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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아빠 Apr 07. 2019

퇴사. 불행을 버리고, 불확실성을 택하다.

B주류 인생_나는 왜 프리랜서가 되었나?(2)

만약, 본사로 다시 보내준데도 영업으로 가도 그 맘 그대로가?


터키의 뜨거운 7월 태양빛처럼, 사수의 담뱃재도 타들어갔다.  

퇴사를 통보한 지 2주째, 7년간 내 사수인 Proposal Manager이자 공무팀장인 15년 선배는 말을 이어갔다.

3번 넘게 잡아준 회사와 사수가 너무나 고맙고, 미안했지만, 이럴수록 감정 빼고 Dry 한 것이 서로 깔끔하다.

감사를 표하고, 다시 한번 생각한 바를 말씀드렸다. 이후 모든 퇴직 프로세스는 내가 아는, 고수하고자 했던
우리 회사 이미지대로, 적확하게 이루어졌다.


무엇이 힘들어 한창 주가 높은 대리 때 그토록 나오고자 했을까?

왜 다른 직장, 직군으로의 이직이 아닌, 헤드헌터라는 다소 생소한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한 가지 이유로 정의할 수 없이 복합적이지만, 대략 몇 가지로 추슬러 보면 다음과 같다.


1. 가족

출국 전 100일 된 아이와 아내와 생이별을 한 지 1년이 지났다. 한국에 있을 때도 아내와 1주일에 밥 2끼도 못 먹을 정도로 바빴지만, 아내의 숨소리,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자는 것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어느 날 후배가 '아이의 정서는 4살까지 다 완성이 된데요.' 하는 말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난 우리 딸이 4살이 되었을 때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아빠의 부재와 이로 인한 아내의 부정적 감정뿐이었다. 

가장으로써 걱정되는 부분은 명확했다. 현실적으로 어떤 직장도, 지금의 직장보다 돈을 더 받을 수 없었다. 또한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직업은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교회학교 봉사를 하다 보면, 초등학교 아이들도, 아빠의 직업을 '삼성', 'LG'로 부르고, 중학생만 넘어도, 아빠의 월급, 가정상황에 따라 자신의 꿈과 상황을 재단하기 일수이다.

하지만, 나는 월급이나, 풍족함이 아닌, 아빠로서 존재하고 싶었다. 위에 언급한 걱정, 짐들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다.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어차피 져야 할 짐이라면 '아빠'만으로 만족하는,
철없고 젊은 30대 아빠가 지기로 결정하였다.
50대 아빠가 아닌.   

 

2. 시대의 변화

현장에 발령받고도, 예전 담당하던 터키 시장의 현황을 현채 직원에게 영업 Long-list를 받았다. 놀랍게도 내가 담당하던 PJT는 모두 Financing Closing에 실패하였다. 성사율이 10%도 되지 않는 IPP(Independent Power Plant) 시장이지만, 지연도 아닌 Holding의 0%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우리나라 제1의 기업이자, 업계 1위의 회사였지만, 내 눈에는 80년대의 Kodak, 21세기의 Nokia로 보였다. 

논리의 비약이 컸지만, 지금의 플랜트 불황과 계약직의 확산을 보면, 크게 틀린 예측은 아니었다.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의 저작 <안티프래질>에서 다시 한번 칠면조의 비유를 강조한다.

"칠면조는 추수감사절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증거'를 활용하여
과거에 바탕을 두고 미래를 '정밀하게' 예측한다.

누구도 퇴직을 권하지 않는다. 퇴직을 권할 때는 내가 이미 퇴물이 된 후이다.  


3. 핵인싸 패러독스(아버지와 나, 미래의 모습)

여러 경영이론과 법칙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신뢰하고, 자주 인용하는 것이 파레토의 법칙이다. 흔히 말하는 2:8법칙은 언제나 예외 없이 들어맞았다. 20%의 사람이 80%의 일을 하고, 20%의 사람이 80%의 부를 가지고 간다. 물론 현실은 좀 더 암울하다. 불과 몇 년 전 세계 최고 부자 8명의 재산이 전 세계 인구 절반인 35억 명보다 많은 재산을 보유했다고 한다. 미국의 빌 게이츠와 아프리카 국민들의 먼 세계 이야기는 접어두더라도,

내가 20%에서 일을 하면, 80%의 부에 포함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이 회사를 정년까지 다니면, 노년까지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을까?


삶에서 배운 대답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버지의 삶은 내 삶과 인격 형성에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가정적인 모습도, 사회인으로 정직과 성실 모두 아버지의 유산이다. 아마 그 끝이, 여유로운 노후생활이었다면, 나 역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은퇴 10년 차임에도 생계를 위해 일하신다. 시골에서 독학으로 성공하시어, 위기 때마다 대가족의 짐을 지신 것도 있고, 재테크에 유독 어두우셨던 것도 있지만, 누구에게 사기를 당하신 적도, 보증을 서신 적도 없다. 심지어 자녀 대학 공부도 회사 지원으로 모두 마친 상태였으며, 거기다 아버지는 대치동 지점장 시절에도 2만 원짜리 손목시계를 차실 정도로 검소하신 분이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현격한 차이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아래는 Birth에서 Death까지의 생애주기에 따른 시간-자산 곡선이다.

