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아침과 서민의 아침
배달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뒤처리도 귀찮아 테이블 가득 방치한 채
소파에 널 부러져 리모컨만 쥐고
온종일 OTT로 외국 드라마를 정주행 하던 중이었다.
우리 집 전체 평수의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널찍하고 쾌적해 보이는 새하얀 거실로
외국 부자 남자가 아침 샤워를 막 끝낸 듯
가운 차림으로 느긋하게 입장하자,
메이드로 보이는 여자가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담긴
영롱한 에메랄드 빛깔의 녹즙을 건넸고,
무심한 듯한 동작으로 잔을 받아 들어
테라스에 놓인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 신문을 펼쳐 보는 장면을 보았다.
문득 저걸 해 먹어 봐야겠다 생각했다.
맛있어 보인 다기보다
저런 건강한 빛깔의 건강한 음료를 매일 아침 눈뜨고 마시면
나도 저런 상쾌한 기분이 느껴질 것 같은
다소 단순하고 충동적인 이유였다.
맵고 짠 고칼로리의 배달 음식으로 위장을 순대같이 채운 채
누워서 하루를 보낸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배경이었는지도 모른다.
녹즙기를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기계가 거대하고 흉측한 것도 문제였지만,
가격도 상당해서 막상 결제를 하려니 이성이 돌아왔다.
결국 가지고 있는 작은 믹서에 케일과 사과, 오이 등을 대충 썰어 넣고 갈아 봤다.
스타워즈의 요다 녀석을 갈아 놓은 듯한
입맛을 돌게 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때깔이었는데,
심지어 착즙기가 아닌 믹서로 간 완성품이라
즙이라기보다 묽은 죽 같은 불길한 질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더 건강한 거야!'라는
합리화 과정을 거쳐서 혀를 통과시키니
꽤 마실 만한 맛이었기에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을
출근 전 급박한 아침 일정 중에 혼자 감당해야 하다 보니
부엌칼을 빼든 요리사에게 잡히기 직전의 암탉처럼
쫓기듯 파닥파닥 너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나는 메이드가 없었고,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기업의 노예였고,
가운 따위를 걸치고 앉아 신문을 보긴커녕
샤워 후 알몸으로 물을 질질 흘리며 욕실에서 튀어나와
채 그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외출복 사이에 목을 끼워 넣기도 바쁜
대한민국의 일개 서민일 뿐이었다.
기분 좋게 눈을 뜨고
건강한 요다즙을 들이키며 느끼고 싶었던 드라마 속의 여유는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부럽다 외국부자.
녹즙팩이나 주문하자. 빠른 배송으로.
- 침대 위에서 브런치도 먹어본 적 있음... 얻은 건 시트 위의 케첩 얼룩뿐.
드라마 보다가 짜장면 먹는 장면 보면 짜장면 먹고 싶어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