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모든 경험들을 다 없애버리고 덮어버리며 나를 부정하고 싶었다.
내 속이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우울한 감정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는데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걷기도 많이 걷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밤마다 울기도 했다.
나는 왜 이런 일들을 마음에 담아놓고 혼자 끙끙 앓고 있을까...
검은색으로 다 칠해버리니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아름다운 색들도 보이지 않아 이때는 정말 속상했다.
새벽에 드라이브를 나가기도 했다. 캄캄한 밤에 나가서 드라이브를 하고 있으면 조용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 묻힐 수 있었다. 새벽 3시에 드라이브하는 데, 도로에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앞에 뭐가 보였다. 너무 깜짝 놀라서 뒤에 차가 없는걸 확인한 뒤 조심히 멈췄는데 오리 한마리가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도로 옆이 논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계속 생각에 잠겨있었던 고요함을 다 깨고, 오리가 끝까지 도로를 다 건널 수 있도록 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울한 1년을 보냈다. 드라이브도 하고, 산책도 하고 마음이 쉬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내 기분이 그렇게 우울한 걸 처음 느껴봤다. 내가 한없이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었고, 내가 그런 기분인 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했다. 그래서 괜찮은 척 했다. 밤에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을 자지 못해서 한동안 불면증이 있기도 했고,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팅팅 부어있었던 적도 있었다.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 말도 당시에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지금이 힘든 내가 감당하기엔 큰 일이고 별일 아닌 일이 아니었다.
그 일들을 감당하고 나서 내가 성장해서 뒤를 돌아보니 이렇게 견디고 힘낸 내가 기특하고 장했다. 이 시간들을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덕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까지 잘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해결이 되었다. 시간이 정말 정답이었다.
자존감이 높은 편인데 바닥까지 낮아지는 기분이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나를 감정쓰레기통을 썼다. 본인의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매일매일 원하는 만큼 나에게 쏟아 붓고 갔다. 그만하라고 했지만 그만하지 않았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하든 하지 않든 그렇게 감정을 쏟아 놓았다.
나는 한국에서는 사실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받거나 치료받는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마 병원은 못 가겠어서 심리학 책을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힘들면 정신과에 가야 한다. 나는 마음먹기까지 1년이 걸렸다. 곪아서 터질 때 갔다. 마음껏 쏟아놓고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 말이다.
그 1년이 지나고 나는 나를 다시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고, 생각을 너무 깊이 하지 않게 생각도 차단했다. 마음을 회복한다는 건 노력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덮어놓고 치워버리기엔 너무 소중한 마음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해주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꾸는 일이 필요하다.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공감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덜 힘든 게 아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힘든 게 맞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끝이 보이지 않게 내가 추락하는 느낌이 든다. 생각을 잘라버리고 싶은데 또 힘든 일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 하게 됐다. 낮에 사람들을 만날 때는 괜찮았다가 밤에 혼자 있을 때는 많이 울었다.
코로나 기간동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드라이브 나가서 바다에서 파도치는 걸 멍하니 보고 운전하다가 울기도 하고 참 많은 시간이 들었다.
내가 주변에 털어놓지 못해 끙끙거리는 스타일이다. 좋은 일을 나눠야하지만 안 좋은 일은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아무렇지 않아졌을 때 친한 친구한테 내가 그동안 너무 힘들었었어. 하고 얘기했다.
친구에게 아직도 욕을 먹고 있다.
왜 그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너가 못 버텼으면 어쩔뻔 했냐고..
충분히 이해하고 울면 달려오고 도와줄텐데..
나로 인해 그 사람도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었나보다.
혼자서 방안에서 울지도 말고 혼자 힘들어서 끙끙 앓지도 말고 정말 가까운 친구에게 터놓아도 괜찮다.
친구는 언제든 내가 힘들 때 달려올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