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달밤에 홍시 따 먹기

설화이 재탄생

'야이, 이것 참 야단났구나.'


오줌소태가 난 김 첨지가 몸을 이리 꼬아도 보고, 저리 꼬아도 보았지만 허사였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진정을 시켜 보려고 하는데 도무지 참아지질 않는다.


"어이쿠." 순간,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한다.


사돈 양반이 잠꼬대를 하느라 다리를 걸치느라,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했다.


'아니, 너른 데를 놔 두고 어쩌자고 내 옆에 와서 자단 말인가?'


하긴, 어제 술이 너무 과했다.

마나님이 그리 신신당부를 했건만, 게가 어디라고 가느냐며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어린 아들이 데릴사위로 들어와 있는 곳에 염치도 불구하고 안사돈 생일상을 자시러 간 것이었다.


"영감, 나도 이제 지쳤소."


한숨을 크게 내 쉰, 마나님이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이 다녀오라고 한다. 하지만, 조건이 있노라고 했다.

겨우, 허락을 얻어낸 마나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영감은 흔쾌히 약조를 했다.

가는 길이 시오리길, 거기서부터 배를 대어 다시 시오리길을 가면 점심 전에 도착하겠다며 점심을 함께 할 생각을 했다.


"영감, 내 얘기 듣는 거예요? 식탐 부리지 말라구요. 식탐. 영감 이제 매누리도 봤으니 그.... 식탐 좀 어떻게 좀 해 봐요."

마나님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식탐은 어쩌지 못한다며 툴툴거렸다. 그런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 살 어린 영감이 사돈댁으로 휘휘 길을 나선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바쁜 걸음으로 식전에 도착한다는 것이 그만 배가 시간 내에 닿지 못하는 바람에 조금 늦었다. 안에서 수런수런 소리가 나는데 영 소식이 없었다.


'에잉, 다들 바쁜 모양인 게로구나.'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닌 게 아니라, 이래저래 분주하다. 동리가 한산하여 점심을 자시던 양반들은 죄다 집으로 돌아가고 식구들만 남아 단출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치우려는데 사돈이 기별도 없이 들어온 것이었다.

밥을 한 술 입에 우물거리던 바깥 사돈이 먼저 알아보고 버선발로 달려온 손을 잡았다.


"사돈(이라고는 해도 자신보다 열 서너 살이 어리다)!"


반갑게 맞으며 손을 꼭 잡는다.

영감은 그리 잡아주는 게 참 고맙기도 하고 자기보다 열 서너살이나 많은 사돈양반이 자기를 그리 불러주는 게 고마워서 뭉클했다.


"뭣들 하느냐, 사랑채에 자리를 봐 두어라."


잠시 뒤, 매눌아기와 아들놈 인사를 받은 뒤에 사랑채에서 바깥양반들끼리 대작을 했더랬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하던 낮술이 그만. 저녁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점심도 굶었지, 저녁도 주안상 안주를 하나 둘, 집어 먹다 보니 정작 저녁 때가 되어서는 식사를 못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사돈, 이리 식사를 못하시니 어쩌신답니까?"


"낮에 오는 길이 덥더니만 더위를 좀 먹은 건지. 아무래도 입맛이 통 없네요. 냉수라도 시원하게 마시면 열이 좀 내려갈테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며 점잔을 떤다.


"게, 아무도 없느냐?"


"예, 마님."


"어서 가서 우물가에 가서 새로 물을 좀 떠오너라. 식사를 못하시니 우선 좀 열을 내리도록 해야겠다."


잠시 뒤, 소반에 받자온 걸 보니 냉수 한 그릇과 나박김치 한 보시기가 있었다.


'저 놈 한 그릇에다가 차운 밥 한 덩어리를 좀 말았으면...'

군침만 삼킬 뿐, 차마 찬밥 달라는 소리를 못했다.


"허허, 다행입니다. 사돈. 이건 좀 넘어가시는군요." 자기보다 어린 사돈이 그거라도 먹는 걸 보니 두 노부부의 얼굴이 그제서야 피어났다.


"여보, 영감. 사돈이 이걸 참 잘 드시니 제가 참 고맙고 기쁩니다. 얘야, 가서 동이째 하나 가져오너라."


"네, 어머니, 광에 있는 것 말씀이지요?"


"온냐, 온냐."


그래, 그걸 가지고 밤이 늦도록 술과 함께 마셔댔은 어느 방광이라고 그걸 다 견뎌낼까? 밤이 이슥할 무렵 드디어 사달이 났다.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는 김 첨지는 도저히 오줌소태를 못 견디겠던 모양인지, 바깥사돈의 다리를 살짝 걷어내어 살모시 모로 누워 한번 구르고, 다시 한 번 구르기를 해서 문간까지 갔다.


'휴우, 겨우 나왔군.'


가을이라고 해도 이제부터 입동 전까지는 해가 뜨거워 곡식이 여물 때이니 날이 뜨거운 데다가 안주도 없이, 나박김치에 술을 마셔댔으니 몸이 더워 자는 동안 모두 벗어버렸다.


'에라, 모르것다.'


옷 입는 소리에 사돈이 일어나면 체통을 깰 것만 같아 고대로 살며시 일어나 문을 밀었다.

