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다
車柱道
우리 집 일 년 농사는 김장이다
늘 손이 빠르지 않다며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아내의 준비과정은
말할 수 없는 정성이 담긴다
해남에 절임 배추 한 달 전에 예약하고
수시로 변하는 가격에 촉수를 곤두세우며
재료들을 차근차근 준비한 후 김장하는 어제는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는 생중계에
쫑긋거리는 귀도 무심한 척 내려놓고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먹을 삼겹살 불판을 켜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
맥주 몇 잔에 무심히 나온 탄핵 이야기에
며느리는 또 탄핵이 되어야 하는지 부끄럽다 하고
슬쩍 거드는 아들도 그렇고
덩달아 아내는 아들 내외의 편이 되고
졸지에 보수 셋의 합창에
“그래도 낼 세금이 많다는 것은
재산이 있다는 반증이니
그런 마음으로 살아라"라고 꼬리를 내리며
단속 못한 내 입에 스스로 경고장을 날린다
바깥 자리였다면
숱한 논리로 열변을 토하겠지만
가족의 자리에는 늘 뒷전이다
전전날은 동창들이 제의한
출판기념회 자리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50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들 생각에
잠이 깬 새벽녘
어떤 말로 따뜻한 축사를 할까
시집에 있는 작가의 말로 갈음할까 망설이다
시인답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시를 지어 축사하는 것이 진심이겠다 싶어
“접면 接 面”을 낭독했다
죽기 전에
바람같이 건들거리며
후회 없이
세상 속을 잘 놀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쯤은
좋아하는 일 다 버리고
무채 썰기
양념 버무려
배추 속까지 거들고
뒷마무리까지 정리하는 것이
세상사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데
68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