 들어가기를 염원했으나, 그 벌통들조차 외면하고는 산 너머 도저히 추적할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허탈한 심정에 도망한 벌통을 들쳐 보았더니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사라진 빈 벌통에는 부서져 내린 앙상한 벌집만이 남아 있었다. 아마 트럭에 실려 이동하던 중에 통나무로 만든 벌통이 차의 진동을 받아 그 속에든 벌집이 심하게 파손되었고, 결과적으로 생존에 위협을 느낀 벌들이 정들어 살던 집을 포기하고, 깊은 산 바위 밑이나 나무 틈으로 이주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예상 밖의 사태에 대해, 아무런 도 마련하지 못한 채 그냥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과, 단순한 감각에 의존하여 행동하며 평면적으로 생활하는 그들이, 내가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다는 생각이 뒤엉켜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     


  분명히 냇물 위로 버스 한 대가 간신히 지날 만한 폭으로 투박한 콘크리트 다리가 있었다. 그리고 다리가 끝나자마자 급경사의 커브 길이 이어져, 한 번에 방향을 잡아 치닫지 못하면 다시 다리 위로 후진한 다음에야 재차 둔덕을 오르곤 하던 시내버스가 기억에 생생한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 근방에는 그 다리가 보이질 않았다. 냇물도 예측을 벗어난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다시 한번 황당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때를 놓칠세라 시계를 보고 있던 아내는 '십칠 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두 번은 변했겠다'며 못 찾을 것 같으면,  포기하고 빨리 가자고 채근하기 시작했다. 모처럼의 추억 여행에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기운 없는 말투로 타이르고는, 멀리 뵈는 산의 윤곽을 어림잡아 다시 산길로 차를 몰았다.     


  벌들이 소동을 치며 도망하는 일이 진정된 후 4월이 되면서, 벌들이 겨울의 지루한 칩거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활발하게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작은 구멍이 뚫어진 벌통 입구를 걸어 나와서는 쏜살같이 하늘로 날아가는 일벌들을 보고 있으면 내 몸의 일부가 그들의 날개에 매달려 하늘로 비상하는 착각에 빠지곤 하였다.


  산속의 이름 모를 꽃에서 꿀을 빨아 배가 봉긋할 정도로 꿀주머니에 담고, 또 몸에 묻은 꽃가루를 뭉쳐서 뒷다리의 털 바구니에 노란 덩어리로 달고 들어오는 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찾아다녔던 무수한 꽃들의 향기가 순식간에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점차 새로 태어난 어린 일벌들이 많아지면서, 벌통들은 언제 멀리서 트럭에 실려 오는 고생을 했냐 싶게 활기에 넘쳐 났다. 점심 무렵 햇볕이 더욱 따사로워지면서 황갈색을 띤 갓 나온 어린 일벌들이 벌통 주변의 얕은 하늘에서 떼를 지어 유영하는데, 이들의 모습은 날개에 부서지는 햇빛과 어울려 산골 봄을 더욱 들뜨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골에서 짧은 기간이나마 오염되지 않은 청년기를 보낸 적이 있었노라고 가족들에게 은근한 자랑을 내비치며 올라왔지만, 아내와 두 아이보다 내가 먼저 깊은 실망에 젖기 시작하였다.

 

  주말을 모처럼 서울에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이쪽에 올라오는 버스에서 일부러 중간에 내려, 산자락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비껴 아침 안개가 걷히는 장면을 콧노래로 음미하며 유유히 오르던 그 산길이 아니었다.

    

  굵다란 자갈을 대충 섞어 급하게 포장한 콘크리트 길, 작년 여름 개울가에서 노닐다 버리고 간 온갖 쓰레기, 차가운 철판으로 급조한 조립식 간이 주택도저히 그때의 분위기와 엇비슷하게도 대비가 되지 않아, 괜히 왔구나 싶은 후회가 들기도 하였다. 그나마 거처하던 방앗간에 언덕 하나로 못 미쳐 떨어져 있는 기와집이 폐허로나마 그 모습이 남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동네에서는 제법 규모가 컸었던 이 집에는 반상회가 있다고 하여 상주하는 손님의 자격으로 한번 들렀던 적이 있었고, 그 집 맏아들이 군대 간다고 베푼 환송 잔치에 청년들과 어울려 밤새워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다가왔다. 기와지붕의 밋밋한 윤곽과 나무 대문 옆에 쓰러진 외양간이 어딘가 눈에 익어 보여서, 그나마 섭섭하던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되었다.     


  "거기 이형 있수?"

  하루 종일 봄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던 날 오후, 모두가 집구석에 처박혀 있기가 지루했던지 청년들 대여섯이 점심때쯤 해서 내가 묶고 있던 집으로 내려왔다.


