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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이랑 Nov 12. 2024

추위 속의 '뭉살흩죽'

꿀벌 공화국의 겨울나기

모든 동물에겐 각자 추위에 얼어 죽지 않고 무사히 겨울을 넘기려는 지혜로운 습성이 있다.


곰이나 박쥐는 가을에 최대한 배불리 먹어 체지방을 축적하고 동굴이나 땅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여우나 토끼는 겨울에 두꺼운 털이 자라서 체온을 유지하고, 철새들은 멀리 따뜻한 남쪽 나라로 이동한다.


물고기나 개구리는 얼지 않는 물속 깊은 곳이나 강바닥, 바위틈 같은 곳에서 체온을 낮춰 동면에 들어간다.

곤충은 몸속에 냉각저항 물질을 축적하고 땅속이나 낙엽 밑, 나무껍질 속에서 휴면 상태에 돌입한다.


집단 사회를 이루는 꿀벌은 휴면이나 동면을 취하지 않고, 부지런히 모아놓은 꿀을 나눠먹으며 여왕벌과 함께 서로 꼭 뭉쳐서 겨울을 난다. 그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독특한 방식이다.


그런데, 기후 온난화로 겨울철 꿀벌의 월동 상황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철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져, 꿀벌 공화국이 와해되는 현상이 예사롭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요즘 시대에는 모든 게 갖춰져서 우리에게 월동 준비랄 것이 별로 없다지만, 예전에는 성큼 겨울로 들어서는 이 맘 때면 사람들 모두가 겨울 준비로 꽤나 분주했다. 사랑방에 수확한 곡식을 들여놓고, 김장을 해서 땅에 묻고, 처마 밑에 땔감을 쌓아 놓았다. 지붕을 여미고, 창호지를 바르고, 두툼한 이불과 옷감을 챙겼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일컫는 꿀벌도 겨울철 혹한에 대비하기 위해, 월동 먹이를 저장한 벌집에 모여 수만 마리가 서서히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꿀벌들은 추운 겨울을 뭉쳐야 다 같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추위에 흩어지면 모두 죽는다. '뭉살흩죽'이 겨울나기를 위한 그들의 한결같은 슬로건이다.


추위에 꿀벌이 뭉쳐있는 모습 *Image generated by OpenAI


꿀벌만이 꿀을 수집하는 이유


꿀벌을 제외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다른 벌들은 꽃을 찾지만, 둥지에 돌아와 따로 꿀을 저장하진 않는다. 말벌도 그렇고, 뒤영벌이나 호박벌, 땅벌이나 쌍살벌 모두가 꽃에서 꿀을 빨아먹기만 하고 수집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겨울에는 이들 무리를 이루는 수많은 일벌들이 모두 죽고 없기 때문이다. 즉, 초겨울에 모든 일벌과 수벌은 다 죽고, 오로지 여왕벌 한 마리만 추위를 피해 땅속이나 두터운 낙엽 밑에서 휴면에 들어가 겨울을 지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따로 겨울에 먹을 식량을 수집해서 저장할 필요가 없다.


일 년 내내 집단 사회를 이루는 꿀벌 공화국은, 구성원인 일벌들이 추운 겨울에 먹을 월동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부지런히 꽃에서 꿀을 모아 놓는다. 저장해 놓은 먹이가 부족하면, 수만 마리의 일벌들이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굶어서 얼어 죽는다. 꿀벌이 쉴 틈 없이 늦가을까지 열심히 일하는 까닭이다.   


겨울철 꿀벌의 체온


꿀벌은 봄부터 가을까지 꽃에서 활동 에너지원인 꿀을 부지런히 모아 온다. 그리고 벌집에서 농축하고 숙성시킨 꿀은 겨울철 소중한 식량이다. 양봉가가 채취하고 남긴 자연꿀에 먹이로 공급한 설탕사료액이 더해져, 풍족한 겨울 식량이 마련된다.


꿀벌이 꿀을 조금씩 빨아먹고 가슴 근육을 진동하면 체온이 올라간다. 우리처럼 심장이 뛰고 내장기관이 움직여 저절로 36.5 ºC 체온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근육을 떨어서 체온을 발산해야 한다. 겨울에 벌통 안에서 꿀벌이 뭉쳐있는 중심부의 체온은 21 ºC이다.


찬 공기에 바깥에 붙어있던 꿀벌은 체온이 떨어지면 안으로 비비고 들어가고, 안쪽에서 충분히 몸이 덥혀진 꿀벌은 바깥으로 기어 나온다. 이들은 겨울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둥켜안고 꿈틀거리며 체온을 나누는 것이다. 시베리아 벌판에서도 충분히 많은 일벌들로 구성된 꿀벌 공화국은 충분한 겨울 먹이만 있으면, 나무 벌통 안에서 모두가 얼어 죽지 않고 건강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


그들에겐 아무 스스럼없이 서로를 품에 보듬고, 먹이와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친근한 동족애가 혹한의 겨울을 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흩어지는 꿀벌 무리


지구 온난화로 겨울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겨울 날씨가 밤낮으로 변덕이 심해졌다. 동면을 취한 다른 동물들이야 조금 온도가 상승하더라도 깊은 잠에서 쉽게 깨어나지는 않지만, 축구공이나 농구공처럼 단단히 뭉쳐서 체온을 유지해야 할 꿀벌에겐 따뜻한 낮 기온에 흩어졌다가, 추운 밤 날씨에는 다시 뭉쳐야 하는 혼선이 빚어지게 되었다.


흩어지면서 많은 일벌들이 버텨야 할 배설 욕구를 못 참고, 영상 온도와 겨울 햇빛에 바깥으로 튀어나가 허공을 날다가 찬 바람에 체온을 잃고 떨어져,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하는 일이 빈번하다. 심지어 여왕벌이 봄으로 착각해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 알을 낳기 시작하고, 일벌들도 덩달아 애벌레를 키우려 어수선해진다. 그 결과로 일벌의 에너지와 체력 소모가 많아진다. 최소한의 활동으로 체력을 유지해야 할 일벌들이 불필요한 노동으로 수명이 단축되어, 결국 겨울을 나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많은 꿀벌 공화국이 무너진다.




추운 겨울에는 꿀벌이 최소한의 대사 활동만 하면서 흔들림 없이 단단히 뭉쳐, 체온과 체력과 수명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온대와 한대 지역의 꿀벌 공화국이 성공적으로 겨울을 넘기기 위해 진화해 온 그들의 고유한 방책이다.


많은 농작물의 꽃가루 수분을 담당하는 꿀벌이 없어지면, 인류는 심각한 식량 위기를 맞는다. 우리나라도 대부분 과일과 채소, 곡식의 수확량이 줄어들고 품질이 떨어져 식량난을 겪게 될 것이다. 꿀벌 공화국이 기후 온난화를 극복하여 무사히 겨울나기를 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은 직접 관리하는 양봉가는 물론 정부기관 담당자와 관련 학자들이 당면한 무거운 숙제다.


인류가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일으키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고 있다. 당장의 편리를 위해 생활 속에서 화석 연료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자원을 훼손하고, 온갖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것이 아닌지 뒤돌아 볼 일이다.


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리지 않도록, 꿀벌이 겨울에 흩어지지 않도록, 한 번쯤 되돌아보며 겨울을 맞이해 보자.      

  

*Cover  Image generated by Ope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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