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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Mar 21. 2023

나는 당신을 떠올리며 행복해졌다

그림책 <두 갈래 길>을 읽고

  김환기 작가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벽 한 면을 다 차지할 만큼 커다란 화폭 위에 빼곡히 그려진 수많은 네모 속 푸른 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붙잡고 있는, 혹은 이미 놓쳐버린 인연들을 떠올렸다.


  저렇게 수많은 존재들 사이에서 작고 작은 우리가 어쩌다 만나게 되었고, 또 어찌어찌하다가 헤어지겠구나. 지금 잡고 있는 손을 놓쳐버리면 다시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겠구나. 우리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은 세상 속에서 떠밀려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는 참으로 애틋하고 서글픈 존재이구나. 까마득하게 깊고 넓은 우주 속에서 보이지 않는 별의 파편들이 먼지가 되어 헤매고 있구나. 결국에 당신과 나는 먼지처럼 우주처럼 그렇게 만나고 서로의 세상에서 사라지겠구나.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그림책 <두 갈래 길>을 보면서 김환기 작가의 그림 앞에서 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림책 속 두 사람의 길이 겹치고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장면 앞에서 또 한 번 울렁거리는 마음을 느끼며 나의 길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인연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길 중에서 하필이면 나의 길과 당신의 길이 겹쳐버렸다. 길 자체가 겹치는 것도 대단한 우연이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바라보았다는 것은 실로 찬란한 순간이다.

  

  길이 겹치더라도 그 또한 긴 여정의 아주 짧은 부분일 뿐이다.  당신과 나의 속도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우리는 겹쳐진 그 길 위에 함께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혹여나 시선이 마주쳤다 해도 급한 일이 있는 누군가는 서둘러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마주친 타인의 존재에 놀라 못 본 척 그냥 고개를 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외면하고 각자의 길을 갈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신과 나는 그리 하지 않았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안녕' 인사를 나누고,  여태껏 몰랐던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갈라진 길 앞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갈 것을 선택했다.  조심스럽게 보폭을 맞추고 서로의 속도를 존중했다.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예쁘고 순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고, 불어오는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져주었다. 달라지는 계절만큼 변덕을 부리는 마음에 대해, 날씨만큼이나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에 대해, 끝까지 부르지 못한 노래와 버려진 그림에 대해, 닿을 수 없는 날들과 잡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씩씩하고 다정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걷고 쉬고 또 걸었다.


  매 순간 손을 잡고 걸어갈 수는 없었다.

  때로는 서로의 길을 바쁘게 걷느라 침묵했다.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 서로를 잊기도 했다. 어떤 날은 부담스럽기고, 또 어떤 날은 차라리 혼자이면 어떨까 생각한 날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화들짝 놀라며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아직은 부르면 닿을 곳에 있는 당신과 나를 보면서 안심하며 손을 내민다. 고맙게도 우리는 아직 함께 걸어가고 있다.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연인이며, 고마운 동료이고, 즐거운 친구이고, 애잔한 가족이다.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열심히 가고 있는 나와 당신!

  모든 을 우리가 함께  순 없어도 나는 반짝이는 존재의 힘을 믿는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든 날이면 기꺼이 나에게 달려와 줄 당신을 믿는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날 일으켜주고, 내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고, 다친 데가 있나 살펴봐주고, 잠시 앉았다 가도 된다며 기다려 줄 당신을 믿는다.

  어쩌다 당신이 지칠 때면 나 또한 기꺼이 당신에게 달려가 안부를 묻고, 따뜻한 물 한 잔 건네며, 잠시 쉬었다 가자고 어깨를 내어줄 것을 믿는다.

  

  작고 작은 나와 당신이 이렇게 만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눈물 나는 일이다.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때가 올 때까지 우리는 그저 순간을 찬란하게 살아가면 된다.

  

  살면서 힘든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차피 내 몫의 일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미안하고, 괜히 그들까지 마음 쓰게 하는 게 영 편치 않. 그렇게 혼자서 애쓰고 끙끙대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기면 두려운 마음에 주저앉고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리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힘들고 두렵다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괜찮다고 말해달라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고민해 달라고, 안되면 잠시라도 함께 있어달라고 말이다.

  최종 선택과 결과는 오롯이 내 책임인 것은 변함없지만 나는 주변의 고마운 당신들 덕분에 다시 힘을 내고 여전히 나의 길을 간다. 나 또한 당신들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이 되길 빌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두 갈래 길>을 보면서 내 주위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다시 행복해졌다. 그들도 나를 떠올리면서 아주 잠깐이라도 행복하면 좋겠다.

  그림책 <두 갈래 길>은 라울 니에토 구리디가 쓰고 그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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