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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객잔의 하루

by 차주도

차마 객잔의 하루

눈 뜨면 식사하고
꽉 찬 일정대로
생각 없이 소화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믿던 일상에서의 탈피는 동생과의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동생이 정한 3대 트레킹 중의 하나가 차마고도를 걷는 여행이란다. 10년 전부터 꿈꾸는 비현실적 동생 말이 언제나처럼 무시했어야 옳은데 술기운의 호기였는지,
아니면 치열하게 4년째 싸우고 있는 대기업과의 진실게임에 한 발짝 물러서서 머리를 식히며 재충전의 힘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차마고도를 걸으며 본 자연의 장관은 어떤 사진기도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터무니없는 착각이라는 커다란 사실을 깨달으며
왜 여행자가 발품을 팔아 땀을 흘리며 시간을 만들어 자연 속에 묻히는 낭만이 사치가 아님을 이제야 아는지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도 연신 북미회담이 주가에 미치는 행운이 오기를 바라는,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싫지 않음은 떳떳하게 살고 있다는 자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첫째 날 아침 6시부터 시작한 여행은 난징을 경유하여 쿤밍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쿤밍역에 도착 후 침대열차칸을 이용하여 려강까지 무려 26시간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찾은 숙박업소는 강호동팀이 묵은 객잔으로 한국인에게 유명세를 탔지만 미로 같은 숙소를 들락거리는데 어려움이 오히려 틀에 짜인 려강고성이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지 판단근거는 되었지만 인위적이고 상업적으로 변한 모습, 상인들의 처세가 한번 보는 것으로 충분했고,
수허고성은 려강고성보다는 한적한 장점이 있지만 려강고성의 아류로 보여 밋밋한 마음이었는데 이 또한 이번 여행의 묘미를 반전시키는 소재였을 뿐이다.

수허고성에서 1박 후 차마고도를 가는 초입 매표소에 비상하는 호랑이 동상이 상징적으로 호도협이라는 이름을 연상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고 줄곧 양자강을 끼고 1시간여 본 풍경은 대륙적인 기질답게 자연과 싸우고 싶은 호기로 보일만큼 커다란 산 위에 상상키 어려운 높은 고가도로를 만드는 작업들이 석회질의 양자강을 더욱 누런 흙탕물로 물든 모습이 과연 관광명소로 꾸미는 대안이 맞는지 생각해 본다

왜? 차마고도에 끌렸을까의 궁금점은
어렴풋이 기억된 비단길보다 더 앞선 상로였다는 사실과 그 험한 길을 뚫고 가야만 하는 절박함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교과서적인 발상이 추억되어 뇌구조를 움직였다고 본다
나이 먹었으니 주저거리지 말고 행하는 것이 참하루이니까.

차마고도의 등반은 1시간여 함께 한 말의 도움으로 시작했다
새로운 일행과 점심을 먹고 8두의 말에 올라탄 산행은 잊지 못할 게다
훈련된 마부의 신호에 따라 그 험난하고 협소한 오르막 비탈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정연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르는 말들을 보면서 떨어지지 않으려 꽉 잡은 쇠고삐에 녹물이 든 손, 안장을 풀지 않으려 말 배에 밀착시킨 양다리의 후들거림, 말 등위에서 쳐다본 차마고도의 풍광은 운무의 빠른 위장과 다변하는 기후가 어울려 땀과 함께 배출되는 향연을 보면서 찔리지 않으려 애써 나뭇가지 피하는 몸동작은 전혀 말에게 도움 주지 못하는 이기를 합리화하는 뻔뻔함도 묻혔다.

말과의 트레킹을 끝내고 1시간 30분가량 산행은 꿈이었다
내리막길의 여유와 비축된 체력이 스펙터클 하게 입체적으로 다가온 하늘과 산맥과 바람과 구름이 땀인지 비인지 생각지도 못하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우의는 포기하고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자연이 준 현실에 순응하기로 했다
부드러운 땅을 밟으며 맡는 솔잎향에 마냥 가슴을 열며 도착한 차마 객잔의 1박은 자연이 안주였다

그렇게 수다스러운 술버릇이 바뀌었다
칭다오맥주를 마시며 쳐다 보이는 눈앞의 환상은 마치
꾸벅 졸다가 앞에 보인 자동차에 뒤늦게 브레이크 잡는 아찔함처럼 눈을 감는 순간 교통사고인지 꿈인지 분간이 어려운 상황이 말문을 닫게 하고 주변에서 연신 찍어대는 스마트폰을 뒤로한 채 그냥 쳐다보는 차마 객잔의 풍광은 진정한 술꾼의 안주였고, 눈 내리는 저녁 여인의 옷 벗는 소리였다.

2018.06.13
차마 객잔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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