  비로 인해 별반 할 일이 없다는 핑계에 환한 대낮부터 술타령이 벌어졌지만, 정작 비안개가 서린 산골 풍경이 술맛을 은근히 돋워, 나부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술잔을 빨리 건넸다.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과 스스럼없이 '야~ 자~'하며 격의 없이 말꼬리를 텄고 그런 탓인지, 흥겨운 술자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이런저런 마을 얘기와 각자 소싯적 추억거리를 소리 높여 떠들다가, 결국 두 친구가 취기를 못 이겨 방바닥에 쓰러지면서 술자리가 끝났다.

  그들이 안주로 가져와 처음 먹어 보는 데친 두릅에 엉기는 술기운이 어지러워 마당으로 내려섰다. 하루 종일 내리던 봄비가 그쳐 있었다. 뿌연 물안개와 어둠에 휩싸인 산 쪽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마당 댓돌에 앉아 한밤의 눅눅한 봄바람에 취해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산 쪽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쏟아지던 졸음이 깨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울타리 너머 마늘밭 옆에서 시커먼 커다란 물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검은 물체가 잠시 멈춘다는 느낌과 함께 두 개의 푸른빛 섬광이 번쩍하며 내 눈을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게 '으음' 하는 신음이 나왔고, 계속해서 그 형광빛 섞인 그 눈동자를 마주 보게 되었다.


  놀라서 멈춰 선 나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예리한 살기 대신에, 오히려 욕정에 타는 듯한 열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섬광을 거두고 다시 산 쪽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기는 그 움직임의 잔상에 사로잡혀 얼마 동안을 얼빠진 듯 어둠 속을 바라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코 고는 청년들 옆에 누워서도 어둠 속에서 번득이던 눈빛이 한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었을까?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몸집이 늑대보다는 훨씬 커 보였던 그 짐승은....


  내가 그때 묵었던 사랑채는 문이 합판으로 얼기설기 가려져 있고, 문틈 사이로 비료 봉지가 삐죽이 나와 있는 게 보여, 아마도 마을 헛간으로 쓰는 것 같았다. 방앗간과 안채는 허물어 버렸는지 종적을 감추었고, 그 자리에는 잡초가 무성하였다.

  이곳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 나와 가족들에게 못내 쑥스러워 슬며시 눈길을 산 위쪽으로 돌렸다


  방앗간과 불과 백 미터 정도의 거리로 이웃하던 집 서너 채도 어디론가 사라졌고, 올라오던 길이 산 중턱까지 이어져 '**기도원'이란 큰 간판과 만나는데, 그 뒤로 기도원 건물로 보이는 제법 규모가 큰 이층 양옥 건물과 그 옆에 주차해 있는 한 무리의 승용차들이 보였다.


  고작해야 춘천에서 다니는 시내버스가 하루에 세 번 정도만 왔다 가던 한적한 그때의 산골 모습을 그리고 있던 내 소박한 기대가 번에 무너져 내렸다.

  아내도 남편이 결혼하기 전 한창 젊은 시절 일 년 동안을, 아름다운 멋진 산골에서 지냈다는 말을 누차 들었던 터라, 서울로 빨리 올라가자고 재촉하는 한편으로는, 자못 호기심이 발동한 듯이 보였었다. 하지만, 막상 가까이 바라보는 폐허의 모습과 인근의 조악하게 개발된 모습에, 애초에 기대했던 바에 크게 못 미친다며 실망한 표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몇 번을 망설였지만, 끝내는 전날 밤에 본 산짐승 얘기를 결국 꺼내지 못했다. 덩치가 제법 큰 짐승이 마을 근처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에게 아침나절의 화젯거리로 충분히 관심을 끌 내용이겠지만, 정작 얘기가 나오면 어둠 속에서 보았던 그놈의 모습을 자세히 물어볼 것이고 나는 거기에 맞추어 충분히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타는 듯한 섬광을 내비치던 그 눈빛과 어둠을 사이에 두고 한동안 마주했던 은밀한 시간을 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렷했던 그때의 모습들이 하나둘씩 허물어지는 허탈감에 빠져 부리나케 내려오는 길에, 의암호 매운탕 집 앞에 갑자기 차를 멈춘 것은, 도롯가에 심어진 개나리가 샛노란 울타리로 펼쳐진 너머로, 넓고 잔잔한 호수에 저녁을 기다리는 물고기가 번쩍거리며 물 위로 후드득 박차고 오르는 것을 본 직후였다.


  일 년 동안 그곳에 머무를 기회가 되었던 토종벌 생태조사를 마치고, 유보했던 도시의 생계 터전으로  재출발하기 위해 추억이 어린 산골 마을을 뒤로하여 내려오던 중, 버스 차창으로 내다보았던 바로 그때의 정경이었다.

  그때에도 노란 개나리가 도로 밑으로 길게 흐드러져 피어 있었고, 호수는 기우는 저녁 햇살이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비늘에 반사되어, 하얀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앉았다가, 깜깜해지면 서울로 올라가겠으니, 그리 알아라!"'

  내 목소리가 단호했던 것은 호수를 통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덕두원의 모습을, 이 봄날이 저물 때까지만이라도 다시 곰곰이 되짚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02/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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