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까 별거 아니네.
어느 금요일.
퇴근 후 서점에 들러 군침을 흘리며 표지 구경을 한 시간 넘게 한 끝에 결정한 책 두어 권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시점이었다.
딱히 특별한 금요일도 아니었음에도
주말이 왔다는 설렘과 서점에서부터 끌고 온 들뜬 마음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다.
동네에 만날 만한 지인은 딱히 없는 데 그렇다고 집에 바로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평소라면 카페를 선택했겠지만 이 날 만큼은 카페가 땡기지 않았다.
좀 더 어둑한 곳에 아늑하게 박히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큰 기대 없이 혼술 하기 좋은 집을 슬쩍 검색해 봤다.
아주 가까운 위치에 저렴한 위스키바가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 지나다니며 자주 보던 간판이라 눈에 익은 곳이었다.
몇 분 후 정신을 차렸을 땐 홀린 듯이 가게 의자에 앉은 채 발견된 내가 있었다.
처음 발을 들여 본 낯선 가게라 벽 구석에 최대한 웅크리고 몸을 숨겨 봤지만,
당연히 가려질 리는 없었다.
메뉴에 빼곡히 적힌 생소하고 화려한 이름들이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었지만
더 신경이 쓰이는 건 마음속 잡음이었다.
쟨 왜 혼자야?
친구도 없나?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상상 속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싸우느라 안절부절한 마음에
메뉴를 제대로 살펴보기가 힘들었다.
최대한 익숙한 척 자세를 잡고 마스터에게 추천할 만한 게 있는지 물어보고
대충 끌리는 어려운 이름의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을 한 잔 주문했다.
사실 배도 고팠지만, 얼마나 어색한 시간을 보내게 될지 예측이 되지 않아
언제든 빠른 퇴각이 가능하도록 거창한 안주는 시키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마스터가 서빙해 온 와인잔의
상상했던 것보다 과하게 얄쌍하고 섹시한 생김에 살짝 당황했다.
짙은 버건디 색의 액체가 위태 찰랑하게 가득 담겨 있었고,
그 위에 달게 절인 체리 한 알이 영롱한 윤기를 흘리며 은색 메탈 꼬치에 관통된 채 데코 되어 있었다.
좀 더 안정감 있는 느낌의 잔을 예상했는데,
이 섬세하게 생긴 놈을 깨뜨릴 까봐 부들거리며 잔을 들어 올릴 내 모습이
처음 온 티를 낼 것 같아 남사스러웠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 들었다.
알코올 향이 생각보다 강렬했다.
콧구멍 안으로 퍼지는 위스키의 독하지만 알싸한 향을 음미해 보려고 애써 봤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싶었지만, 서비스로 함께 내어 주신 치즈향이 나는 프레츨 과자와 함께 야금야금 들이켜
면서 방어용으로 가져간 책을 3분의 1쯤 읽고 있자니,
심장박동에 맞춰 열이 오른 얼굴 피부가 조였다 풀리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콧김이 뜨거워졌다.
이게 기분이 좋은 건가?
그런 거 같기도. 오호…
고작 칵테일 한잔에 알딸딸해진 눈으로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봤다.
당연한 일이지만 놀랍도록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아무도 날 잡아먹으려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긴장했던 게 오히려 혼자 민망하고 허무했다.
주섬 주섬 짐을 챙겨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성공적인 퀘스트 임무를 마친 게임 캐릭터처럼 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동네의 밤거리를 바라보며,
내면에 차오른 묘한 성취감과 함께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해보니 뭐, 별거 아니네~
- 두려워서 망설이다 막상 해보니 의외의 즐거움을 찾아본 경험 다들 한번 쯤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