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불씨가 여전히 짓누르는 2022.12.31일. 형제들이 새벽을 뚫고 한해를 잘 보냈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후쿠오카로 몸을 던진다.
좌측통행에서 가까운 일본이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졌다는 것 외에 대구나. 부산의 중간쯤의 도시 같은 낯설지 않은 하늘과 땅을 보며 늦가을 같은 기온 탓에 잔뜩 껴입은 옷의 무장을 해제하며 일본에서 첫 식사로 백반정식을 먹어보니 섬세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단출한 성향의 맛을 감상하며 온천이 유명한 아소산의 호텔로 향한다.
후쿠오카에서 아소산까지 2시간의 풍경은 삼나무가 지배하는 유럽의 중세 건물들이 우후죽순 빽빽이 박힌 듯 인위적인 산림녹화작업이 만들어낸 동화 속의 시골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우리와 다른 공기를 마냥 즐기다 보니 대관령목장과 유사하면서도 흑우와 누렁소가 유유자적 한 폭의 수묵화가 되고 시커먼 흙 위에 갈대로 뒤덮인 광활한 목장 대관봉에서 바라본 다섯 봉우리 산들이 마치 사람의 형상처럼 구름에 걸쳐진 석양의 노을빛에 반사되는 장관을 보면서 2022년의 마지막 날의 한 컷으로 자리매김한다.
여행의 주제를 온천여행으로 정한 후쿠오카는 어느 곳에서도 하얀 수증기가 하늘로 솟고 크고 작은 온천탕이 삶의 근원을 만드는 도시임에 틀림이 없었다. 부지런한 속도로 3박 4일의 여행을 마치면서 다다미방의 1박을 체험한 아소. 마을의 집들이 온천욕을 위한 생활의 구조로 가족단위의 여행이 최적인 구로카와. 온천을 아기자기하게 상업화한 유후인. 대형온천탕을 체험한 벳푸의 거리를 활보하면서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하이톤의 상냥한 목소리와 공손이 몸에 밴 일본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우쭐 걸림이 심한 나에게 좀 더 겸손해져야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동병상련의 6.25 전쟁과 가난을 뿌리치기 위한 헌신적인 일과 후세의 교육에 사생결단을 내는 인내가 절묘하게 경제강국으로 가고 있는 우리에게 한 번쯤 철저하게 가업을 중시하는 일본의 화(禾)의 문화에서 계승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새해를 맞은 흑토끼의 해에 배워볼 만한 화두로 정진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