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시골 살이
나는 평소에 일기를 쓰지 않는다. 사실 않는 것보다 못하는 쪽이 더 가깝다. 일단 한 가지일을 꾸준히 하는 걸 잘 못하고, 무엇보다 요약하고 간추리는 걸 못한다. 그래서 일기를 쓰다 보면 하루에 있던 모든 디테일을 적어버려 중간에 지쳐버린다.
그 날의 기분, 어느 상황에 대한 느낀 점은 곧 잘 적는 편인데 그 마저도 때로는 생각에서 그쳐 잊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가끔 운이 좋으면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마주해 이전의 감정과 생각을 기억해 내기도 한다.
즉 나는 적고 싶은 것만 적는다.
게다가 나는 지극히 평범한 기억력을 갖고 있어서 소소함이란 범주에 든 기억들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잊는다. 그래서 충격적이거나, 슬프거나, 분노하거나 죽어도 잊고 싶지 않아 계속 곱씹은 일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소소함'은 내 머리 속 기억의 산 너머로 잊히고 만다.
캐나다에서의 일 년은 소소함이 많았다. 물론 다운타운에서 만난 곰이라거나, 친구들, 문고리를 돌리면 만날 수 있던 록키 산맥의 봉우리들은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기억이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내 하루에 잔잔하게 스며들어 크게 자극적이지 않았다. 좋게말해 그만큼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았고 그 언제보다 평화로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친구 L은 지금의 기억들이 잊히는 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때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뜻은 알겠으나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이를테면, 지금과 같이 훗날 그리워할 장면 안에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지금, 고작 일 년이란 사이에 한껏 흐릿해진 내 기억에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써보려고 한다. 바다 건너 그 곳에서 일어났던 소소함의 기억들을. 오늘이 아니어도 내일이 존재했던, 때문에 매순간에 대한 소중함 대신 여유와 아늑함을 선택했던 그 때의 기억들을.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이마저도 적지 못하게 되기 전에. 그 누구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언젠가 추억으로 살아갈 나를 위하여 보다 풍부한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