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 년 전 한두 번 가족여행의 기억은 의무감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둘째 아들 내외의 제의로 수락한 괌은, 미세먼지의 한국과는 동떨어진 풍광이 자연스럽게 갖춰졌고, 문화가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 다양한 먹거리를 기획한 승민(둘째 며느리)의 노력은 가이드이상의 정성이 담겼다.
마치 세 번째 여행만을 위한 준비처럼 며칠간의 심사숙고 끝에 만들어진 여행일지를 받는 순간 예사롭지 않아 침묵모드로 돌입하고, 여행 내내 유주(둘째 손녀)만을 잘 끼고 돌보는 것이 게으른 나의 참모습을 감추는 허세라 판단하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손녀의 재롱떠는 애교에 푹 빠져 버렸다.
괌여행의 눈에 띄는 특징은 어떤 레스토랑을 보아도 내부를 확인하지 않고는 손님이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고 인테리어도 수수해서 과연 맛집이 맞는지 의심스럽지만 문을 여는 순간 20~30분의 대기 후 식사를 만났으니 빨리빨리 문화에 길들여진 대가가 휴가라는 낭만에 넘어가는 풍경의 한 컷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만난 괌의 날씨는 시간별로 변하는 탓에, 하루의 일과를 긍정도 부정도 망설임 없이 진행하면 된다는 사실을 첫날에 깨닫고, 남부 쪽으로 달리다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간 맥 클라우츠 독일식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쳐다본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15여 명의 회원들이 생일을 축하하며 크게 부르는 노래 세리머니와 미리 준비된 컵모양의 케이크를 주변의 손님에게도 건네는 모습에서 피부색이나 얼굴이 틀려도 배려와 인사가 몸에 배어 있는 문화를 보면서 서로 시선을 피하는 우리만의 예법도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의류사업을 했던 입장이라 괌의 쇼핑문화를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타미, 게스, 캘빈클라인, 로스, 겝등 유명브랜드들의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춘 한국과 달리 창고형 마트에서 손님을 환대하지 않는 재고 떨이 수준의 많은 옷더미 속에서 보물을 찾듯 시간을 투자하여 싸게 명품을 건지는 부지런한 한국인들을 목격하면서 너무나 쉽게 살고 안락함에 길들여진 행복관을 누린다는 편견을 지우고 그들만의 방식을 존중하여야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아들 내외의 쇼핑 덕분에 유주와 가깝게 보낸 긴 시간도 새록새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도착한 곳은 이동식 낡은 컨테이너에 조그만 글씨로 괌의 유명한 어부가 잡은 횟집으로 해석되는 간판을 확인하고 들어간 실내는 어두운 조명에 비친 두 개의 냉장실 안에 참치의 대다수 부위와 문어들의 조합이 무슨 맛이 있을까의 의심은 단박에 사라진다 식사도, 술도 허용되지 않는 좁은 공간이라 차 안에서 간단히 해결한 점심식사는 냉동되지 않은 부드러운 참치가 간장소스 하나만으로도 냉동을 거친 익숙한 참치와는 전혀 다른 식감으로 닿인다 한 팩을 먹고 아쉬워 또 한 팩을 사서 식사를 마친 차 안의 추억 역시 두고두고 기억될 장면이리라.
괌의 명물은 단연코 산호로 덮인 맑은 에메랄드 색조의 바다이리라 그 바다에서 보이는 고기떼들과 유영하다 보면 문득 안데르센이 이곳에 와서 인어공주라는 동화를 착상하지 않았나 생각들만큼 신비이상의 체험이었다.
해 질 녘 석양이 아름답다며 도착한 드 비치는 비치볼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부럽기도 하고, 함께 운동하고 싶은 충동을 모래주머니 던지기로 달래면서 쳐다본 하늘은 붉게 물든 구름 떼들의 장관이 마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여행객의 심정처럼 다시 이 자리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처연함에 끝없이 저녁노을을 따라가 보았다
숙소로 오는 길에 야식으로 사 온 도스버거가 괌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는 승민의 말이 틀리지 않음은 이제껏 맛본 새우버거의 식감과 달리 입을 크게 벌려 한입 물면 두툼한 새우버거의 풍부한 육즙이 사르르 녹으며 내는 향이 계속 식탐을 자극했지만 수면을 위해 절제하고 하루를 마친다.
세상 어디를 가나 남녀의 애틋한 사랑 하나쯤은 전설이 되어 저마다 가슴에 새긴 첫사랑의 향수를 자극하듯이 식민지 시대 스페인 장교가 한 추장의 딸에게 반해 자신과의 결혼을 강요하는데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공주는 연인과 도망을 가다 스페인 군인들에 쫓겨 절벽에 몰리게 된 두 사람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매듭을 짓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는 Two Loves Point 벽을 타고 낭떠러지 해안을 내려보기도 하고, 연신 몇 번 사랑의 종도 쳐보았지만 전설일 뿐, 남산에서 본 연인들의 자물쇠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절절한 믿음도 눈으로 보이는 많은 자물쇠의 길이만큼 한의 철학이 담긴 우리네의 사랑법이 더한층 깊지 않을까 하는 신토불이가 확인되는 애국자가 된다.
아무리 획일화되고 핵가족의 사회라지만 자식들과 시간을 내서 만든 육 일간의 괌여행은 여행이상의 의미로 기억될 세상사는 즐겁고 소중한 한 페이지의 기록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