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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May 06. 2023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슬플 줄이야

그림책 <블레즈 씨에게 일어난 일>을 읽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즐겁게 모임을 갖고 돌아온 그날 밤,  갑자기 아랫배가 쥐어짜듯이 아프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두통도 심해지고 손발에 힘이 빠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속이 꽉 막혀서 답답하고 괴로운 밤이었다.

  평소 위장에 탈이 자주 나는 편이라 일 년에 서너 번은 소위 말하는 급체 증상으로 된통 고생을 한다. 이번에도 으레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동네 내과를 찾았고, 일주일 정도 약이랑 죽을 먹으면서 조심하면 나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이상했다.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열이 계속 나고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다른 내과를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지속적인 통증으로 인해 일상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습관처럼 출근했지만 반나절 겨우 버틸 수 있었고, 결근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미련하게 보내고 나서야 상급 병원을 찾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한 결과 염증 수치가 많이 높아서 바로 입원 치료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들었다.

  하지만 직장일을 대충이나마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렇게 나는 이틀 정도 겨우 시간을 얻어(?) 부랴부랴 업무를 정리하고도 모자라 일거리를 싸들고 입원했다. 링거를 꽂고 병원 침대에 앉아서도 일하는 내 모습이 나조차 어이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일이니까 당연히 내가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책 <블레즈 씨에게 일어난 일>에서 블레즈 씨는 자신의 상태가 평소와 달리 이상하다고 분명히(!) 느꼈다. 하지만 회사에 가야 하는 블레즈 씨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고, 걱정거리를 잊기 위해 더욱 일에 몰두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내일이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블레즈 씨의 상태는 더 나빠졌지만 어쨌든 회사에 가야 하니까 아침이 되면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밤마다 블레즈 씨는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날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모든 게 엉망이었다. 다음 날이 되고 그다음 날이 되어도 나아진 건 없고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지만 블레즈 씨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어쨌든 회사에는 가야 하니까.


  책장에 꽂혀있던 그림책을 꺼내어 다시 펼쳐본다.

  밤마다 스스로에게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는 블레즈 씨를 바라본다. 그가 주문처럼 기도처럼 되뇌었을 괜찮아질 거라는 말의 의미를 오래오래 생각해 본다.


  그는 무서웠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이 깨져버릴까 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까 봐. 그래서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을 것이다.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게 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그를 움직였을 것이다. 아무리 괴로워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회사에 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서게 했을 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힘들고 짜증 나는 일상이겠지만 지금은 간절하게 다시 찾고 싶은 일상일 테니 말이다.

  블레즈 씨의 괜찮다는 그래서 참 슬프다.


  괜찮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토닥토닥 위로와 격려를 담아서, 힘내어 다시 해 보자는 응원을 담아서,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담아서, 걱정 말고 안심해도 된다는 지지를 담아서, 여전히 너의 편이라는 진심을 담아서, 밝고 씩씩한 긍정의 힘을 담아서 우리는 좋은 습관처럼 타인과 자신에게 괜찮다는 말을 한다.   

   

  다시 블레즈 씨의 괜찮다를 생각해 본다. 밤마다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괜찮다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진심으로 괜찮아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자신을 속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걱정거리가 늘어가는 만큼 간절하게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괜찮다는 말로 자신에게 일어난 비상 상황을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과 회피는 엄연히 다르다.


  블레즈 씨는 서둘러 회사를 갈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자꾸만 변하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걱정하고 병원이라도 갔어야 했다. 물론 병원에 간다고 블레즈 씨가 나아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했어야 했다. 적어도 두려움에 휩싸인 채 회사에 가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블레즈 씨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올해 나는 바뀐 업무로 인해 신경이 더 쓰였고 적응하느라 나름대로 애를 썼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느껴졌지만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힘들다고 징징댈 수 없으니 얼른 바뀐 상황에 적응하고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내가 보내는 이상 신호를 회피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한계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며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일일이 챙기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른인 것이다. 다들 그렇게 참고 견디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지금 괜찮은 지 아닌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괜찮은 지 아닌지 제대로 알고 싶지 않은 채 오늘을 살고 있다.

 습관처럼 일터에 가고, 걱정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내게 주어진 일들에 몰두하고, 타인에게 나의 마음을 숨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괜찮다는 말로 자신을 속인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러니 유난 떨지 말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으면서 일상을 연장한다. 그것이 최선이라 믿으면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면 결국엔 터져버리고, 일상은 멈춘다. 괜찮다고 나를 속이고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겠지만 벌어질 일들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블레즈 씨를 비난할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찬찬히 살펴보고, 제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자신만큼은 스스로의 상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플 만큼 아프고 나면 다시 새로운 변화와 시작이 있을 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 아픔을 오롯이 겪어야 하는 것은 자신일 테니 너무 아플 정도로 내버려 두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도 나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말고 그때그때 살펴봐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한 달을 꼬박 앓고 나서 지금은 서서히 회복하며 일상으로 복귀 중이다. 다시 예전처럼 바쁘게 살다 보면 지금의 이 마음도 잊어버리고 바보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 모른다. 나라는 사람은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지 싶다.

  세상 모든 것들이 대부분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에 더 위중한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보기에는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대단한 일을 겪은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고 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쓰는 이유는 괜찮다는 말로 내게 생긴 아픔과 변화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어리석음을 정말로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파보니 진짜 힘들다.

      


덧붙이는 글 :
  하나. 일상이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왜 있겠는가?  아파서 휘청이던 시간이 블레즈 씨에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었으마지막 부분에서 괜찮다는 말을  건 맞는 표현이겠지. 정말로 괜찮을 때 괜찮다는 말은 회피가 아니다.


  둘. 한참 아팠을 때는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나 좋아하고 이 되었던 그림책을 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내가 근 한 달 만에 다시 그림책을 본다.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좀 더 나를 잘 살피며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림책 <블레즈 씨에게 일어난 일>은 라파엘 프리엘이 쓰고, 줄리앙 마르티니에르가 그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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