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재탄생
정읍에 두 형제가 살았는데 하나는 공부를 잘해서 학자를 해서 돈도 많이 벌어서 땅이 천 마지기가 넘고, 동생은 착하지만 가난했다. 동생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집안 형편이 여의치 못해 장가를 통 가지를 못하다가 어찌어찌 중신애비가 다리를 잘 놓아 규수를 들이게 되었다.
시댁으로 들어온 지, 사흘이 지난 뒤에 제 시어머니를 모시고 정주간(부엌)으로 가더니만 손에 쥔 조그마한 망치를 들고 부뚜막을 탁탁 치더니 바스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는 이번에는 가마솥을 탕탕 두드리는데 그만 밥 짓는 가마솥이 파삭 부서지고 말았다.
부아가 날 때까지 난 시어머니가 참지를 못하고 "야이, 미친 것아, 어쩌자고 이런 지랄을 하는 게냐!'하고 빽 소리를 지르니, 눈도 깜빡거리지 않으며 며느리 한다는 말이 "시방,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쓰다가 망가지면 전부 제 탓을 할 게 아닙니까?"하는 거였다.
그 며느리가 하루는 점심에 한 상 가득, 음식을 챙겨와서는 "밥 차려 왔으니, 드세요, 서방님."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그런 일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아침을 먹고, 저녁만 먹었지. 점심은 건너뛰는 게 일반인데 건너뛰는 것도 모자라 한 상 가득 나물이며 국이며 밥이며 조치를 차려와서는 입 안 가득 퍼 넣는 것을 보고 또 다시 시어미가 잔소리를 하지 않았겠는가?
그랬더니, 이번에도 눈도 깜짝 않고 한다는 말이 "어머니도 한 술 뜨시오. 걱정은 붙들어 매고 말이지요."
겨울이 되어 땅이 꽝꽝 얼었는데 양식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서방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인이시오? 무슨 일이오."
바깥에 세워 둔 채로 되물으니 아내 한다는 말이 "당신이 하는 망건에 갓 쓰고 하는 공부는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으니 옷을 갈아 입고 속히 나와 나를 도와 주십시오."는 것이었다.
아들 급제 하나만 바라보고, 큰댁의 설움을 견디며 살아온 시어미였는데 허망하게도 아들은 며느리의 그 말을 듣고는 순순히 바깥으로 나왔다.
"서방님, 이걸 챙겨서 구렁이 한 마리 잡아다 주십시오."
대뜸, 한다는 소리가 구렁이를 잡아 오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 엄동설한에 어디를 가서 구렁이를 잡아 오라는 것이오? 내 주자(朱子)에만 정진하였지만 한겨울에 구렁이가 없다는 것쯤은 알 수 있소."
"서방님, 걱정 마세요. 아무개 산 밑, 부놋골에 가셔서 산자락에 이러이러한 구멍을 파보면 구렁이가 들어 있을 겁니다."며 포목 자루를 건네었다. 하릴없이, 남편이 가서 산자락에 있는 구멍을 파보니 과연 커다란 구렁이가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가만히 안아서 자루에 넣어와 아내에게 건넸다.
"부인 말을 의심해서 미안하오. 과연 그대로 이런 커다란 구렁이가 들어 있더이다."
"네, 서방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저 큰댁에 좀 다녀오겠습니다."며 서둘러 길을 나섰다.
상황이 이쯤되니, 아예 간섭치 않으마 하고 잘 다녀 오라고 했다.
점심쯤이 되어 며느리가 돌아왔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서방님도 함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할 얘기더냐?"
"네, 아버님, 우리 땅을 전부 사 달라고 했습니다. 가격을 잘 정해준다고 하니 바로 사겠노라고 했습니다."
"아니, 얘야,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걸 의논도 하지 않고 모두 팔았단 말이냐."
"내, 아무리 너를 이해하려고 한다만 이건 너무 한 처사가 아니냐."
그런 상황에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가격을 얼마에 쳤는데 그러냐?"
"네, 너 마지기 다해서 모두 얼마 얼마를 받기로 했습니다."
"아니, 그럼 절반 가격이 조금 넘는 가격인데. 낭패구나, 낭패야. 가격이 너무 헐다."
"걱정마세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며느리가 대답했다.
"내일 쌀로 받기로 했습니다. 어머니, 저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한편, 동생이라고는 하지만 천덕꾸러기처럼 생각했던 동생네였는데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땅 모두를 손에 쥐게 된, 그것도 셈이 어두운 조카 며느리가 불쑥 와서는 급하게 처분해 달라며 절반 조금 넘는 가격으로 쳐 달라며 땅을 다 넘기고 갔으니 형은 무척 기분이 통쾌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며칠 남지 않은 생일 상을 거하게 준비해서 동생네를 아주 간만에 초대하기로 했다. 어차피 대금을 줘야 했기에 쌀 가마니를 실은 인편에 그런 저런 얘기를 전하고 생일에 꼭 좀 참석해 달라고 했다.
