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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한 달의 시간.

B주류 인생_퇴직 날. 그리고 입사를 준비하고 겪었던 사소한 일상들.

by 소망아빠
2016년 8월 31일.


해외 근무 후 옮긴 사옥으로 첫 출근을 해서일까?

낯선 회사 정경만큼이나, 기분도 낯설었다.

익숙했던 것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공교롭게 신규사옥에 첫 출근을, 퇴사 인사드리러 가는 아이러니한 운명이라니.


회사에 악감정을 가지고 퇴사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나온 발걸음이기에, 5년간 몸담았던 영업부서, 사업관리 조직, 그리고 마주치는 분들에게 한분 한분 인사를 드렸다.


'정 대리님, 탈건하시고 부러워요.'

'너는 걱정 안 한다. 잘할 거야.'

'같이 한 시간이 얼만데, 이렇게 못 보내, 언제 한번 밥 먹으러 와!'


나도, 그분들도 느꼈으리라, 이게 마지막이란 것을.

'언제'는 '언제나' 기약이 없다.


사원증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이른 오전.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를, 이 두려움이 극복되길 기도했다.


귀국 후 면접을 통해, 메이저 헤드헌팅사에 합격한 후 1달의 유예기간을 받았다.

(취조에 가까웠던 면접, 생애 첫 탈락의 고배 마시게 해 준 면접은 다음에 다루겠다.)

나 자신을 추스리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그동안 지친 아내와, 서먹한 돌잡이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이때도 아버지, 남편이라는 것은 내 삶의 가장 큰 존재의 이유이자, 사명이었다.



누구나 자기의 가정, 가족은 소중하고도 특별하며 남다르게 느끼겠지만, '윤미네 집은 자랑할 아무것도 없는 내게는 언제나 큰 기쁨이었다.

-전몽각 교수, 윤미네 집 中-





내세울 거 없는 저에게도 자랑할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제 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빌나이, 영화 어바웃 타임 中-




1달간 속죄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가족에게 집중했다.

휴가 때 4개월마다 아이를 보면, 아이는 어색함에 울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열흘의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는 아내의 눈물을 뒤로해야 했다.

나름 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을 쪼개며,

매일 영상통화를 하였지만, 나의 최선이 가족에게 최선은 아니었다.


중요하게 연락 올 일도 없기에 핸드폰도 아무 데나 두었다. 그렇다고 급하게 찾을 일도 없는 한가한 날들이었다.

아이와 놀고,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힘들었냐고?


아니 솔직히 회사일보다는 훨씬 쉬었다.
만성 두통에 시달릴 일도, 서로의 입장을 위해 싸우거나,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청소, 설거지, 빨래 널기 등 대부분의 집안일은 보통 노래 3곡 안에 끝난다.

아이가 잘 땐 틈틈이 책도 보고, 커피도 마셨다.

하지만 아빠로서, 남편으로써 내 역할에 충실할수록,

내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백일경 아이와 가족의 곁을 떠나기 전,

딸에게, 아빠는 유리창에 붙여놓은 '뽁뽁이'같다란

말을 해줬다.


가사는 '콩나물 다듬기' 같달까?

손이 많이 가도 티가 나지 않는,

그리고 어김없이 다가올 3 끼니처럼.

살림은 말 그대로, 하루를 살아내는 살림이었다.


그렇게 아이와의 서먹했던 벽을 허물고,

아내의 어려움을 알아갔다.


퇴사길 떠올렸던 두려움이 이따금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아이의 미소와 매일 밤 아내의 숨소리, 이따금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감사기도와 함께 스스로 되내었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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