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멀어졌던 감각과 다시 마주한 순간
감각을 미뤄둔 채로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좋아하는 감각을 미뤄두며 살아 왔다.
그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로 갈증을 쫓고 있었다.
단순히 '무언가를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차를 마시며 느끼는 감각을 말로 꺼내려 할때마다 막히는 순간들이 쌓여갔기 때문이다.
어렴풋한 향과 입안의 잔상들이 분명 느껴지는데,
섬세한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그래서 왠지 그 감각들과 멀어지는 듯 느껴졌고,
갈증처럼 표현되지 못한 느낌을 헤매고 있었다.
며칠 전 웰니스 워크숍의 체크리스트에서 질문 하나에 눈이 머물렀다.
"한 입 한 입, 씹는 동안 음식의 맛, 향, 질감에 집중했나요?”
차를 마실 때는 분명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차를 우려내고, 향을 맡고, 음미하며 잠시 숨을 고르며, 온전히 그 시간을 느끼고 있다고,
감각은 있었지만, 말은 없어졌다.
문득, 차에 대한 끌림은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놓치고 있던 감각의 결핍에서 온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맛집 찾아다니기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밥먹는 사람에게 한 입, 한 입에서 느껴지는 감각,
그리고 그 맛을 어떤 기억이나 이미지와 연결해 설명하는 걸 참 좋아했다.
예를 들면, 청년 다방의 불향차돌 떡볶이를 처음 먹었을 때,
눈앞에는 분명 떡볶이가 놓여 있었는데, 한입 맛보자 불고기 불맛이 강렬하게 느껴져서,
묘한 어긋남이 이상하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기분이 묘해진다는 그 느낌의 공유만으로도 하하호호 즐거워하며 식사를 즐겼던 기억이 있다.
내가 처음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음식을 먹으며 느껴지는 감각들을 세세하게 표현해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느끼고 표현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멈추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내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함께 식사하는 상대방의 경험을 방해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식사의 흐름을 끊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였다.
그렇게 나는 감각을 표현하는 일에서, 점점 멀어졌다.
알아차리지도 못한 어느 순간 부터는 감각을 느끼는 일마저 흐릿해졌다.
멈췄던 감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감각 다시 깨어난 순간은 아마도 원데이 티클래스에서 일 것이다.
차를 만난 그 순간, 오감을 자극하는 여러 감각들과 함께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미각 경험을 마주했다.
그렇게 이어진 차생활은 다시금 나의 감각을 곤두세우도록 도와주었고,
덕분에 의외의 순간에서 나를 재발견하게 만들었다.
최근 남편의 제안으로 오랜만에 먹은 연어회와 백김치 한 점을 먹으며,
기름진 연어와 새콤하고 아삭한 백김치 조합에 작은 탄성이 나왔던 날이 있었다.
몇년간 집밥을 강력하게 옹호해온 내가 무안해질만큼
그 순간, 맛집을 다니며 즐거워했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차를 통해, 나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감각을 잊고 살았나 싶었지만, 사실 감각을 잊은 게 아니라 잠시 말을 아끼며 살아온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차는 감각으로 나를 이끌었고, 나의 느낌을 나누는 일을 다시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덕분에 내가 좋아했던 맛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인지 조금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언제나 감각에서 시작되었다.
익숙한 듯 이색적인 맛,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
그리고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
다양한 감각들은 내가 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더 나아가 행복감을 주기도 했다.
모든 끌림은 어쩌면 감각으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오늘,
내 안의 감각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