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광대도 웃겨주는 거 좋아해.
기본적으로 웃음이 헤픈 나는 잘 웃는 편이다.
친한 지인들과 만나서 수다를 3시간쯤 떤다고 치면
그중 2시간 45분은 웃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진지한 이야기조차도
유쾌한 방식으로 나누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맞는 추임새를 넣어주는 데
은근히 능숙한 스킬을 보유한 리엑션 부자이다.
그러나 딱히 친한 사이가 아닌 자들과 부득이 함께 있어야 할 경우엔
그 관심도 없고 노잼인 길고 진지한 사연을 듣는 일은 꽤 피곤한 감정 노동이다.
대화 중 티키타카가 어긋나
자꾸 미묘하게 뜨는 정적의 시간들도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차라리 이런 불편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회피하기 위해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가장 적극적인 방어책,
즉 광대역할을 자처하는 편이다.
물론 실패 사례도 많다.
던져본 모든 농담과 드립들을 리엑션으로 받지 않고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한없는 무력감을 맛보게 하는 상대도 꽤 많다.
이건 일종의 나만의 테스트 같은 게 되어서
그런 무력감을 맛보게 하는 상대는
슬그머니 내 반경 안의 지인리스트에서 삭제시키곤 한다.
나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일단 슬쩍 간을 보며 찔러봐서
반응이 나쁘지 않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대화의 리듬을 타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버린다.
광대는 상대가 자기가 노리고 던진 농담에
정확히 걸려들어 웃음보가 터질 때 희열을 느낀다.
남을 웃기는 일은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사실은 잘 만들어진 빌드업 끝에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타이밍, 관계성, 상대의 취향등
대화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파악해 펼치는 눈치 게임이다.
꽤 유머가 잘 먹힌 날은
그 뿌듯함에 집에 돌아가서도
그날의 떠들썩했던 대화들을
혼자 음흉한 변태처럼 몇 번을 곱씹으며,
'오늘도 한 건 해냈어. 훗.'
씨익 입꼬리가 올라가곤 한다.
남이 보면 '그런 걸 집 가서 다시 음미한다고?'
싶을 기괴한 장면 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소소한 이 시간이 진정한 웃음 포인트랄까.
그 덕에 기가 빨려 피곤함이 몰려오는 부작용은 있지만
이러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부끄럽지 않다.(들키면 안 된다.)
모처럼 사회활동을 하고 돌아온 광대의 하루는
늘 그렇게 조금 늦게 끝난다.
-분명 있을 건데? 나 같은 반 자발적 광대들이. 그러니까 웬만하면 그냥 웃어주세요. 차단당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