달이 휘영청, 참으로 괴괴하다.


조용히 뒤안, 치간으로 가서 그간 참았던 욕정을 한껏 뱉어냈다.


'촤아아악'


'촤아아악'


'촤아아악, 촤락 촤락 쪼르르' 한참이나 그리 하더니, 이제는 여유가 생겼는지 달빛에 벌거벗은 몸을 들여다 보며 낄낄거리고 웃는다.

그러면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낮부터 그리 맛있게 먹던 김치 광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한번 들여다나 볼까?'


살금 살금 들어가니 역시, 나박김치 시원한 김치 향이 코를 찌른다.

바가지도 있겠다, 속은 비워 편안하겠다. 목은 컬컬하겠다. 체통을 따지던 김 첨지는 벗은 몸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뒤로 나온 물건이 툭 불거진 것도 모르고 바가지로 떠서 홀짝 홀짝 퍼마시고 있었다.


'월월 월월'

'월월 월월'


"이거 야단났구나." 낮에 봤던 개똥이 놈이 김 첨지를 알아보고 내내 짖는다.

방에 호롱이 들어오고 부시럭, 수런수런 소리가 났다.


"야, 이놈아 조용히 혀라." 속사이는데 개똥이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꼬리를 팔랑거리며 와서 여기저기를 핥는다.


"야, 이눔아 거긴 안뒤야."


"개똥아, 이놈아 시끄럽다. 이놈."

멀리서, 바깥 사돈이 이리로 걸어오는 게 보인다. 일촉 즉발의 상황이다.

김 첨지는 이리저리 둘러 보더니 바로 곁에 있는 감나무에 올랐다. 잎이 무성하니 다행이었다.


"개똥아~"

사람 좋은 목소리로 개똥이를 달래는 바깥양반.

허지만, 개똥이가 듣질 않고 계속 짖었다.


'왈왈 왈왈'

'알알 알알'

'알알 알알'


"아, 이눔이 달이 반가워 그렇구나."


"그래, 네놈도 풍류를 즐기니 나도 참 반갑다."

바깥양반은 술도 했겠다, 갑작스런 만남이 즐겁기도 했겠다.

창을 하려 한다. '서산~~'


"어어? 저게 뭐지?"

감나무 밑으로 바깥양반이 다가왔다. 김 첨지는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허허, 허허. 개똥이 이놈. 홍시를 본 게로구나."


"그놈 참, 영특하기도 하지."


"장대를 어디에 뒀더라. 가만..." 하더니, 고개를 둘레 둘레 하더니만 금세 장대를 들고 왔다.


"개똥아. 잘 보거라... 이 장대를 저기 저 홍시에 걸...."


"허허. 내가 취한 모양이다."


"자아... 이 장대를 저기 저 홍시에 걸....고.... 옳거니. 걸렸다. 이렇게 홱! 홱!"


"아니, 뭔 놈의 홍시가 이리 안 떨어져." 부애가 난 바깥사돈이 있는 힘을 다해 다시 한번 홱 할 적에 여지껏 잘 참았던 김 첨지는 그만 생똥을 부리고 말았다.


"에그 아까워라. 홍시가 그만 터져부렸다. 개똥아 너나 먹어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개똥이가 학학거리며 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장대를 도로 가져다 둔 뒤에 보름달을 보며 '허허'하고 한번 더 웃은 사돈양반은 그 길로 바로 안채에 들었다.

김 첨지는 거지 반, 염라대왕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는데 그런 감상을 할 틈도 없이 부랴부랴 내려와 사랑채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조반을 나누며 바깥사돈이 말을 했다.


"사돈~, 내가 사돈 주려고 홍시를 하나 따려고 했는데 그놈을 너무 세게 다루는 바람에 그만 터져 버리고 말았지요."


"가을이 깊어지면 홍시 드시러 한번 더 오십시오. 내가 그때에는 애들을 시켜 미리 한 소쿠리 따 놓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예의바른 김 첨지는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시골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단편, <감자>를 낸 적이 있었다. 당시, 글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촌 형에게 글을 보여주었더니 김동인 선생을 뛰어넘으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를 잘 깨우치지 못한 나에게 김동인 선생처럼 <감자>를 쓰지 못한다면 '감자'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는 따끔한 충고를 했다.

어렸을 때엔 그 말이 무척 서운했는데 지금은 형이 어떠한 마음으로 내게 조언했는지 알 것 같았다.

최근에 나훈아 인기가 폭발적이다. 나훈아가 낫네, 조용필이 낫네 하지만 난 둘 모두 좋다.

그보다 요즘 인기구가 중인 '테스형'도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가을이 되면 '홍시'가 무척 생각나고 즐겨듣게 된다.

어쩐지 포근하고 잔잔한 감성의 노래를 듣다 보면 가사 속 엄마가 울엄마가 되고야 만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젖가슴하면 복숭아를 생각하던 나였는데 이 노래를 듣고는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렇고 오늘 홍시 얘기를 하며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이 앞서의 <감자>이야기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한 것이었으므로 설화의 재탄생에 대해서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진정, 재탄생하고픈 생각이 든다.

세월이 얼마쯤 흐르면 그들 삶 속에 녹아들어, 나 같은 이의 마음을 쿵, 하고 울리게 할 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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