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너구리 굴에 묘자리 쓰기

설화의 재탄생

"얘들아, 미안하구나."


임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시작되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머리 맡에,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다 늙은 손을 꼭 부여 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셋째는 말없이 눈물만 뚝뚝.


"얘들아..."


"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가 가진 게 없어 너희를 제대로 가르치질 못해 미안하구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저희 세 형제,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입때까지 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아버지 쾌차하시는 것만 생각해 주세요."


그러나, 사람의 목숨이 어디 바라는 대로 늘어나는 것일까?

노인은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자, 받아 적어라." 쥐어 짜듯이 겨우 말했다.


"도봉산자락 아래에 밤골이라는 곳에 다녀오너라. 그곳에 옛날부터 유명한 '곽' 지관이 한 분 계시니라. 그분을 모셔오는 것만이 우리 가문이 영속할 수 있는 길이니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노인은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래, 사람을 보내어 곽 지관을 모셔와 아버지의 편지를 전하니 곽 지관이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라 그리 해 주기는 할 것이오나 두 아드님들께서는 내가 말씀 드리는 것을 하나라도 놓쳐서는 아니될 것이오."


이렇게 다짐에 다짐을 받는 것이었다.

이튿날, 조반을 간단히 떼우고 난 뒤, 서둘러 길을 나서 그날 저녁무렵이 되어서야 곽 지관이 돌아왔다.

세 아들과 곽 지관은 사랑에 모여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바와 다름이 없소이다."


"이 산에는 천 년 묵은 너구리가 살고 있소."


"그 터에 고인을 모시면 될 것이오."


"천 년 묵은 너구리가 사는 터, 그런 곳에 선친을 모신단 말이오." 성격이 괄괄한 둘째였다.


"그렇소, 내 말을 좀더 들어보시오. 그곳에 터를 잡아야만 당신네 형제대(代)부터 운이 트일 수 있소."


"다만, 천 년 묵은 너구리를 상대해야 하는 만큼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아니되오."


이튿날, 지관이 말했던 터에 선친을 뫼셨다.

그리고, 그날 밤 자정이 되었다. 밝은 달이 영창(映窓)을 통해 방안까지 훤하게 비추었다.


'아버님께서는 편히 계실런지." 감수성이 예민한 큰아들이었다.


"얘야, 문 열어라" 하는 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영창이 흔들렸다.

창문에는 무언가 주먹을 쥔 형세가 우당탕탕 문을 두드리는 게 비췄다.

섬뜩하여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도 물었다.


"밤, 밤늦게 뉘시오?"


"나다, 니 애비다."


'하마, 돌아가신 날부터 발인까지 3일에다가 땅에 묻었으니 이 더위에 살아 나오실리가 없잔은가?'



"아, 아버지가 어떻게 오셨소?"


"얘들아, 너희가 나를 묻을 데가 그리 없더냐, 곽 지관에게 그리 부탁을 했건만, 그런 곳에 에휴..."


"그러지들 말고, 내일이라도 이장(移葬)을 해다구. 도무지 쉴 수가 없구나."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얘, 이 묘자리가 너구리님이 기거하시는 자리인데 그분 허락도 없이 누웠으니 나를 편히 놔두겠느냐? 내일 당장 이장을 좀 해다구."


그러면서 밝은 영창에 뭔가 서서 계속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큰아들이 용기를 내어 침을 발라 구멍을 살모시 뚫어 보니, 널(관짝)이 걸어와서 말을 하는 거였다.


"글쎄, 아부지 정 그러하시다면 말씀처럼 이장을 해야겠습니다만, 다른 두 아들에게도 이 문제를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낮 동안에 의논을 할 터이니, 내일 다시 오시지요." 하고는 겨우 돌려 보냈다.




"아이, 형님도 참, 관이 어떻게 걸어 와요?"


