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죽 쑤어 호래이 준 얘기

설화의 재탄생

"그전에 경남 거창에는 호래이가 많았거든.

그 호래이가 한번씩 산에서 '컹컹'하고 울면 산이 쩌렁쩌렁 울렸어."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했겠네요?"


"아이라, 뭘 무서워하노. 산신님이신데."


"산신님요?"


"산신령말이다."


고개를 돌려 외할머니를 보니, 외할머니가 빙긋이 웃었다.


"작은 엄니, 그전에 참 호랭이 많았어요. 그지요?"


산신령이라고 대신 대답해준 게 고마웠던 모양인지, 한번 더 동의를 구했다.


"애들 너무 무섭지 않고로, 조금만 얘기해라마."


"우리 강아지들 무서워한데이."


"안 무서워, 할머니. 재밌어."


"그래, 우리 아덜이 안 무서워해요. 얘기 듣는 게 뭐가 무섭다케요."


"한번은 느그 삼춘들이 겨울에 나무를 한 짐씩 하고 내려오는데 방우 밑에 꼬내이가 두어 마리 있는 기라, 야옹이, 잉?"


"그 고양이가 앵앵 거리니까네 가만 안았더니 고만 품 속으로 파고 들더래."


"두 형제가 그겟들이 올매나 귀여워했겠노."


"방에 요래 해가, 춥지 않구로 이리저리 둥지를 만들어 놓고, 잠이 들었거덩."


"맞지요? 작은엄마."


"그으래. 계속 해라."


"아, 그런데 한밤 중이 되어서는 아까 산신님이 문 아케까지 와서 커렁 커렁, 커렁 커렁 울부 짖더래."


놀란 나를 보며, "호래이 새끼였던 거지."


"그래, 밤새 울더니만 도로 쑥 하고 가버렸대. 그때 꼼짝없이 죽는 긴가 했는데 호래이 그마가 그냥 가뿌렸다네."

여기저기서 거드는 소리가 났다.


"새벽에 일나서 할마이가 흰 죽을 쑤셨대. 왠 죽이냐고 물어도 대꾸도 안 허시고, 다라이로 하나 가득, 죽을 쑤어서는 느그 삼촌들 앞세우고 꼬내이들, 실은 호래이 새끼들이지, 그마들 들려서 그리로 갔대."


"하이고, 작은 엄마, 말하는 내가 살이 떨려요. 우째 거길 가셨대요."


"아들도 고마 어릿을 긴데..."


"느그들 할마이는 참 겉으로는 곱게 생깃는데, 맞지요. 젊어서는 어찌 이뻤는지 몰라. 그 젊은 나이에 우옛 어떤 정신으로 갔으예?"


"한참을 걸어서 방우 앞에 흰죽을 퍼다 올리고 새끼들을 도로 갔다 놨디야."



그 뒤로, 마을의 어느 누구도, 아무런 호환도 없이 무탈하게 지냈다는 얘기였다.

과연 산신님이라고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고 있는 분이니 어떻게든 지키려는 것이니 실수도 너그럽게 감싸준다고... 거창 외숙모 댁에만 가면 듣는 옛날 이야기.

설화와 다른 점은 직접 겪은 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꿈에서라도 그때 삼촌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새끼들을 안아보고, 또 흰 죽을 쑤어 가져다 놓고, 밤새 마당에서 커렁커렁 울었던 호랑이 소리도 한번쯤 들었음 했다. 감수성이 줄어드는 탓인지 이 정도 얘기로는 어린 시절 마냥, 가위에 눌리는 일도 없으니 세월 참 덧없다 하겠다.

모처럼 설화들이 잘 발굴되어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좋은 감성의 매개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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