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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아빠 May 04. 2019

Prologue, 이직을 떠올린 당신에게.

첫 이직 기본 BASIC(倍移職), 연재에 부쳐. 

‘제발 취직만 시켜주세요 했는데, 제발 퇴사하고 싶어요.’
‘원하던 직장이었는데, 이러려고 공부했나 생각하면, 자괴감이 들어요.’


카페와 술자리에서 흔히 듣는 우리의 이야기. 사원증이 꿈이던 취준생 시절을 넘어, 어느덧 퇴사를 꿈꾸고 있는 자신을 떠올리며, 씁쓸한 기분을 감출 길이 없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내 학창 시절을 오롯이 바쳐서 말 그대로 쟁취한 곳, 내 결혼과 노후를 책임질 곳인 만큼 어찌 고민이 없을 수 있을까? 다만 안타까운 것은 혼자 끙끙 앓고 충동적인 마음으로 몇 번 움직이다 보면, 말 그대로 평판과 경력이 망가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성세대와 같이 한 회사에서만 버티는 것이 정답일까? 


4차 산업 혁명의 도래로 우리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용어조차 Digital Transpotation(미국), Digitalization(유럽)으로 제각각이다. 

작년에는 4차 산업혁명 용어의 정의조차, AI의 힘을 빌렸다는 기사가 주목받기도 하였다. 


바야흐로, '불확실성의 시대'.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평생직장은 꿈같은 이야기가 된 지 오래이다. 

이 때문일까? 덕분에 어느 때보다 공무원, 대기업으로 대변되는 안정성에 가치를 둔 시대이다. 오늘날 청춘에게 안정적 직장, 연봉에 따른 이직의 풍조를 지적하고 폄하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 일지 모른다. 그들은 단지 일을 하고 싶고, 합리적으로 대우받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 변화와 속도를 외면한 안정성은 아쉽게도 반쪽짜리 답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일의 의미 없이 퇴근과 주말만을 기다리는 삶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운이 좋아 처음 직장에서 정년을 맞게 되면, 남은 40년은 보장받을 수 있을까? 오늘의 불확실성보다는 내일의 불행을 택하는 것이 오늘의 안타까운 흐름이요 현실이다. 변화를 외면한 안정성은 시대와 함께 도태될 뿐이다. 과거의 정답들에 오늘을 껴 맞추고, 미래를 기대하기엔 우리의 남은 날들이 너무나 많고, 또한 빠르다. 


직장인에게 퇴직은 피할 수 없다. 입학 후 졸업이, 삶의 종착역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기업의 반감기가 내 지나간 사춘기 시절만큼 빠른 오늘이다. 떠밀려 나오던가, 내 발로 나오던가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이직은 주도적 행위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고, 권하지 않는다. 
회사가 나에게 이직을 권할 땐, 절대 '희망'적이지도, '명예'롭지도 않다. 

   

자소서, 면접, 이력서 작성 등 방법에 포커싱 된 좋은 참고서들은 서점에 가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위기를 언급하며, 유망 직업을 언급한 책 역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발전 엔지니어였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빅데이터 전문가가 될 수 없고, 드론을 날릴 수 없듯이, 유망산업의 직군은 누군가의 직업일 뿐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도권을 잃어버린 체 수동적 삶, 오지선다형 정답에 익숙하다. 인생에서 무엇을 할지 몰라 점수에 맞는 대학, 전공을 택했고, 전공으로 뭘 할지 모르니, 뽑아만 주세요 하며, 상황에 맞춰 취업을 했다. 그리고 주도적이어야 할 이직조차, 상황에 맞는 곳을 찾아, 주말 간 준비해서 급하게 찔러본다. 연봉과 복리후생을 만을 고려하다간, 다시 ‘뽑아만 주세요’하고 결정권을 놓쳐버리는 비극이 반복될지 모른다.  


"선배, 나 정말 힘들어요."

마음속에 고민을 털어놓긴 상대적으로 쉽지만, 이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곳은 마땅히 없다. 이직은 그만큼 비밀스럽고, 사회는 연결되었으며, 경력은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정보의 홍수로 정제된 정보에 가치를 지불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것은 적잖은 두려움이자 부담이다. 한편으로는 잉여 인력과 로봇세를 고민하는 세상에서, 단 3명의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인수, 채용(Acquihiring)에 3천만 달러를 지불하는(<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라즐로 복) 아이러니한 세대 가운데, 인연을 맺은 후보자와 수강생들의 노동 자본의 가치가 비트코인처럼 급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생각을 적었다. 


맹자는 사람들이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고 

한탄하며, 학문하는 방법을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 정의하였다.(<맹자>, 고자 상편 中) 

이직을 다루며, 잃어버린 마음, 열정과 본질에 대해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것일까? 

아니. 나는 바른 이직의 출발점은 '인지(認知)'에서 시작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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