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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Feb 22. 2023

결국 그 작은 도토리는 나무가 되거나 도토리가 된다

그림책 <도토리 시간>을 읽고


  연륜(年輪)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에 의하여 이루어진 숙련의 정도를 뜻하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차곡차곡 경험이 쌓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능숙해진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면 그래서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면 여유를 갖고 내가 맡은 일이나 일상 모두를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막연한 믿음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어른'이란 단어가 주는 애매모호한 중량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과거 내 주위 선배 어른들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물론 예외적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리고 젊었던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선배 어른들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문제상황을 잘 해결하고, 소란 떨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보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최소한 젊은 날의 미숙한 나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그 믿음이 이렇게 뒤통수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의연하게만 보이던 선배 어른들의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많이 불안하고, 더 많이 조심스러워지고, 더 많이 걱정한다. 왜 나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들처럼 능숙하지 못할까? 왜 나이가 들수록 나는 더 무섭고 걱정되고 조바심 내는 것일까? 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제 분야에서 십 년 이상 일하면 전문가로 인정해 준다는데 왜 나는 그 시간을 훨씬 넘기고도 당당하게 내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못할까? 암만 생각해도 못났고 모자란 나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 자책은 깊어지고, 자존감은 떨어지고, 나는 기어이 도토리보다 더 작아진다.


나는 왜 이다지도 어른스럽지 못할까?     


아주 힘든 날이면 나는 작아져

여행을 떠날 시간이야     


  이렇게 속상할 때면 나는 나의 도토리 속으로 들어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가만가만쉬어야 한다. 안심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휴식과 그렇지 않은 쉼은 따로 있으니 말이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 그렇게 도토리는 나의 다정한 쉼터가 되고, 단단한 안전지대가 된다.

  

  너무너무 힘들어 나조차 나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내면을 민감하게 인지하고 여행을 떠날 시간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꼭 필요한 일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섬세하게 자각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것, 스스로를 위해 충분한 쉼을 것, 내면의 에너지가 차오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줄 것!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삶의 고비에 넘어져 상처받고 흔들리는 나를 끝끝내 놓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그리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상을 떠나 색다른 곳을 찾아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바쁘게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 고개 들어 하늘 보면서 잠깐, 점심 식사 후 달달한 딸기라테로 당충전하면서 잠깐, 말도 안 되는 업무에 열이 훅 오를 때 크게 심호흡하면서 잠깐, 책상 위 외롭게 말라가는 다육이에게 물 찔끔 주면서 잠깐, 집에 돌아와 가만히 멍 때리면서 잠깐, 주말에 사두었던 그림책을 넘기면서 잠깐, 늦게 돌린 빨래를 베란다에 널면서 우연히 마주친 달님 보고 잠깐...... 그대로 도토리만큼의 시간이라도 나에게 줄 수 있다면, 잠깐의 시간 동안 내가 나를 바라봐주,  다독다독해 주고,  별일 아니라고, 다 지나간다고, 나만 실수하는 것이 아니라고, 다들 그렇고 그렇다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다시 하면 된다고, 안되면 멈춰도 된다고, 내일은 금요일이라고, 그때그때 나를 까먹지 말고, 나를 미루지 말고, 나를 챙기면 된다.


  오늘 나에게 선물한 도토리만큼의 시간은 언젠가 뿌리 깊은 참나무가 되어 거센 바람이 지나가고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도 작고 알찬 도토리들을 도롱도롱 키워낼 것이다. 아름드리나무도 그 시작은 도토리보다 작은 씨앗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결국에 나도 나무가 된다. 나무가 못된다고 하면 도토리가 된다. 다 괜찮다.


  그림책을 보는 내내 왜 하필 도토리일까 궁금했다.

  처음엔 도토리보다 더 작아진 나, 즉 너무너무 힘든 나를 크기로  드러내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든 또 다른 생각.

  여기에서 도토리 시간을 힘들 때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해석한다면 도토리는 나의 내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속으로 들어가 고요히 쉬고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 다시 말해 나의 내면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고 단단하고 따뜻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힘든 내가 기대어 쉬어도 충분한 나, 그러니 나는 나를 믿을 수 있다. 믿어야 한다.

  자존감이 훅 떨어지고 끝도 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이 힘이 들 때 나는 나를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괜찮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나를 믿고 인정해 주자. 뭐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의 결론을 내 맘대로 내려본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까^^;        


덧붙이는 글 :

  어쩌면 예전의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선배 어른들을 보았던 것 같다. 그들 또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소리 없이 아등바등 댔을지도 모른다. 철없고 미숙한 후배 앞에서 시시콜콜히 자신의 고민을 나누지 못했을 뿐, 늦은 밤 혼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하루치의 고됨을 삼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쓰다 보니 재킷 안주머니에 늘 사직서를 넣고 다닌다고 농담처럼 말하던 선배가 생각난다. 농담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물론 자신의 분야에서 연륜을 발휘하는 멋진 어른들도 많다. 그리고 나처럼 당황하고 전전긍긍하는 어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 혼자만 이렇게 당황하고 있다면, 본의 아니게 진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멋진 어른이든 서툰 어른이든 고생 많으시다.

당신도 나도 도토리도 참나무도 모두모두 평안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림책 <도토리시간>은 이진희 작가님이 쓰고 그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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