"말씀이 되는 얘기를 하셔야지... 형님들, 혹시 오늘 밤에도 널(판지)이 가 집으로 찾아오거들랑, 저희 집으로 가라고 해 주시오.' 막내가 이렇게 말하고 모두 헤어졌다.

그날 밤, 역시 자정이 되니 어제의 그 널(관)이 선 채로 말을 걸어왔다.


"아버지, 둘째와 얘기했으니 둘째네 가 보시오." 하는 거였다.


"그러냐, 그러면 내, 둘째네 가 보마."


"둘째야, 니 애비 왔다."


"이예... 아부지... 오시는 길 수고하셨어요... 그런데 막내네 가셔서 이장하는 얘기를 다시 한번 해 보세요. 얘기를 잘 나누었거든요."

둘째도 얘기는 듣기는 했어도 설마했는데 관짝이 선 채로 걸어와서 말을 걸으니 겨우, 입을 떼었다.


그래, 마침내 막내네 집에 가서 막내를 찾는 것이었다.


"막내야~~ 막내야... 니 애비 왔다."


"어서 문을 좀 열어다구."


"아, 아버지. 말씀 들었어요. 형님들께서는 다 찬성이시고 저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오냐, 그렇구나."하며 성큼 문 앞에 다가왔다.


"근데, 아버지. 제가 아버지 손을 한번 확인하고 싶으니 손을 좀 보고 싶습니다."


"야, 이놈아 손을... 손이라니... 내가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손을 보여 줄 수가 있느냐?"


"그럼, 절대루 안 됩니다. 믿을 수가 있어야죠. 손을 내가 한번 잡아 보고 확인을 하려는 것이니, 이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열 수가 없습니다."며 완강히 버텼다.


그렇게 자꾸 버티는 데야 용 빼는 재주가 있을까?

"얘야, 너희 형들은 다 하겠다는데 너도 함께 하면 너희들에게 좋지... 아부지가 공연히 너희를 힘들게 하겠느냐. 그러지들 말고... 아부지를 좀 옮겨다구. 살 수가 없다."


"아, 그래요. 이장은 해 드릴 텐데... 그전에 손을 봐야지만 문을 열 수가 있겠습니다."


"아, 이놈. 정년 내 손을 잡아 보아야 할 것이냐?"


"예. 제가 아부지 손을 만져보지 않고서야 절대루 이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자아 봐라."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갑자기 영창 창구녕 안으로 손이 쑥 들어왔다.


'내, 이럴 줄!'


세번 꼬아 만든 삼줄을 손을 꽁꽁 동여 묶고 난 뒤에 잔뜩 들보에다 칭침 감아놓고 꼼짝 못하게 했다.

그대로, 절구공이를 들고 나가 막 두드려 패니.

천 년 묵은 너구리라도 배겨날 재주가 있었을까?

결국, 천 년 묵은 너구리는 혼이 빠져나가 죽어 버리고, 그 터는 아버지의 유언 대로 묘를 쓸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 묘자리가 아주 유명해서 지금까지도 그곳을 지나는 이들은 묘 터에 대해서 이래 저래 칭찬이 자자하다고 했다.



어릴 적, 시골에 와서 멋도 모르고 산소 위 잔디밭에서 뒹굴며 놀다가 그곳이 돌아가신 분을 모신 곳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며칠쯤이나 앓아 누웠을까? 마음이 자라는 대신 무서움도 덜해지지만 어쩐지 그런 것에 무뎌지는 내가 좀 싫어지기도 한다.

친구들 중에는 형제가 여럿인 경우가 많았는데 11남매를 둔 尹씨 성을 지닌 그 친구댁의 할아버지께서는 오늘 얘기 중에 나오는 지관이셨다.

좋은 묘 터를 찾는 그 일을 하는 분이셨는데 어릴 적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하얀 수염을 한 자쯤이나 기르고 다니셨다.

일본 애니메이션 폼포포 너구리 대작전을 보면 너구리들이 기문둔갑을 하는 게 종종 나오는데 우리나라 설화에도 나오는 게 신기해서 소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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