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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아빠 Mar 28. 2019

Dear. 내 또래 은행 직원에게.

Prolog. 나는 왜 프리랜서가 되었는가?  (1)


.. 좋은 직장 다니셨는데.. 도대체 왜 나오셨어요?

2017년 7월.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자 들고 온 2장의 원천징수 영수증을 보며, 은행 직원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럴 만한 것이, 생애 첫 마이너스 통장을 뚫기 위해 제출한 두 회사의 원천징수 영수 차이는 너무나 명확했다.


"28배."

후자가 높았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은 7월의 날씨처럼 녹녹지 않았다.

잔인할 만큼 따갑고, 탈진할 정도로 더웠다.
무엇보다 나아지지 않는 이 현실. 끈적함.


"음..  사정과  장단점이 있지 않겠어요"


또래의 W은행 대리님께 시기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얼버무렸지만, 어찌 사연이 없을 수 있겠는가?


4 손주의 할아버지인 우리 아버지는 5년째 택시운전을 하신다.

연로하신 데다가, 격주로 밤낮이 바뀌는 삶은 여간 고된 것이 아니다.

일자리는 사람을 소생케 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가를 위한 소일거리일 때이지, 생존을 위한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우리나라 노인의 50%는 생계를 위해, 생존을 위해 일을 하신다. 고령화 사회에 보다 한결 슬픈 노인빈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버지도 50%를 피해 가지 못하셨다.

사실 아버지가 평생 택시를 모셨던 것은 아니다.


IMF, 금융위기의 칼바람도 모두 버텨내시고, 정년퇴임을 하셨다.

근 20년간 본사의 핵심부서에 계시다가 강남, 대치동 지점장을 하실 정도로 잘 나가셨다.

그렇다. 아버지는 W은행에서 정년퇴직하셨다.

오늘 내가 대출을 받으러 갔던 그 은행.


은행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것은 지금도 꿈과 같은 얘기이다.

더군다나, IMF, 금융위기를 넘겼다는 것은 가히 전설적이다. 하지만 은퇴 후의 현실은 너무나 냉혹했다. 어디 가나 대접을 받았었지만, 회사 이름이 지워진 아버지의 명함은 어디서도 환영받질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는 가족과 여행 다닐 때만 잡던 운전대를, 업으로 잡으신다.


5살 딸의 아빠인 나는 3년 차 헤드헌터이다.  

예전처럼, 분초를 다투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정한 수입은 항상 마음을 졸이게 한다.


나 역시 처음부터 이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이 일을 하기 전, 난 국내 부동의 1위 그룹 건설 계열사에서 해외 영업과, 해외 현장 공무를 했다.

회사 생활이 고됐던 것도,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주당 70~100시간의 살인적 업무강도. 

크리스마스, 설날도 회사에 들르는 휴일 없는 삶.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직장인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덕에 나 역시 조직생활이 크게 힘들지 않았고, 동기보다 높은 고과와 연봉을 쌓아나갔다.

내가 보고 배운 것은 한 직장에서 우직하게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으니.

그 삶에서 만족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차츰 인정에 취해갔다. 현실을 알기까지.


그렇게 7년을 살았고, 이렇게 3년을 버텼다.


도대체 왜 나오셨어요?
프리랜서 좋나요?


이 글은, 우리 아버지의 까마득한 후배 은행 직원이자,

내 또래 젊은 가장, 오늘도 사무실, 현장 불빛을 밝히고 있을 내 선후배, 동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그늘에 호가호위하다, 내 이름으로 살아보고자 

발버둥 치는 한 아빠이자 남편, 가장의 생존기이다.


3년이 지난 시점에서 글을 쓰는 것은, 이제 좀 먹고살만해서가,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금 내 고민. 덜 숙성되었을지 모를 날것의 '가벼움'이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생존의 '무게'에 깊이와 고민을 더해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와,

내 방황과 생존의 족적들이 오늘을 선택과 환경 가운데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 대화의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에서이다.


이 고민이 지금의 나니깐.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힘써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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