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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Jan 24. 2023

너무 잘하고 싶어서... 그만

그림책 <어려워>를 읽고

 이제는 청소년이 된 조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을 때 일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품을 떠나 낯선 어린이집에 혼자 뚝 떨어진 셈이 되었으니 얼마나 긴장되고 무서웠을까? 가뜩이나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의 아이였으니 말이다.

  어린이집에 간 첫날은 한 나절 있다가 집으로 왔는데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급하게 향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날 어린이집에서는 한 번도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쪼매난 아이가 한나절 내내 긴장하며 참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때 퇴근을 하고 잠깐 들른 나에게 어린 조카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모, 오늘 어린이집에서 울었어요."

  어린아이가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엄마도 아닌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다음날도 조카는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모,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쪼끔 울었어요."

  '쪼끔'이란 말이 그렇게 반갑고 슬플 줄은 몰랐다.  낯선 환경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아 다행이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편이 아팠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랬던 조카는 무럭무럭 자라서 학교를 간다. 여전히 말수가 적고 긴장도가 높은 아이지만 그래도 제 세상을 나름 견디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대견하면서도 아리다.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할 테니 말이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수학 문제 풀기와 달리기를 포함한 체육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수학은 그 자체로 공포였고, 달리기는 늘 전교 꼴찌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일찍이 가르쳐 준 것을 고맙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늘 수학과 달리기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다행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려운 것은 어렵다. 낯선 환경과 사람에 적응해야 할 때, 잘 모르는 일을 해야 할 때, 과도한 업무에 치일 때,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을 상대할 때, 다른 사람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 등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수두룩 빽빽하다만 어려움을 나열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잘하고 싶구나. 남들에게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구나. 잘하고 싶어서 매번 전전긍긍하는구나. 그래서 많이 힘들구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잘 해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시도조차 하지 않고, 회피하고,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면서 나를 들들 볶는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 아닌 강박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바람에 나는 과정의 즐거움을 모른 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익숙하고 편한 게 좋고, 새로운 것은 두려워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어렵다.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밤을 새우는 일이 있어도 끙끙대며 어떻게든 수습하고 마무리 지으려 애쓰겠지만, 상대가 있는 일이라면 달라진다. 특히 다른 사람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것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는 것밖에 없다. 다른 사람과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그 사람 뜻대로 해 주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편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되도록 피하는 편이다. 날이 갈수록 인간관계는 좁아지고, 경계가 늘어간다.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어려움도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나의 어려움은 어설픈 완벽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도 잘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참 어리석다.      

  

  주어진 일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도 내 능력에 맞게 해야 한다. 혼자 힘으로 부족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상대방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 여전히 어려울 수밖에.....

  

  집을 나서면 모든 게 어렵다.


  다시 그림책을 본다.

  아이는 빵집 주인아저씨에게 인사하고 싶고,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아는 척을 하고 싶다. 버스 기사 아저씨의 물음에 대답하고 싶고, 학교 친구들의 이름도 부르고 싶다. 매번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히지만 이번에는 꼭 해낼 거라고 다짐한다.

  아이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꼭 해내고 싶고 잘하고 싶은 그 마음이 매번 시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잘하고 싶다, 해내고 싶다, 꼭 해낼 거다라는 마음이 아이를 더 긴장하게 만든다. 간절함이 클수록 자연스러움과는 멀어지는 법이니까.


  그림책 속 아이에게 속삭여본다.

  작게 소리 내도 된다고, 조금 더듬거려도 괜찮다고, 시끄러운 세상에 네 작은 목소리가 묻힌다 해도 다시 시도하면 된다고, 처음부터 잘할 필요는 없다고, 다들 너처럼 어려워한다고......

  이 속삭임이 오늘도 집을 나서는 나와 당신에게도 닿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말.

  뒷면지를 보면 사진을 찍는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카메라가 작은 아이의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안심이 된다.

  아이는 자기만의 소통 방식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게 어려운 아이는 사진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하다는 것은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달리기가 죽기보다 어려운 사람도 있고, 노래 부르는 것이 끔찍하게 어려운 사람도 있고, 나무토막 같은 몸으로 춤춘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람이 있고, 숫자라면 무조건 어려운 사람이 있듯이 소리 내어 말하는 게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게 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자신만의 소통 방식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의 어려움을 들볶는 대신에 나만의 소통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나만의 소통 방법을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마음,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림책 <어려워>는 라울 니에토 구리디가 그리고 썼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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