얼마쯤 뒤에, 쌀을 실은 수레가 와서 짐을 부린 뒤에 한다는 말이 형님께서 감사의 뜻을 담아 생일 잔치에 모셨으니 꼭 오라하시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꼭 가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희도 쌀 받은 놈으로다가 얼마 간의 음식을 준비해 갈 터이니, 생일 이른 아침이에 인편을 다시 좀 보내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고 전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생일 아침이 되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바리 바리 싸두어다가 준비한 인편에 건넸다.
"아주버님, 저 좀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네, 제수씨.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네, 광에 준비한 게 있으니 잠시 가시지요."
광에 들어가니 그새 받아둔 쌀 자루가 푹 꺼져 있는데 아직 풀지 않은 가마니를 풀어 제끼는 것이었다.
"여기... 이것 좀..."
아주버니가 들여다 보니 똬리를 튼 구렁이가 몸을 빳빳이 세운 책 쉭쉭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것은...."
"네. 아주버님, 지난 번에 땅 마지기 매매 대금으로 보내신 쌀 자루에 이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업'입니다."
"쌀을 누가 내었는지 모르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서 잠시 뵙자고 한 것입니다."
"절대, 비밀로 해 주셔야 합니다."
당일 생일인데, 착찹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러한 정황을 전연 알 수 없었던 학자 형은 생일 상을 받아 놓고 그 자리에 축하하러 온 객들에게 동생 내외의 너그러움을 칭찬하며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기 아들이 한숨을 푹푹 쉬는 걸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잔치가 파하고 모든 손님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기분 좋게 보료 위에 드러누운 아버지를 아들이 마침내 찾았다.
"아버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냐? 어찌 그리 어두운 얼굴을 내내 하고 있었느냐?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냐?"
"아니옵니다. 실은 아버님..."
그간의 일들을 조곤조곤 아뢰는 것이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학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큰일이구나, 업이 빠져나갔으니 이런 낭패가 있느냐."
"그런데, 아버님, 제수씨가 철저히 비밀로 하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지... 소자, 그 점이 의문스럽사옵니다."
사이를 두었다가 "옳거니! 바로 그것이다."
"조카 며느리가 그 일을 비밀로 하고 우리에게 도로 넘기려는 생각이 있구나."
이튿날, 조카 며느리에게 전날 생일에 수고했노라며 잠시 다녀가라며 기별을 했다.
만나서 한다는 말이, "얘, 그 대금 도로 내게 물리려무나, 내 몇 배 되는 땅을 도로 줄 터이니."
"절대로 안 됩니다, 큰아버님" 여느 때처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얘, 그러지 말고, 너희 식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었느냐. 내, 너가 그리 한 의미를 이미 잘 알고 있느니라."
얼마 간의 얘기가 오가고 결국 몇 곱절이나 되는 땅을 대신 돌려 받고, 그 구렁이가 들어 있는 쌀 자루를 들려 보내었다.
"아버님, 어머님, 큰댁엘 다녀 왔습니다."며 인사를 하는 며느리가 이번엔 땅문서를 몇 십 장이나 들고 와서는 보여 드리는 것이었다.
"이게 다 어찌된 것이냐."
"네, 아버님 어머님, 어제의 일이 감사하다며 저에게 이러 이러한 것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는 살람살이가 전과 같지 않으니 서방님께서도 염려치 마시고 글 공부에 전념하시면 됩니다."
"어머니도 살람살이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히 지내시면 됩니다."
"아버님께서도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요, 이제 일은 그만하시고 곧 손주를 안겨 드릴 터이니 손주들을 아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부인. 회임을 하셨던 게요?"
어떤 상황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 법한 일들이 있다.
그 뒤로, 학업에 열중한 덕분에 남편이 급제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순도순 아들 딸, 잘 낳고 행복하게 살았더랬다.
그러면, '업'으로 알고 구렁이를 도로 가져간 큰댁은 어찌 되었을까?
'업'인지 모르고 내보냈던 걸 사죄하며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제를 지내었지만, 그게 어디 진짜 '업'이었을까?
그게 아니었던 고로, 온통 망해 버리고 결국, 동생네에 손을 빌려 도로 우애도 찾게 되었단 얘기이다.
설화 속, 얘기 중에는 형제 간의 이야기를 다룬 게 상당히 많다. 우애가 좋은 일화도 있고 그와 반대로 되는 일도 퍽 많다. 며느리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방귀를 세게 뀌는 며느리가 시집을 온 뒤로 방귀를 뀌지 못해 사색이 되었을 때에, 그러한 사정을 알게 된 시댁 식구들이 너그럽게 허락을 했지만, 정작 그 일로 며느리는 소박을 맞게 된다. 나중에서야 도적들을 (방귀로) 잡고 나서, 귀인 대접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