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둘 이상의 국가가 통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분단국이 아니어도 일반 국가끼리 합병에 성공하면 통일이라 부른다. 중국사에서 나오는 천하통일이나 우리나라 삼국통일이 대표적 사례다.
근래에 와서 '통일'로 일반화된 '분단국가의 통일'은 이전에 같은 국가가 나뉜 뒤에 다시 통일되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재통일'(Reunification)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꿀벌 공화국에서는 서로 다른 꿀벌 무리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합쳐서 하나로 흡수 통일을 이룰 때가 있다. 아니면 사람이 인위적으로 두 꿀벌 공화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통일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공화국 벌통에 일벌 수가 너무 적어 스스로 생존하고 번식하기 곤란하다는 판정이 내려지면, 양봉가는 다른 공화국 벌통에 인위적으로 합병하는 과감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꿀벌도 당연히 전쟁과 희생이 따르는 급진적 통일보다는 평화롭고 안전한 점진적인 통일을 원한다. 꿀벌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류의 통일 방식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자발적 흡수 통일
서로 이웃한 벌통 중 한쪽이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일벌들 스스로 자기 여왕벌을 포기하고 점차 살던 공간을 떠나 이웃 꿀벌 공화국으로 망명 내지는 투항하여 합류한다. 기가 죽어 불쌍한 자세로 자진 투항하는 벌들을 이웃 공화국에서는 거리낌 없이 기꺼이 받아준다.
보통 개별적으로 합류하지만 극단적인 경우에는 집단이 함께 일시에 투항하기도 한다. 도저히 살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생존 본능이기에, 이것을 굳이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의미로 분석할 필요는 없다.
먹을 식량이 떨어지고, 밖에서 구해올 꿀과 꽃가루도 없어 여왕벌을 비롯한 일벌 모두가 굶어 죽을 처지가 되었을 때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또는 여왕벌이 갑자기 사망한 후, 일벌들이 애벌레 중에서 후대 여왕벌을 새로 간택하여 키우는데 실패하면, 장기간 알을 생산하지 못할 때도 그렇다.
벌통 내부에 침투한 나방, 딱정벌레, 개미, 생쥐에 의해 서식 공간인 벌집이 크게 훼손되었거나, 외부에서 말벌의 공격으로 많은 일벌이 도륙을 당해 공화국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 일벌 수에 못 미치게 되었을 때도 이웃 벌통으로 자발적인 흡수 통일이 이루어진다.
흡수 통일이 될 정도로 공화국이 쇠퇴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흡수 통일 결과로 모두 나가고 텅 빈 공화국의 벌통과 벌집은 각종 병원균과 해충의 번식처가 되어, 이웃 공화국의 위생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공화국의 관리자인 양봉가는 미리 인위적인 통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간을 사이에 두고, 두 꿀벌 무리가 서로 탐색하고 있는 장면
신속한 통일
서로 다른 공화국에 사는 꿀벌들은 상호 이질감을 갖는다.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몸에서 나는 냄새(체취)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벌을 다루는 사람이 한 통에 있는 벌 무리를 일시에 다른 통에 합쳐버리면 두 공화국 사이에 결사적이고 처절한 싸움이 일어나 여왕벌은 물론 양쪽 일벌 대다수가 몰살한다.
그러나, 이렇게 급진적이며 신속한 통일이 가능할 때가 있다. 아주 추운 계절이거나 외부에서 꽃꿀이 많이 나는 시기에 가능하다.
겨울철 또는 늦가을이나 이른 봄철 영하의 날씨에서는 벌들이 몸을 움츠리고 체온을 지키려 안간힘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일시에 다른 공화국 벌들이 몰려와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추울 때 뭉칠 수 있는 벌의 숫자가 많아져 환영할지도 모르겠다.
