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으로 태어난 꿀벌은 없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놈 없다'라거나 '열흘 굶은 군자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나 오랫동안 도를 닦은 군자도 궁한 처지에 몰리면, 모두가 생존 본능에 의해 도둑이 된다는 말이다. 최근에도 생계가 어려운 노인이 편의점에서 빵과 과자를 훔치게 된 사연을 접한다. 사람이 이러할진대 다른 동물들은 두말할 나위 없다.
꿀벌도 마찬가지다. 그들 공화국에 식량이 부족하여 위기가 찾아오면, 다른 공화국을 기웃거리며 남이 비축한 먹이를 훔치려는 본능이 작동한다. 많은 벌이 도둑질에 참여하면, 훔치는 벌과 방어하는 공화국 간에 참혹한 전쟁이 일어난다.
꿀벌 공화국 내에서는 서로 이타적인 협력을 하며 꿀벌 사이에 결코 싸움이 일어나지 않지만,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꿀벌 집단 간에 치열한 약탈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꿀을 훔치는 도둑벌에게 잘못을 추궁해서는 안된다. 지구상에서 수천만 년을 살아온 그들의 생존 본능이며,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적자생존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연계에서 꿀벌 공화국 사이에 대대적인 먹이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로 외부의 먹이 자원을 공유하고 독립 관계로 평형을 유지하는 환경에서는, 일부 공화국이 특별히 굶주림으로 위기 상황에 처하거나, 욕심을 부려 죽음을 무릅쓰고 도둑질하는 사태는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꿀벌 공화국 사이의 전쟁은 사람이 불씨를 일으키고, 사람이 부랴부랴 불붙은 전쟁터를 수습해야 하는 황당한 촌극이 벌어진다.
온갖 꽃이 만발하는 계절에 꿀벌의 세계는 참 풍요롭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꿀벌 무리가 열심히 활동하고 번식하며 각자 태평성대를 이룬다. 꽃을 먼저 발견하면 동료를 불러 부지런히 꿀과 꽃가루를 수집해 곳간에 저장한다. 못 찾거나 남긴 먹이는 다른 공화국 꿀벌의 몫이다. 평화로운 선의의 경쟁이기에 직접 싸우거나 다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장마철이나 늦가을에는 산과 들에 피는 꽃이 줄어든다.
수집할 먹이가 없어, 비축해 놓은 식량에 의존해야 한다. 공화국 대부분 처지가 비슷하다. 겨울 먹이로 곳간 깊숙이 쌓아 둔 꿀은 숙성되고, 밀랍으로 밀봉하여서 향기가 벌통 밖으로 새나가지 않기에 도둑벌이 감지하지 못하여 탐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모든 공화국이 궁여지책으로 일벌이 외부 활동량을 줄이고 여왕벌도 알 낳는 횟수를 줄여 긴축 재정에 들어간다.
도둑벌이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즉 벌을 치는 양봉가의 과실이나 부주의가 도둑벌을 유발하여 꿀벌 사이에 패싸움을 일으킨다. 싸움이 일어난 초기에는 쉽게 수습할 수 있지만, 전면전으로 돌입한 이후에는 별도리 없이 공격당한 벌통을 도둑벌이 닿지 않도록 멀리 피신하여 피해를 막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꿀벌 세계에서 만약 공화국 사이에 먹이 약탈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건 꿀벌의 잘못이 아니다. 꿀벌은 꽃에서 수집할 먹이가 부족하면, 본능적으로 어디서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이끌려 날아간다. 꽃이 적은 시기에 우리가 먹던 음료수나 주스 병에 꿀벌이 날아드는 것이 이 때문이다.
꿀벌 무리를 관리하는 사람(양봉가)이 벌이 먹어야 할 꿀을 남기지 않고 송두리째 채취해 간다면, 벌은 식량 부족을 감당해야 한다. 더군다나 꿀을 물어올 꽃조차 없으면 벌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때, 가까이 있는 벌통에서 꿀을 임의로 채취하거나, 벌통을 오랫동안 열어젖혀서 내부의 꿀 냄새를 풍기면, 꽃을 찾아 배회하던 꿀벌들이 도둑벌로 돌변해 일시에 그 벌통에 덤벼들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벌통에 저장해 놓은 먹이가 부족한 것을 우려하여, 대낮부터 설탕액을 부어주면 벌들이 빨아서 옮기는 과정에서 달콤한 냄새가 벌통 주변으로 퍼져나가 도둑벌을 벌통으로 끌어들이는 사태가 벌어진다.
애초에 도둑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우선 꿀벌이 충분한 꿀을 모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여분의 벌꿀을 듬뿍 나눌 수 있도록, 주변에 향기로운 밀원식물을 가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꿀을 분비하는 꽃이 많으면 결코 도둑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꽃을 찾아다니는 벌이 도둑벌이 되지 않도록 벌통 근처에서 꿀이나 당분 냄새가 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함부로 벌통을 열거나, 꿀을 흘리거나, 낮에 설탕물을 먹이로 주는 일을 삼가야 한다.
도둑벌이 생기는 원인은 십중팔구 사람이 벌통 근처에서 벌이 좋아하는 냄새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도둑벌이 생긴 이후에 이를 빨리 수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몇 마리 도둑벌이 벌통 문 앞에서 염탐하는 초기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도둑벌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 벌통 출입구를 벌 한 마리만 간신히 드나들 수 있도록 바짝 좁혀서, 문지기 벌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더해 출입구 앞을 풀잎이나 나뭇가지와 같은 장애물로 가려주면 경계심이 많은 도둑벌이 드나들기가 어려워 습격을 포기하고 물러간다.
문제는 도둑벌들이 문지기의 방어선을 뚫고, 이미 벌통 안에 수천 마리가 침입하여 먹이를 훔쳐가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다.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일벌들과 떼 지어 몰려든 도둑벌들이 남은 꿀을 약탈해 가는 아비규환의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공격을 당한 벌통을 빨리 먼 곳으로 피신시켜야 한다.
만약 이 상태로 계속 방치해 두면, 도둑질에 맛을 들인 수많은 벌들이 연속해서 다른 벌통에 침입하고, 이 모습을 보며 훔쳐가는 꿀 냄새를 맡은 다른 공화국의 벌들도 도둑벌로 돌변하여 연이어 약탈을 시작한다. 결국에는 도둑질이 유행처럼 번져서 끝내 수십 또는 수백 통의 전체 꿀벌 공화국은 처참한 전쟁터로 변하고, 나중에는 도둑질하는 벌과 방어하는 모든 꿀벌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우리의 한순간 방심과 부주의가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도둑인 사람은 없다. 도둑질을 위해 태어난 꿀벌도 없다.
우리의 굶주림은 가족과 사회와 환경의 책임이다. 꿀벌의 굶주림과 도둑질과 싸움은 우리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