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경달다 Mar 06. 2023

이 세상의 모든 아침과 밤을 나와 함께 해 줘

그림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을 읽고


  힐드리드 할머니는 말도 안 되게 어리석은 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분명하다.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지나갈 밤을 몰아내기 위해 해가 솟을 때까지 할머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며 애를 쓴다. 진심으로 가득 찬 무모함은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밤새 그렇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밤과 싸우느라 너무 피곤해져서 정작 환한 낮에는 잠이 든다. 그러다 눈을 뜨면 다시 밤일 테고 할머니는 싫어하는 밤을 몰아내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을 할 것이다.


  처음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을 을 때는 어리석은 할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그녀의 모습에서 융통성 없는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단 내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혼자서 끙끙대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일도 미리 걱정하고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허둥대는 나! 게다가 고집은 있어서 남들이 보기에 답답해 보일지라도 미련스럽게 내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고약한 점까지...


  이런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쉬운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렵게 일을 하느냐고, 결과는 매한가지일 텐데 왜 그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냐고, 다른 사람 말도 듣고 바꿔보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다. 대충 해도 되는 건 그냥 대충 넘어가고, 안 되는 일은 빨리 포기하면 좋을 텐데, 이렇게 융통성이 없으면 어떡하냐고 자책하지만,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  난감하다.

  

  힐드리드 할머니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판단한 뒤 정확한  충고를  사람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밤은 그냥 지나간다고, 그러니 어두워지면 밀짚 침대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자면 된다고, 아침이 되면 헥삼 언덕 위로 해님이 환하게 솟아오를 거라고, 그러니 바보 같은 짓은 당장 그만두라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똑바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힐드리드 할머니가 더 이상 피곤해하지 않도록 말려야 한다. 그게 할머니를 위한 일임이 분명하니까.

  

  그런데 말이다.


  사람은 참 어리석은 데가 있다. 옆에서 아무리 맞는 말을 하고, 애정 어린 충고를 건네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직접 경험하고 깨질 때까지 자기 방식을 고집하고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도 쉽게 포기하지 못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어쩌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혹은 틀렸다고 말하는 내 방식이 결국엔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픈 오기를 붙잡고, 혹은 내 삶은 내 방식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에 이끌려 남들이 보기에 결말이 뻔한 어리석은 길을 꾸역꾸역 갈 때가 있다. 외롭고 두려운 마음으로 말이다.

  

  왜 자신을 힘들게 하나, 다른 사람의 충고대로 따르면 더 편할 텐데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안타깝고 답답하다. 진심으로 저를 위한 충고를 하는데 제 방식만 고집하고 도통 바뀌지 않으니 속이 상한다.

  왜 나를 믿지 못할까, 내 방식이 맞을 수도 있는데 다들   잘못됐다고만 생각할까 충고를 듣는 사람도 속상하긴 마찬가지다.


  결국 충고는 서로의 마음에 닿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허공을 맴돌고, 충고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서운하고 야속하다.     



  그림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다.

  이번에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늙은 사냥개에게 눈길이 오래 머문다. 밤을 몰아내기 위해 할머니가 빗자루로 열심히 쓸고 비빌 때도, 밤을 펄펄 끓여 김으로 날려 보내려 할 때도, 밤을 친친 감아 꾸러미로 엮으려고 덩굴을 모을 때도, 밤에게 자장가를 불러 줄 때도, 퉤-하고 밤을 향해 침을 뱉을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밤한테서 등을 돌릴 때도, 헥삼 언덕 뒤로 해님이 환하게 솟아오를 때까지 밤새도록 힐드리드 할머니 곁을 지킨 늙은 사냥개 말이다.

  

  할머니가 던져주는 밤을 꿀꺽 삼키지도 못하는 늙은 사냥개는 밤새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어떤 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늙은 개는 밤하고 싸우느라 너무 피곤해서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크게 하품하는 할머니 옆에서 같이 하품을 하고, 잠든 할머니의 발치에 누워  함께 잠이 든다.


