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사실, 향기가 없다.
<자유 선언>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카페에서 비엔나 커피를 시켜 먹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도 유니크했던 그 커피가 지금은 유명 브랜드가 되었다는 것은 논외로 하고.
일석 선배는 나와 면담을 하자면서 장소는 나보고 직접 알아보라고 했다.
당시, 시내에서 커피를 만날 만한 곳은 카페 실내에 분수대가 있던 트레비와 C도로와 가깝던 자유선언 정도였다.
면담을 다 마치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선배는 장소를 직접 골라보라고 했던 이유를 들려주었다.
일종의 사전 테스트라고 했다.
내가 어떠한 스키마를 가지고 있는지 미리 아는 방법 중에 내담자가 골라둔 장소를 확인해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다. 자유선언 시절, 짙은 색 감색에 어두컴컴했던 느낌과 달리 저런 톤의 시멘트 날 벽에 널찍한 마호가니 빛깔의 테이블과 벚꽃 홀더가 좋다.
그때는 쇼펜하우어에 너무 심취해 있던 게 아니었을까?
겉멋이 들어 현학적 허세를 부리던 시간도 꽤나 흘렀다.
그에 비해, 향기가 없어도 세상 좋은 향기는 다 품고 있을 것 같은 벚꽃은 얼마나 좋은가.
벚꽃이 만개한 지도 여러 날 지나고, 남은 꽃잎 마저도 오늘 새벽에 비가 되어 내리던데..
이전만큼의 어두컴컴한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힘든 이번 주였으므로
이대로는 아니다 싶어, 회사 건물 1층의 이디야커피를 들렸다.
맛도 맛이지만, 사실 그것과는 사뭇 다른 별개의 선물을 전해받는 이곳.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앞서의 편안함과 힐링.
오늘처럼 쓸쓸하고 축축한 아침에도 손끝에 저릿한 무언가가 전해진다.
하루를 사는 동안,
입가에 흐릿한 미소 한번쯤 짓는 일도 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된 뒤부터는 이런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은 나만의 방법으로 가꾸곤 했다.
피 땀 눈물
설명할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BTS의 앨범 에디션.
나이 어린 직원들 덕분에 이름을 들어봤지만 내가 개인적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테마이며 카테고리이다.
그러니, 일부러 그 노래를 찾아듣는다거나 하는 일은 더욱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다, 어쩌다 듣게 된 그들의 철학적 배경,
그 뒤로 깊은 호기심이 생겼다.
자유선언 시절에 선배를 통해서 얻었던 철학적 사유를 노래를 통해 전하고 있었다니.
데미안이 있고 당연히 싱클레어가
그 안에 내가, 그리고 칼 융의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었다.
연암 선생의 능양시집서도 좋았지만 그것만으론 좁았구나 싶었다.
싱클레어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아이돌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나는 오늘,
이곳, 이디야에서 방금 좋은 커피를 내게 대접하기 위해
두번을 추출한 커피 향을 BTS 의 '피 땀 눈물'에 옅게나마 보태 보고자 한다.
당신도 오늘 당신의 힐링 포인트에서
피 땀 눈물을 덧입혀 보시기를...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