꽃이 많이 피고 꿀도 많이 분비되는 화창한 봄철에 한 무리의 일벌을 한꺼번에 공화국에 합류시켜도 적대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먹이를 수집해서 저장하는 일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하고, 먹이가 넘치도록 들어오는 기쁨에 들떠 너 나를 구분하지 않고 신나게 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충돌할 이해관계없이 먹이 자원이 풍부한 상황에서는 단시간에 평화 통일이 가능하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빼고, 무작정 급진적으로 통일을 감행하면 공화국 벌통 안이 전쟁터로 돌변해 일시에 양쪽의 벌들이 몰살하는 재앙을 초래한다. 인류의 국가 간 전쟁이 피비린내로 얼룩진 희생을 초래한 것과 흡사하다
점진적 통일
가장 평화적으로 어떤 피해나 후유증 없이 두 공화국을 성공적으로 합병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통일을 모색해야 한다.
예전에는 신문지를 넓게 펴서 벌통 중앙을 막아 양쪽에 위치한 벌 무리가 서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신문지에 바늘구멍을 몇 개 뚫어 놓으면, 이곳으로 서로 이동하려고 신문지를 입으로 뜯어내는 동안 서로 친숙해져, 결국에는 싸움 없이 왕래하면서 한 공화국으로 자연스럽게 융합이 된다. 며칠 뒤에 벌통을 열어보면 이주한 벌들이 사이좋게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 둘 사이에 서로 직접 왕래를 못하도록 방충망 같은 철망으로 중앙을 갈라놓으면, 한동안 서로 싸우지 못하고 망을 통해 상대편 체취와 행동에 익숙해진다. 삼사일 후에 철망을 제거하면 두 공화국은 무난히 하나로 평화 통일을 이룬다.
신속 또는 점진적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쪽 중 한쪽 무리에서 여왕벌을 제거해야 한다. 통일 이후에 두 여왕벌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쪽 여왕벌을 제거하지 않으면 여왕벌끼리 서로 공격하여 모두 죽는 일이 벌어진다. 그 결과로 여왕벌 없는 통일 공화국이 되어 곧 쇠망할 것이라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연방제 통일
연방제 통일은 각각의 자치권을 유지하면서 연방 형태의 국가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한때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제안했던 한반도 통일 방식이다.
꿀벌 공화국에서는 더 차원 높은 연방제에 의한 통일이 가능하다. 구체적 실행 방법은 다음과 같다.
두 꿀벌 공화국을 연방제로 통일하는 모델 : 1 공화국-2 여왕 연방제
(1) 벌통을 세 구간으로 분할하되, 몸이 큰 여왕벌은 드나들지 못하고 일벌만 다닐 수 있는 철망으로 나눈다.
(2) Q1 여왕벌 공화국과 Q2 여왕벌 공화국을 각각 양쪽에 이주시킨다.
(3) 중앙 구간(H)에는 꿀이 가득 저장된 벌집을 채운다.
이와 같이 배치하면 Q1과 Q2에 속해 있는 일벌들은 먹이 공간을 사이에 두고 점진적으로 접근하며 친숙해진다. 가득 저장된 꿀로 인해 적대감보다는 서로 우호적인 자세를 취한다. 두 여왕벌은 각자 영역에서 본연의 임무인 알 낳은 일에 매진하고, 두 영역에서 동시에 많은 일벌들을 생산하기 때문에 이 공화국은 빠른 속도로 번창한다.
만약 두 여왕벌의 이동을 막는 철망이 없다면 여왕은 서로 마주쳐 1:1로 사투를 벌인다. 이때 이미 서로 동화된 일벌들은 절대로 한 여왕벌 편을 들지 않고 철저하게 관망한다. 자칫 두 여왕벌이 동시에 사망하거나 한쪽이 승리하더라도 큰 부상을 입게 되면 통일은 무산되고, 공화국은 소멸할 수밖에 없기에 반드시 두 왕을 분리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통합 연방제는 엄밀히 말하면 '1 공화국-2 여왕 연방제'가 되는데, 이 체제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아 세계적으로 이 방식으로 꿀벌을 관리하는 양봉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존과 번식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꿀벌 공화국은 이웃 공화국과의 통일을 원한다. 그들도 전쟁과 희생이 따르는 강제적이거나 급진적 통일보다는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평화 통일이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