피터 드러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시간은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자원이다. 젊은 날엔 일(취업이던, 사업이던)을 위한 준비를 하고, 이후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얻게 될 때, 자산은 증가하게 된다. 아울러 은퇴와 함께, 자산의 곡선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고, 죽음과 함께 한 사람의 인생이 마감되게 된다.


(참조 : 나가타 도요시, <생각정리를 위한 시간의 기술>)

위에 곡선이 공감이 되는가? 본인의 삶을 대조해보자.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 아버지나 주변 친척의 삶을 대입해보자. 적어도 우리의 삶은 이렇게 단순하지도 깔끔하지 않다.  

이 단조로운 곡선에서는 몇 가지 가정치가 있다.

정규직, 정년까지 연봉의 꾸준한 상승

자산의 Risk(자녀 결혼, 질환, (학자금, 생활자금, 전세, 매입) 대출 등) 미반영


그렇다면, 우리 평범한 직장인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아래 그림이 좀 더 현실에 가깝다.


먼저, 주변에 빚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부터 건물주(그것이 투자라 할지라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빚을 지고 산다. 아버지의 은퇴와 동시에 나는 취업을 하였다. 가족으로써는 참으로 다행이었지만, 이는 곧 내가 경제적 가장의 짐을 지게 됨을 의미하였다. 직장생활부터 착실히 짐을 지며 갚아나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실패, 결혼과 출산, 이에 따른 집을 구하며, 자산만큼 대출도 늘어갔다. 아버지도 나도 단칸방에서 시작하여, 조촐한 아파트까지 옮기었다. 자산도 증가하였지만, 부채의 크기도 점점 커져갔다. 예상되는 불행이지만, 불행을 애써 외면하며, 유보했다. 앞서 언급한 나심 탈레프의 <안티프래질>에는 우리는 부유해질수록 소득의 범위 내에서 살아내기 어렵다고 언급하며, 풍요로움은 결핍보다 관리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설령 빚이 없더라도, 억대의 연봉인 사람이 국민연금을 수령하며 살며, 소비를 줄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흔히 금융권을 '맑은 날 우산을 빌려줬다, 흐린 날 우산을 뺐는다'라고 한다. 당연한 결과이다.


신용은 당신의 것이 아닌 회사의 것이다.
명함에서 회사를 지웠을 때, 치러야 할 값은 생각보다 크다.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이라면, 연봉이 많고, 정년이 보장된다면 괜찮을까? 하지만 조직규모가 갖춰져 있을수록, 대기업일수록, 핵심인재일수록 오히려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십상이다. 경영 구루인 찰스 핸디는 그의 저서 <포트폴리오 인생>에서 인생의 2번째 커브를 그려야 함을 언급하였다.


출처 : http://optimise50plus.com/sigmoid-curve/


1번째 곡선에는 분명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이는 우리가 앞서 본 생애주기 곡선과 다르지 않다. 이에 우리는 필히 2번째 곡선을 뽑아야 한다. 제2의 직업을 준비를 하던, 자영업을 하던 말이다. 하지만 대기업, 핵심인재에게 2번째 곡선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다른 곳을 둘러볼 '시간'과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관심사가 나뉜 인재를 핵심인재라 부르지 않는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근무 역시 다반사이다. 어느 회사던 1년간 휴가 가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여기는 임원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처럼 회사에서 강조하는 것은 Ownership이다.

상위 20% 안의 대기업 직장인, 그 안에서도 20% 안의 엘리트.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80%의 부가 아닌, 20%의 부에 머물 확률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Ownership을 가졌던 인재는,
정작 본인 삶의 Owner가 되기 어렵다.  


찰스 핸디는 2번째 곡선을 뽑아낼  A 지점을 '편안함'과 '안정성'으로 지적하였다. 그림에서도 보이는 바와 같이 본인의 주가가 정점으로 치닫는 시기이다. 정점에서 끝을 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는 많지 않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몇 가지 계기로, 회사생활을 다시 생각해보던 중, 우리 시대 아버지의 정답이라 여겨졌던 삶이 어느 순간 위기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흔히 불확실성 대신에 불행을 택한다 한다.

나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예견된 불행 대신 불확실성을 택해보기로 했다.

그 답은 아직 찾는 중이지만.


Easy Choice, Hard Life.
Hard Choice, Easy Life.
-Tim Ferris, TED 강연 중-


B주류 인생 : PlanB, 주류의 삶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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