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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Mar 12. 2023

애쓰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림책  <빗방울이 후두둑>을 읽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며 오히려 촌스럽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살아봤자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자신에게 남는 것은 질병과 노화 정도! 그래서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에 이어 주는 돈만큼만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업무 범위 이외의 다른 회사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조용한 퇴사'가 직장 생활의 유행어로 뜨고 있다.


  날이 갈수록 개인은 자신의 자유와 삶이 더 중요하고, 공동체를 위한 희생 따위를 원치 않는다. 그 이전 세대가 금과옥조처럼 지녔던 삶의 태도와 가치는 달라진 세상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공동체의 삶을 나 몰라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일을 하느라 초근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뼈와 시간을 갈아서 잘되는 사회는 더 이상 나를 보호해 주는 공동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쓰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찜찜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라서 그럴까? 여태껏 나를 살게 한 촌스러운 삶의 방식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 썩 유쾌하진 않다. 그럼 나는 지금껏 참 바보같이 살았다는 말인가? 자꾸만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으이구, 이러니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그림책 <빗방울이 후두둑>에서는 가로수가 기우뚱할 정도로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자 사람들이 일제히 우산을 편다. 우산은 바람과 비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문제는 우산의 상태이다. 어떤 사람의 우산은 튼튼해서 비바람에 잘 견디는 반면에 여자의 우산은 바람에 뒤집히고 우산대는 부러진다. 급기야 당황한 여자는 비를 피해 달리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지기까지 한다. 산 넘어 산이다.

  

  내리는 비를 막을 수는 없다. 먹구름은 몰려오고 물폭탄은 언제든지 쏟아질 수 있다. 다만 그때를 대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튼튼하고 좋은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로 부족하면 여러 개를 준비한다. 작은 차라도 사야지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아침밥도 챙겨 먹지 못한 채 버스에 몸을 싣는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에도 이게 나의 튼튼한 우산이 되고, 내 가족을 비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하며 버틴다.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우산이 자동차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버리지 못한다.


  비를 맞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

  그까짓 거 내리는 비 좀 시원하게 맞으면 어때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매번 내리는 비를 쫄딱 맞게 되면 감기에 걸리고, 아프다는 것을.... 그리고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질수록 내리는 비를 온전히 맞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 고통을 나도 겪고 싶지 않지만 내 가족에게는 더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그 마음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두 장면은 볼수록 마음이 아프다.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달리는 사람들, 그래서 경주마처럼 한 방향을 향해서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사람들, 애쓰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모르는 사람들, 어쩌면 나이고 당신이기도 한 사람들 말이다.

  그들에게 왜 그렇게밖에 못 사느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 참 어리석고 모자란 방식으로 살아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내심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럴 순 없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비를 맞고, 비를 뚫고, 비를 견디면서 여기까지 애쓰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다만, 우리가 놓치지 않으려고 온몸에 단단히 힘을 주며 잡고 있었던 우산에 대해 이제는 찬찬히 말해주면 좋겠다.

 

  비바람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해 주던 우산은 돈으로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면 가끔씩 비를 맞아도 괜찮다는 것을,

  비바람이 너무 심하게 몰아쳐 우산 하나로는 절대 피하기 어려운 날은 굳이 집 밖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비도 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바람도 언제든지 불어올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결코 당신 탓이 아니라는 것을,

  비를 맞아도, 비를 맞지 않아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라는 것을,

  그동안 애써주어서 정말 정말 고맙고,  덕분에 여태껏 잘 살아왔다고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차분차분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당신이 아니 우리가 뒤집혀진 우산을 들고 가든, 버리고 가든 상관없다는 것도 알면 좋겠다.

 

 처음에는 거의 마지막 부분의 이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왕 비를 맞으면서 천천히 제 속도대로 가겠다고 씩씩하게 마음먹은 마당에 굳이 비 막는 데 아무 소용도 없는 부러진 우산을 왜 들고 갈까 의문이 들었다.

 여전히 미련이 남은 것인가, 습관이나 태도라는 게 쉽게 바뀌긴 어려운 것인가 이런 생각에 살짝 답답하기도 했다. 늘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오늘은 씩씩하게 잘 살아야지 했다가 금세 소심해지고 두리번대는 내 모습이 비쳐 보여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고 바보 같아 보여도 그녀가 웃고 있으면 괜찮은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애써서 비를 피하고자 노력했던 것도 그녀의 방식이고, 에라 모르겠다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그녀의 방식이다. 그렇게 삶의 태도가 바뀌기까지 그녀는 비를 맞고, 엎어지고, 힘들었지만 걸어가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느리지만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속도대로 변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우산을 들고 가다가 언젠가는 두 순 가볍게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내려놓은 우산은 길을 떠도는 멍뭉이의 쉼터가 될지도 모른다.

  세상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누구의 삶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애쓰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들의  삶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언젠가 나를 잘 아는 지인이 직장일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쪼깬기(쪼금만 게) 돈 번다고 고생이 많다."

  그 말에 울컥했던 건 나의 애씀을 나 아닌 누군가가 알아보고 인정해 주었다는 마음 때문일 게다.

  그때 지인이 다짜고짜 직장에 그렇게 목 매달 필요 없다고, 일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는 결국 너만 손해라고 이야기했다면, (물론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임을 잘 알지만) 내심 자신은 못 챙기면서 바보같이 직장에만 매달리며 안달복달하는 못난이 취급받는 느낌이 들어서 속상했을 것 같다.  

  요즘 주변에 업무 때문에 고생하는 동료들이 있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그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그래봤자 다 소용없다고 그들을 위해주는 것처럼 말해왔는데 이제 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애씀을 알아봐 주어야겠다. 그리고 잠시 숨 돌릴 수 있도록 차 한잔 아니면 달달한 사탕이라도 권해야겠다.

  누군가의 애씀으로 인해서 지금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평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림책 <빗방울이 후두둑>은 전미화 님이 그리고 썼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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