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재발견
그전에 예천 개포라는 지방은 내성천 물줄기가 한바퀴 감싸 도는 형국을 한 곳으로 인심 좋기로 유명하던 곳인데, 혼기가 꽉 찬 어느 여자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어 이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옛날엔 결혼을 하게 되면 묵신행(처가에서 1년 정도 지내다가 시댁으로 가는 것을 말함)을 할 수도 있고, 도신행(당일신행)하기도 했는데 개포 지방은 처가에서 묵신행을 하는 게 일반이라. 혼례를 마친 신랑이 처가에서 마련해 준 신방에 들어 잠을 자는데 잠결에 들으니 뭔가 히히덕 거리는 소리가 나서 가만히 들어보니 신부가 헤헤거리며 웃는 것이었다.
잘못 들었나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노라니 또 다시 헤헤거리고, 또 헤헤거리는 것이었다.
조용히 몸을 틀어서 신부 쪽을 보니 이쪽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반대편 바람벽을 보며 자꾸 헤살거리는 게 보였다.
'어이쿠,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하고는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일어나자마자, 자기 아버지에게 찾아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아부지, 돌아갑시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예. 제 정신이 아닌가 싶어예."
"그래, 내도 니 말을 듣자하니 밤이 깊도록 그렇게 혼자, 헤헤거리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고마 조용히 떠나 가뿌자."
아침도 거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으니, 처가에서는 크게 소란이 일었다.
그래도, 체통을 지키느라 수 일 뒤에 중신애비를 불러 이르기를 여차 저차한 내력을 꼭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사돈 댁에 들러 그간의 상황을 모두 듣고 오게 되었다.
"나으리, 그래 듣자하니 애기씨가 밤이 깊도록 혼자 헤헤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온전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조용히 파혼하는 게 좋겠다고 전해 왔습니다."고 중신애비가 전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이 댁에서도 자기 딸이 그런 일이 있다는 사실은 전연 알지 못했으므로 서둘러 그 일에 대해서 들려 주었다.
"아무것이가 말하기를 사돈 댁에서 그렇다 하는 얘기를 전해왔다는데 어떤 얘긴지 알겠느냐?"
"그래, 얘야, 이게 어찌된 영문이냐. 어미는 참 궁금하구나."
어머니의 재촉도 있자,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시집 간 딸이 한참을 늘어놓는데 얘기인 즉슨,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짐승의 말을 알아 듣는 게 사실이며...
그날도 잠이 들려 하던 차에, 고미 다락방에 모여 있는 쥐들이 대장 쥐를 필두로 해서 곡식을 훔쳐내려고 등 위에 서로 올라탔다는 얘기를 엿듣게 되어 그게 그만 우스워서 헤헤거렸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밖에도 여러 그간의 정황들을 얘기하다 보니, 어미는 아아, 너가 그래서 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정을 다 정리해서 중신애비가 다시 시댁 어른들을 찾아가서 사실은 상황이 이러저러하다고 전했다.
"그으래? 듣느니 처음이다만, 실로 그런 능력이 있다면 귀인이로구나."하며 날을 정해서 며느리를 시댁에 오라고 했다.
때는 바야흐로 춘삼월이라 제비들이 저마다 둥지를 틀어, 새끼를 깔 무렵이었는데 저마다 지저귀는 소리가 명랑하였다.
'옳거니!'
시아버지 되는 사람이 둥지에서 새끼 한 마리를 꺼내어 소매 속에 감추어 따로 골방 바구니에 두었다.
며느리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대청으로 나아가 "어서 오니라."며 인사를 건넨다.
이래 저래, 인사를 나누고 난 뒤에 한다는 말이 "아가, 그래, 너가 짐승의 말을 듣고 지난 번에 헤살거렸다는 걸 전해 들었는데..."
"네, 아버님.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하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는 본새가 시원스러웠다.
"그렇구나. 그러면, 저 마당을 지날 때에 저 제비들이 무어라고 지저귀는지 혹시 알겠느냐?"
"네, 아버님, 제비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아버님께서 소매 속에 새끼를 감춰 갔는데 어서 돌려달라고 지저귀는 소리이옵니다."
"허이구야. 아가. 너는 정말 귀인이로구나. 귀인을 몰라봤으니 이 내 잘못이다."
이런 내력으로 새색시는 그 댁에서 크게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고, 남편과도 금슬이 좋아 아들 딸 잘 낳고 오래도록 행복했다고 한다.
어릴 적, 읽은 소설 중에 '닥터 두리틀'은 주인공 두리틀 박사가 앵무새로부터 동물들이 말하는 법을 배우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내용이다. 오늘 읽은 설화는 그간, 내가 접해왔던 우리나라 설화와는 사뭇 다른 부분이 있었다. 대부분의 설화 속 주인공들은 아예, 처음부터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한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무기와 말을 하고, 두꺼비와 소통하며, 지네와 말을 하고 호랑이와는 거의 막역하다.
그런데, 이번 설화에서는 모두 다 동물의 말을 듣지 못하지만 오늘 주인공인 새색시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었고, 끝내 귀인(貴人)의 반열에 오른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며느리(婦, 빗자루를 들고 있는 여자 형상)들이 당시 이런 구전을 들으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지나 않았을런지.
짐짓 헤살거리는 나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