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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Jan 03. 2023

슬픔은 어린아이의 얼굴로 찾아온다

그림책 <무릎딱지>를 읽고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샤를로트 문드리크가 쓰고 올리비에 탈레크가 그린 그림책 <무릎딱지>의 첫 문장이다.

충격적인 첫 문장만큼 강렬한 붉은색이 <무릎딱지>를 뒤덮고 있고, 그 한가운데 온 세상을 잃어버린 어린아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릎에 난 상처를 바라보고 있다.


슬픔은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때에 맞춰 이루어지는 이별 가령 전학이나 졸업식, 이직 및 이사, 시한부 판정, 반드시 맞닥뜨리는 죽음 등 예고된 슬픔이라 할지라도 결국 순간만큼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미리 대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슬픔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단지 나이가 들면서 우리 스스로 익숙해진 척 담담한 척하는 것뿐이리라.

왜냐고?

대놓고 슬퍼하기엔 우리는 이미 어른이니까.

이런 슬픔이 처음도 아닌데 처음처럼 슬퍼한다는 것은 나잇값 못하는 짓이니까.

번번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남 부끄러우니까.  

슬픔은 또 찾아올 테고 또 지나갈 거니까.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슬픔 앞에서 괜찮다... 고 생각한다.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도 어른스럽게 말이다.

어른(?)스럽게 슬픔 앞에서 화내고, 괜찮은 척 웃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염려한다.


그런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이제는 되묻고 싶다.

그래서 정말 괜찮은가?


어쩌면 당장은 괜찮을 지도 모른다.

바쁜 일상에 쫓겨 한가롭게 슬퍼할 겨를이 없는 어른들은 다시 일어나 직장을 가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자고,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을 보살피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또 예기치 않게 내 뒤통수를 노리는 슬픔에 휘청거릴 테고, 그리고 곧 아무렇지 않은 듯 또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꾹꾹 누르고 외면하며 살다가 더 이상 참을 수없는 한계에 다다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제대로 슬퍼하지 않은 슬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마치 면역력이 떨어진 몸에 병이 생기듯 그렇게 나를 잠식하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밀어 넣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슬플 땐 슬퍼해야 한다.

모든 슬픔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고, 우리는 나약한 나의 슬픔에 눈 맞추고, 귀 기울이고, 기꺼이 안아주어야 한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붉은 슬픔을 애써 억누르지도 외면하지도 말고, 내가 왜 이렇게 어른스럽지 못할까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어른스럽다는 것은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진짜 어른으로 다른 사람의 슬픔까지 오롯이 바라봐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손 잡고, 직장을 가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자고, 그렇게 또 뚜벅뚜벅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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