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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May 28. 2023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힘셀 줄이야

그림책 <한숨 구멍>을 읽고

  한바탕 아프고 회복하기까지 한 달 정도 걸렸을 뿐인데 한 계절이 다 지난 느낌이다.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지나간 한 달이 나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찬찬히 복기해 본다.

   

  가장 큰 변화는 먼저 떨어진 체력과 함께 자신감도 덩달아 훅 떨어졌다는 것이다. 평소에 조심하며 조절하던 한계치는 예상을 훌쩍 벗어나 바닥으로 밀려났다. 이 정도까지는 충분히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대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뭔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러다가 내 몫의 기본적인 일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존재로 남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나 때문에 업무를 더 맡거나 원활하지 못한 일처리로 불편을 겪은 사람들이 표현은 안 해도 나를  답답하게 여기고 꺼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불안과 염려는 또 다른 근심을 불러들인다. 몸과 마음이 약해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커다랗고 까만 구름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참 못났다 싶지만 그때 당시엔 그랬다. 마음을 다잡고 차근차근 회복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면 또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으나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어리석다.

  

  새 유치원에 가야 하는 첫날, 단발머리의 작고 귀여운 송이가 눈을 내리깔고 입을 꼭 다문 채 뽀루퉁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가슴속에 가득 들어 있는 것 같은 까만 구름 때문에 밥을 먹을 때에도, 아빠 손을 잡고 차를 탈 때에도, 유치원 친구들과 춤추고 노래할 때에도 송이는 답답해서 한숨을 쉰다. 송이의 가슴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구름은 점점 커져서 결국엔 비를 뿌리기 시작했고 송이는 혼자서 그 비를 맞고 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만 하는 어린아이 걱정과 불안을 작가는 까만 구름으로 표현했다.

  가기 싫다고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고 혼자서 한숨을 폭폭 쉬고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짠하다. 송이는 왜 그랬을까? 어쩌면 그 작은 아이는 자신의 걱정과 불안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도와달라고 손 내밀어도 된다는 것을, 그러면 기꺼이 달려와 다정하게 잡아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첫날이라 힘들었을 송이 얼굴을 가만가만 어루만져주는 유치원 선생님, 자신이 만든 바람개비를 건네는 친구 아영이, 송이를 데리러 온 엄마까지.... 까만 구름이 내리는 비를 맞느라 잔뜩 젖어버린 송이를 닦아주고, 말려주고 감싸 안아주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말이다. 덕분에 송이는 내일부터 괜찮아질 것이고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고 맛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잘 살아낼 것이다.


  다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만든 검은 구름도 점점 커지고 커져서 비를 뿌렸다. 그 비를 나 혼자서 다 맞고 있는 줄 알고 솔직히 서러웠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쉽게 지친다더니 맞는 말이다. 나는 몸도 마음도 예민할 때로 예민해졌다. 나 또한 송이처럼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나의 안부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내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잔뜩 움츠려있는 나에게 카톡으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 다른 것 다 소용없다고 지금은 온전히 건강만 생각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내 편을 들어주던 사람들, 뒤늦게 아프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듣게 되었다며 왜 빨리 연락하지 않았냐고 볼멘소리 하던 나의 오랜 인연들, 그저 맛있는 거 먹는 게 남는 거라고 맛난 밥을 사주면서 많이 먹고 힘내라고 그리고 월급 받으면  더 비싼 거 사내라진담 같은 농담으로 나를 웃게 해 준 사람들... 다 괜찮다고 앞으로 더 괜찮아진다고 주문처럼 기도처럼 말해주고 또 말해주던 고맙고 다정한 이들이 내 곁에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와 눈빛과 마음과 괜찮다가 모이고 모여서 비에 젖은 나를 따뜻한 온기로 말려주고 꼭 안아주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여태껏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니구나, 민폐만 끼치는 못난이가 아니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괜찮은 사람이구나.


  나는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었다.

  

  

  타인의 인정과 지지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사람은, 아니 나란 존재는 참 작은 것에 흔들리고 또 작은 것에 힘을 얻는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작은 위로와 배려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이 모이고 모여서 쓰러진 이를 일으켜주고 무너진 이를 다독여준다. 그리고 다시 살게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 소리 내어 부를 묻고, 기꺼이 손 내미는 친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하지는 않는 것!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몇 번이고 말해주는 사람인가? 기꺼이 달려가 다정하게 손 내미는 사람인가? 담담하고 단단하게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인가?

  진심으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5월의 장미가 여전히 만발이다. 나도 저 장미처럼 괜찮게 예쁘게 씩씩하게  잘 살아야겠다.


  그림책 <한숨 구멍>은 최은영 님이 쓰고 박보미 님이 그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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