  사실 늙은 사냥개는 힐드리드 할머니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못한다. 어리석은 할머니를 멈추게 할 수도 없고, 멈추게 하려는 생각도 없다. 할머니는 계속 밤과 싸우느라 피곤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사냥개는 지금처럼 할머니를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늙은 사냥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꿈쩍도 하지 않는 거대한 밤을 몰아내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동안 적어도 할머니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허무맹랑한 일상을 묵묵히 나눈 늙은 사냥개 덕분에 할머니는 할머니만의 방식과 생각대로 당신의 삶을 견디고 살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밀짚 침대 속에서 잠든 할머니의 표정이 어둡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늙은 개와 함께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어리석고 쓸데없어 보이는 삶일지라도 변함없이 지지해주고 곁을 지켜주는 그 마음이 고맙고 든든해서 할머니는 다시 기운을 되찾고 거대한 밤과 마주 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언젠가는 힐드리드 할머니가 깨닫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애쓰지 않아도 어두운 밤은 지나간다고, 그때가  쓸데없는 노력을 했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책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삶의 목표를 잃고 휘청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가 온다 해도  힐드리드 할머니 곁에는 늙은 사냥개가 함께  것이다. 오랜 시간 그래왔던 것처럼 할머니를 바라보고 함께 잠들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해님이 환하게 솟아오른 낮 동안 당신의 삶을 뚜벅뚜벅 살아갈 것이다. 할머니가 있는 세상의 모든 아침과 밤을 함께 해주는 늙은 사냥개와 말이다.      

  

   비 맞고 있는 나에게 우산을 씌어주고픈 당신에게

   어리석은 일일 테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와 함께 비를 맞아줘     


  비를 맞고 있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려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비 맞고 아플까 봐 걱정해 주고 어려움을 덜 겪게 해 주고픈 그 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내리는 비를 나와 함께 맞아줄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리석은 내가 어리석은 방식으로 세상과 맞설 때 그 방식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고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언제나 함께 있어줄 테니 걱정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한번 해 보라고, 비를 맞는다고 해서 큰일 나는 건 아니라고, 비 속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씩 하고 웃어주는 사람! 답답한 마음을 한번 접어두고 어리석은 나를 믿기다려주는 사람이 간절히 필요할 때가 있다.


  물론 흠뻑 비를 맞고 난 뒤 감기에 걸려 몇 날며칠 끙끙 앓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앓다 보면 어느새 열은 내리고 감기는 나을 것이다. 배가 고파진 나는  따뜻한 밥이 생각날 것이다. 밥을 먹고 든든해지면 다시 비를 맞게 되더라도 덜 무서울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옆에서 기꺼이 나와 함께 있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당신이 있으니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이다.

  그렇게 바보 같아 보이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혹시나 이다음에 당신이 비를 맞고 있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 옆에서 같이 비를 쫄딱 맞으면서 동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 비가 그치면 하늘에 뚱실 떠오른 무지개를 보며 환하게 웃는 운 좋은 날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우리는 서로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덜어내는 존재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아침과 밤을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힐드리드 할머니가 완전히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할머니가 밤을 몰아내기 위해 열심히 빗자루질을 하고, 바느질을 하고, 가위질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땅을 파고, 뛰어다니는 동안 할머니의 실력이 향상되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삶이 더 윤택해질 수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늙은 사냥개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 엔딩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그동안 나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해준 사람들에게도 더불어 감사한다. 그러한 마음도 잊지 않겠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를 위해 충고해 주시면 좋겠다. 속 터지는 나 때문에 그대들이 고생이 많다. 복 받으실 거예요^^


  <그림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은 아놀드 로벨이 그리고 첼리 두란 라이언이 썼고, 정대련 님이 옮기셨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출발선 앞에 서서, 싱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