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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Jan 07. 2023

조용한 일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를 읽고

 "왜 그렇게 슬퍼하니?" 개가 물어요.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개가 다시 물어요.

 "사실은 슬퍼, 고양이가 사라졌거든. 길고양이라서 길들여지진 않았지만 내가 부르면 언제나 달려오곤 했는데.."

 "응 그랬구나." 개가 말해요

 "하지만 세상에는 훨씬 더 슬픈 일이 많아." 브루가 말해요.


 여기 사라진 고양이 때문에 슬픈 아이 브루가 있다.

 브루는 계속 가고 또 가서 북극까지 간다.

 가는 동안 말과 열쇠꾸러미가 몽땅 사라진 카우보이, 친 까마귀, 고향을 잃은 누군가, 배 고픈 식인귀, 고양이 파는 아저씨, 책임감 강한 선장, 꼬부랑 할머니, 세상에 훨씬 심각한 문제들이 많아서 어찌할 수 없는 팔이 잔뜩 달린 조각상을 만나면서 브루는 자신의 슬픔과 함께 계속 움츠러들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그들이 말하는 슬픔에 비해 자신의 슬픔은 너무 그깟 이고, 고작이며, 따위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기 때문이다.


 브루는 왜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을까?

 가는 동안 내내 움츠러들기를 거듭하면서도 브루가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처음에는 사라진 길고양이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길을 나섰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점점 제 슬픔을 알아봐주는 이를 만나고픈 마음에 멈출 수 없었을지도... 결국 브루는 엄청나게 추운 북극까지 닿게 되었다.

 작가는 왜 브루를 그 먼 곳까지 가게 만들어서 기어이 어깨를 움츠리게 했을까?

 내 작은 슬픔에 공감해 줄 존재를 찾기가 그리도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야말로 팩폭(팩트폭력)이다.


 엄청나게 추운 북극은 아마도 브루의 마음일 것이다.

 처음에는 사라진 고양이 때문에 슬펐던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고 커져갔던 것은 그 사이 브루의 슬픔을 제대로 봐준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가 들어주었더라면, 너의 슬픔도 슬픔이라고 인정해 주었더라면, 브루는 고양이를 잃은 슬픔만치만 충분히 슬퍼했을 것이다. 한동안은 우연히 마주친 다른 길고양이로 인해 마음이 슬픔으로 일렁일 테지만 다시 다른 길고양이와 웃으며 놀 수 있었을 것이다.

 슬픔은 그렇게 옅어지고 작아지고 간직된다.

 그렇지 못한 슬픔은 그렇게 짙어지고 커지고 북극이 된다.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살아간다.

 외모, 집안 형편, 성적, 직장, 연봉, 결혼 상대, 집, 가방, 차, 여행, 자녀, 지식, 성격, 급기야는 슬픔과 기쁨, 감정까지도.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경계까지 파고들어 쉽사리 저울질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타인을 헐뜯는다. 점점 제 감정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꼭꼭 처박아둔다. 그리고 제각기 어깨를 오그리고 춥다고 한다.


 큰 슬픔, 작은 슬픔은 어떻게 나누는가?

 슬픈 순간만큼은 누구나 다 슬픔이다.

 나의 슬픔만을 슬픔이라고 징징대는 게 아니다.

 내 슬픔이 너의 슬픔보다 더 크다고 우기는 것도 아니다.

 제 슬픔도 타인의 슬픔도 비교하지 말고, 온전히 슬퍼할 수 있게 옆에서 가만히 들어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훨씬 더 슬픈 일이 많아." 브루가 말해요.

  "그거야 그렇겠지. 그래도 네 고양이에 대해 얘기해 줘. 그럼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갈 거야. 다정한 너와 길들여지지 않은 고양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말이야." 개가 말해요.

 브루는 고양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요.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슬픔은 비로소 슬픔으로 인정받고 치유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내 슬픔을 내가 먼저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내 슬픔을 꺼낼 용기가 필요하다.

 혹시나 내 슬픔을 폄하하진 않을까, 다른 이들에게 가벼이 전하진 않을까, 내 뒤에서 나와 내 슬픔을 시시덕대진 않을까, 내 슬픔이 오롯이 슬픔이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로 슬픈 것일까?

 슬픔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동시에 슬픔은 생각보다 단순하며, 짧은 시간에 풀어질 수도 있다.

 슬픔의 경중을 따지라는 것이 아니다.

 재고 따지고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내 슬픔을 내가 먼저 인지하고, 내가 먼저 가만히 들여다보라는 이야기이다. 내 슬픔을 대신해 줄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눈물 흘려주고 아파해줄 고마운 이들이 곁에 있어도 제 몫의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가 먼저 내 슬픔 옆에 가만히 앉아서 눈 맞춰주고 귀 기울여주어야 한다.

 내 슬픔을 들어주는 다정한 이에게 기대어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슬퍼하는 누군가의 옆에 앉아서 너의 슬픔을 이야기해달라고 조용히 말해야 한다.

 

 조용한 일은 참 어렵지만 북극에서 떨고 있을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앉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조용한 일 - 김사인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는 안 에르보가 쓰고, 그렸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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