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천년 묵은 너구리와 감찰 선생

설화의 재탄생

옛날 깊은 산중에 천 년 묵은 너구리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이놈이 ‘내가 세상에 나가서 사람 행세를 해봐야겠구나’ 하더니, 후딱 재주를 넘으니 영락없는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그래, 마을을 향해 걸어오는데 벼락치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보니, 장승이라. 그 한다는 말이 이랬다.


“이놈! 너구리야. 네 놈, 서울 장안 안은 더는 못 간다. 내가 수천 년 먹은 광풍의 나무로서 눈 만들고, 코 만들고, 입 만들고, 사람 체격으로 만든 뒤에 삼거리 길에 이처럼 세워 놓고 잡귀, 잡신들이 범접을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줄 알았으면 서울 구경은 아서라."


너구리가 자꾸 빌기를 “잠깐 내가 댕기오끼, 좀 가자.”고 하니, 그 장승이 그만 마음이 착해서 내버려 두었다.

서울 장안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더 보니, 햐, 산속에서만 살다가 나와 보니까 볼 게 많았다. 하루는 도령행사를 하며 길을 걷노라니, 정승 한 분이 등청했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마주치게 되었다. 대감이 젊은 도령의 관상을 보아 하니, 인물이 말쑥한 게, 귀태가 나는지라, 대과 급제를 시킬 목적으로 데려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데려다 놓고 공부를 시켜 보니, 어떻게나 똑똑하고 잘하든지 천재 그 자체였다.

결국, 정승이 사위를 삼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그 옛날 감찰선생이라는 분이 천문을 보아하니, 서울 장안에 너구리 새끼들이 쏟아질 성 싶었다. 감찰선생이 길을 서둘러 대감을 찾았다.


“하이고, 어서 오시라.” 대감이 대문까지 나가 감찰선생을 들였다.


“어찌 이리 기별도 오셨습니까?”


“예, 대감께서 하도 서랑을 잘 보셨다고 해서 구경 좀 하러 왔습니다.”


“허허, 우선 안으로 드십시다.”


“뭣들 하느냐, 어서 주안상을 들이거라.” 했다.


사랑채에서 주안상을 마주 한 채로, 주거니 받거니, 권커니 자커니 하고 있는데 서랑이 안 오는 거였다.


“어서, 빨리 와서 인사 드리잖고 뭘 하느냐고 일러라.”


“대감 마님, 서방님이 지금 배앓이를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저런.”


“나에게 약이 있으니 바로 이 약을 취하면 나을 것이오.”


“역시, 감찰 선생이시오. 어서 들라 해라.”


껄걸 웃으며 약주를 권했다.


잠시 뒤, 서랑이 도착하여 인사를 올렸다.


“아! 거참 인물도 좋구려.”


“이리와 앉으시게.”하고는 하인을 따로 불러 세웠다.


“자네 말일세, 삼거리에 장승이 있잖은가?”


“예, 선생님. 어딘지 알고 있습니다요.”


“자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그 장승을 속히 빼오게나.”


그래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 가서 장승을 빼내며 감찰선생이 널 빼 오라신다며 쑤욱 뽑아 올렸다.


‘아이고, 요놈의 너구리가 내가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가서는 나까지 죽게 되었구나.’


하인들이 얼마쯤 지나, 그 장승 떠메온 것을 내려 놓으니 감찰 선생이 호통을 치셨다.


“네 이놈, 장승아! 네 이놈 귀가 있으면 한번 들어봐라. 네가 광풍에 살았던 나무로서 늘 목숨을 졸이다가 어, 눈 만들어 주고, 입 만들어 주고, 이래 여기 저기 만들어서 사람 형상을 해가지고, 삼거리 길에다가 우뚝 세워 둔 것은 잡귀 잡신들이 장안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을 정녕 몰랐단 말이더냐. 야 이놈아 입이 있으면 말 좀 해 보거라.”고 크게 꾸짖더니 “아, 이 놈 네 놈 장승이 들여 보낸 것이렷다. 얘들아, 그 장승 낯 씻기거라.”


하인들이 분주하게, 물을 떠다가 장승 낯을 박박 씻기고 나니 그 물을 받아다가 서랑에게 권했다.


“여보게, 요것이 배 아플 때 먹는 선약(善藥)이니. 이것을 드시게.”하는 것이었다.


졸지에 마실 수 밖에 없어, 쭉 마시고 나니 그만 죽어버렸다. 죽어 버리고 나니 사람 탈이 벗겨지고 커다란 너구리로 변했다. 정승이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감, 영애 뱃속에도 너구리 새끼가 여섯 마리나 들었습니다. 여섯 바리가 들었으니, 요 물을 갖다 마시게 하시오. 사람한테는 아무 지장 없고, 너구리 새끼만 쏙 빠질 것입니다. 어서 갖다 먹이십시오.”


그 말대로 그대로 하니, 너구리 새끼가 쏙 빠졌다. 그것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가마솥을 뜨겁게 달구워 기름에 폭 달여서 송악산에 내다 버리고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무리 중에 무술을 잘하는 사람을 함께 보내서 잠시 덤불 속에 숨어서 무엇이 왔다가 가며, 또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잠시 동안만 기다렸다가 보고 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즉시,, 송악산으로 가서 그것들을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따로 지켜보고 있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 밤중도, 깊은 밤중이 되었는데 난데없이 보살 하나가 올라와서 염불을 외우는 것이었다. 염주를 목에 걸고 단지를 팔에 걸고, 작대기를 하나 끌고 와서는 그놈들 버린 곳에 가만히 서가지고 염불을 외우다가 혀를 끌끌 차며 한다는 말이,


“야, 이놈 너구리야. 너는 천 년을 먹어가지고 세상을 나갔다가 뒤져 버렸구나. 나는 만 년 먹은 오소리이다. 내 같은 오소리라도 감찰 선생이 하도 무서워서 나가질 못하고 이 짓거리를 하고 댕긴다.”




너구리는 우리나라 대표적 야생동물이었는데 어느 시대를 기점으로 개체 수가 꽤나 줄었다. 혹시 기문둔갑하는 너구리가 두려워서였을까?

여우, 구렁이 지네만 기문둔갑술을 할 줄 알았는데 너구리도 할 수 있다니... 살펴 볼수록 진귀한 내용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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