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재탄생
강원도 어느 마을에 강아지를 끔찍이 예뻐하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어. 강원도는 깊은 산이 많은 곳인데 그 중에서도 오지, 오지 중에서도 오지.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눈을 들어 푸르른 하늘을 쳐다 보려면 아예 뒷목이 접혀야 할 정도로 앞뒤로 골짝이 가까웠지. 그 골짝을 따라 살구나무가 주욱 심겨져 있었는데 봄이 되어 만개를 할라치면, 온통 골짜기 전체가 울긋불긋, 그야말로 꽃대궐이었다. 골짜기를 따라 시원하게 내려오는 냇물을 거꾸로 한 시오리 쯤이나 걸어 오르다 보면 야트막한 평원을 지나게 되는데 할아버지 댁은 거기에서 가까웠어.
"멍멍아~"
'멍.멍.'
"오냐, 오냐, 아침 밥 먹자."
여느때처럼 밥을 먹는 멍멍이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따스했다..
"어허, 멍멍아."
"이 녀석아, 밤새 무얼 하러 돌아다니는 게냐?"
'낑, 낑, 낑'
미안하다는 표정을 하는 멍멍이를 보니, 할아버지는 공연한 얘기를 했다고 미안해 했다.
"미안하다, 어여 먹어라."
"그나저나, 몸에 뭘 이리 잔뜩 묻히고 다니누?"
걸레를 가져다가 밥을 먹고 있는 멍멍이를 품에 안더니 슥슥 닦아 주었다. 축축한 게 어디 이슬을 맞고 다니는지 무척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 녀석아, 밤이 이슥할 때 다니면 아니된단 말이다."하고는 품에 안았어.
'그것 참, 요새 며칠 사이로 이상하다 이 말이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해가 뉘엿 뉘엿 서산을 넘어갈 무렵이었다.
"멍멍아~ 이리 오련."
'망, 망, 망, 망'
곱게 쓸린 봉당 위에 폴짝 뛰어 올라, 할아버지 곁에 몸을 뉘었다.
"오냐, 오냐, 착하다."
등저리를 토닥거리며 만져주자 잠이 들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가만 있거라."
할아버지는 종지 하나를 가져 오시더니, 얼마 전 장에 다녀오면서 사온 참빗을 손에 쥔 채로 잠시 종지에 담갔다가 빗질을 해 주었다.
잠시 뒤, 강아지 빗질을 다 마쳤을 때에는 황금 빛이 밝게 빛나는 꿀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헌디를 앓아서 아파하던 걸 보다 못해 참기름을 발라 봤는데 그게 여간 효험이 좋은 게 아니어서 며칠 만에 저리 다 낫게 된 것이었다.
멍멍이도 바르고 나면 시원하고 덜 아파서인지 이따금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긴 했어도 기분이 좋은지 이내 잠이 들었다.
그런 강아지를 사뿐히 들어 안고는 툇마루, 볕이 잘 드는 곳에 가만히 올려 두었다.
고마워서였을까?
새눈을 뜨고 낑낑거렸다.
아침이 되어 밥을 주려고 했을 때,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정성으로 발라 둔 참기름은 어디론가 모두 사라지고 끈적끈적하고 냄새나는 액체로 온 몸을 뒤집어 썼다.
"에구, 이 녀석아..."
"도대체, 어딜 그렇게 다니는고..."
할아버지는 잔소리를 하시면서도 다시 품에 안아 참기름 빗짓을 해가며 헌디를 치료해 주셨다.
'소쩍 소쩍'
어느새, 밤이 이슥했다. 솥이 적어 굶어 죽었다는 며느리가 환생하여 태어났다는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방문이 살며시 열리며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일전의 일들이 하도 요상망측해서 할아버지가 직접 알아보시기로 한 거였다. 봉당 아래까지 하얀 달빛으로 희부옇다. 아래로부터 백합향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미리 매어 둔 삼끈을 따라 한참이나 걸어 들어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요 앞, 언덕 너머 쯤에서 기합 소리 같은 게 난다.
지게 작대기 힘을 빌어 올라가 보니, 언덕 아래로 널찍한 공터가 있었는데 사방은 시원스레 뻡어오른 금강송이 달빛을 받아 괴괴히 빛이 나고 있었다.
"어이쿠야"
"어쿠야,"
"어후야."
무슨 소리가 나는 곳을 가만히 보니, 달빛 아래서 호랑이 세 마리가 힘을 겨루는 모양이었다.
'아니, 네 마리로구나.'
얼숭 덜숭 한 발이나 도는 꼬리를 촥, 촥 흔들어 제끼며 사람을 홀린다.
'아, 이 놈들, 예서 밤마다 무엇을 하는 게냐?'
그때였다.
삼끈을 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빠져 나가더니 휙~하고 소나무 밭 쪽으로 딸려가 버렸다.
할아버지가 순간 납죽 엎드려서 사태를 관망하게 되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가만히 살펴 보니, 아까의 호랑이란 놈들이 할아버지의 강아지를 한 입에 꿀꺽 삼키는 것이었다.
'아뿔싸! 저 누에 같은 머리로 냉큼 한입에'
할아버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데
아니 이런 한입에 꿀꺽 삼켜졌던 멍멍이가 똥구멍을 통해 도로 쏘옥 빠져 나오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이번엔 다른 놈이 한 입에 꿀꺽, 하거나 말거나 도로 똥구멍으로 쏘옥.
멍멍이는 이 일이 재미가 있는지 어떤지, 걷는 자세가 자못 의기 양양해 보였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호랑이 놈들이 한 입씩 냉큼 집어 올렸다.
그래봐야 똥구멍으로 쏘옥 이렇게 몇 번이나 저들끼리 입에 넣었다, 쌌다를 반복했다.
'옳거니'
그 사이, 삼끈을 잘 챙긴 할아버지께서 이쪽 아름드리 소나무에 있는 힘껏 줄을 당여 매고, 강아지를 가만히 불렀다.
할아버지를 본 강아지가 꼬리를 살살 흔들며 다가왔다.
'낑낑(할아버지, 오셨어요?'
'오냐, 오냐'
가만히 삼끈을 풀어 놓은 할아버지는 그 끈을 이편에 있는 또다른 소나무 등저리에 단단히 붙들어 맸다.
"야 이 놈들아!"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아니 산신이라 하는 호랑이들이 혼이 쏙 빠졌는지 달음을 치는데 이쪽으로 도망치자니 이 소나무가 갈 길을 막고, 저쪽으로 도망치자니 저 소나무가 갈 길을 막으니 저희들끼리 이리 내빼다가, 혹은 저리 내빼다가 그만 서로 대가리를 부딪혀 죽고 만 것이었다.
졸지에, 꿀 강아지 덕분에 할아버지는 그 호랑이를 거두어다가 큰 부자가 되셨다고 한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반려동물로도 인기가 가장 많은 강아지는 고양이와 더불어 설화 속에서도 주인 할아버지의 은공을 잊지 않는 고마운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복수를 반드시 하는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강아지 같은 경우에도 '개는 3년을 먹이지 않는다'는 설화를 살펴 보면 개를 너무 오래 키우면 사람으로 둔갑하여 주인 내외를 해하는 설화도 더러 나온다.
어떠한 때에, 어떠한 연유로 이러한 일이 나오게 되었는지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그것 또한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