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상님 목걸이가 참 예쁘요, 어쩜 이리 곱노, 아이고 참내... 내 처자때 했던 거랑 어찌 이리 비슷하노, 내가 참 보기가 좋다! "
오늘도 새하얀 머리의 황할머니는 여러 번 했던 똑같은 나의 목걸이를 보고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주름진 두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미소를 지으신다.
" 맞아요, 할머니 보고 좋아하시라고 새로 하나 샀어요. "
" 아이고 나 때문에? 참말이가? 돈이 비쌀 텐데... 봉급 받아서 이거 산다고 다 쓴 거 아이가 "
조금 걱정스레 날 쳐다보는 황할머니...
" 맞다! 할매한테 이쁘게 보일 려고 돈깨나 깨졌다, 이제 할매한테 용돈 받아야겠다 "
그러자 살짝 눈 흘기며 나를 쳐다보시더니
" 아이고 처자가 상여시다, 상여시 ! "
그러신다.
" 미련곰퉁이 처자보다는 낫다아이가 ㅎㅎ"
웃음이 터진 황할머니와 나 , 그리고 환자분을 데리고 온 보호사님도 자지러 지게 웃는다.
황할머니는 old CVA환자 - 오래된 뇌졸중 환자 - 로 기력이 약해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월요일 오후 재활치료를 하러 오신다.
" 나는 마 여기 오는 게 제일 좋다, 우리 선상님도 이쁘지, 물리치료도 시원하지, 이케 잘 웃지, 병동 가시나들은 거 바늘로 찌르고 고약 먹이고 인상 팍팍 쓰고 싫다! "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 지나고 온 황할머니 상의 환자복에 새하얀 가루가 묻어 있다. 오늘도 식사하시고 투약하기가 힘드셨나 보다.
할머니는 음식이나 액체를 삼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이 있는 연하장애(dysphagia)를 앓고 있다. 그렇다 보니 산제인 가루약을 드실 때 혀에 약의 맛이 바로 전달되어 더 쓰고 먹기 힘드신 것이다.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약먹일 때 할머니가 안 먹는다고 떼를 하도 써서 엄청 애를 먹는다고 한다.
" 할머니 그래도 간호사들 말 안 듣고 너무 미워하면 안 된다! 그라믄 주사 놓을 때 아프게 놓으면 어떡할라 그라노? "
" 음ᆢ 맞나? "
" 맞다 아이가! 내 말 잘 들어야 된데이 할매 자~ 약속! "
내가 손을 내밀자 아기 같은 할머니는 잠시 눈동자가 흔들리며 고민하시더니 마지못해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하신다.
나는 평소 환자를 부를 때 ㅇㅇ님이라고 꼭 성함을 부른다. 하지만 황할머니는 오래된 치료환자이기도 하고 내가 ' 할매 '라고 부르며 안아드리면 아기처럼 ' 까르륵 ' 웃으면서 좋아하시기 때문에 편하게 부르기도 한다.
재활치료가 시작되자 이내 황할머니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 내가 우리 이쁜 물리치료 선상님 말을 들어야지, 누구 말을 듣겠노 "
" 맞아요? 할머니~ㅎㅎ "
" 그래! 맞다, 내 말 듣고 내 역성 들어주는 사람은 이 병원에서 선상님 밖에 없다. 그 병동에 가시나들은 그 못돼 처먹어가지고 불러도 오지도 않는다! "
금방 내게 간호사 말 잘 듣기로 약속해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 황할머니는 운동치료 시작과 끝날 때까지 간호사들 욕을 연이어하신다.
할머니의 주 상병은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 AD 또는 Alzheimer's)로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뇌질환이며 서서히 발병하면서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의 악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병이다. 그래서 오래된 장기기억은 잘 기억하지만 금방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단기기억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환자를 치료할 때 필요에 따라 말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할머니처럼 기력 없는 환자들은 말을 하는 동안 각성이 되고 그 힘을 이용하면 치료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치료가 끝나고 병동으로 가실 때가 되자 할머니는 내 목걸이를 다시 한번 매만지기 시작했다.
" 나도 선상님처럼... 있었는 데 어떤 망할 놈의 새끼가 홀라당 팔아먹어가지고 내 딸 시집갈 때 금가락지 하나 못해줬다... "
내가 처음 황할머니를 만나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걱정이 돼서 병동에 확인 전화를 했다. 그때 담당간호사가 보호자와 연락 후 내게 하는 말이 황할머니 첫 번째 부군이 도박으로 집안 일체를 다 팔아먹으시고 연락두절되셨다고...
그때 먹고살기 힘들어 다 큰 딸하나를 잃어버리셨다고 한다.
그 후 재가 해서는 남부럽지 않게 잘 사셨고 그때의 자녀들은 현재 시집 장가 다 잘 가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치매 병 특성상 옛 기억이 남아있어 자꾸 그런 말씀을 반복하신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었다.
처음에 그 history를 들었을 때 마음이 정말 먹먹했다. 잘은 모르지만 어려웠던 그 시절 할머니의 가슴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늘로 먼저 간 자식은 평생 가슴에 품는다는 데 우리 할머니ᆢ 얼마나 힘이 드셨을 까... 그 아픈 삶이 얼마나 고되고 눈물이 나셨을 까...
물리치료사는 신체 접촉이 많아 라포(rapport,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 형성이 잘돼 담당환자와의 정이 많이 드는 직업이다. 그래서 환자를 위하되 너무 마음을 많이 뺏기지 않으려 평상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나처럼 물리치료사 중 전문재활치료사로 연세 많은 분을 치료할 때 혹시 생길 환자의 죽음에 항상 대비를 해야 한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치료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이별에 담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 요양보호사가 오고 어린아이처럼 병동으로 가기 싫어 시무룩해진 할머니...
나는 할머니의 검버섯 핀 주름진 손을 꼭 맞잡고 보청기 낀 얼굴 근처로 가 귓속말로 작게 속삭였다.
" 내가 다음 주에 오면 할머니 보라고 또 번쩍번쩍한 금딱지 하고 올게 "
그러자 금방 어린아이처럼 해맑아진 황할머니
" 맞나?~ 아이고 그날도 눈호강하겠네 내 선상님 만날 날만 기다린다! "
" 나도 우리 할매 엄청 기다린다! 위에서 간호사 말 잘 듣고 약 잘 챙겨 먹고 몇 밤 자고 또 봐요! ㅎㅎ "
" 그라믄 다음에도 꼭 이쁜 거 하고 오이소 "
할머니는 그렇게 새하얀 미소를 지으며 휠체어를 타고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할머니가 안전하게 올라가는지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꽤 오랫동안 쳐다보곤 한다.
그렇게 매주 월요일 오후 황할머니와의 만남과 가슴 먹먹한 이별이 반복된다.
나는 오늘도 할머니가 좋아하는 나의 목걸이를 극세사천으로 깨끗이 닦아본다.
다음 주 월요일에도 우리 할머니의 어린아이 같은 새하얀 미소가 언제나 나에게 변치 않게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