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들어가보고 싶은 다른 사람의 방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내가 가장 들어가보고 싶은 방이 엄마와 아빠의 방이다.
나는 20살이 넘고 나서야 부모님과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엄마와 드라이브하면서 관광지에 놀러갔었다.
"여기 20년 전에 엄마가 아가씨 때 와봤던 곳이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울컥 했다. 우리를 키우느라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놀러다니지 않고 맛있는 걸 덜 먹으면서 우리를 먹였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잔상처럼 남았다.
아빠의 증명사진을 보는데 머리 숱도 많고 미남이셨다. 짙은 쌍꺼풀과 높은 코에 피부도 지금처럼 까맣지 않았다. 트렌치코트와 양복을 입은 세련된 모습의 아빠, 낚시하는 모습의 아빠가 사진에 담겨 있었다.
매일 쉬는 날 없이 일하러 나가시면서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다. 안 보여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 매일 반주로 술을 한잔 기울이면서 가장의 힘듦을 털어버리신 것 같다.
내가 부모님의 마음에 까맣게 칠한 적이 많이 있다. 자전거를 사달라고 서럽게 울면서 학교에 안 가겠다고 난리를 부리기도 했고, 용돈 때문에 울기도 했다. 성적이 안 좋았던 적도 많았고, 부모님이 원하던 진로로 가지 않았다. 친구나 지인들, 직장 동료들의 눈치나 행동은 유심히 잘 관찰하면서 정작 내가 관찰하고 더 잘 대해야 할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그 방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방을 내가 까맣게 칠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부모님의 방을 유심히 지켜보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일상이 꽤 재미있다. 처음에는 돈 쓰지 말라고 하시더니 같이 다니는 드라이브나 여행을 즐기시게 됐고 커피 마시면 그 돈 아깝다고 하시더니 이젠 걷다가 뭐 마실래?? 하고 물어보신다. 사실 자식 돈이라 아까워서 못 쓰시는 거였다. 이 돈이 얼마나 힘들게 버는 돈인지 아셔서 오히려 미안해하시는 두 분의 모습이었다.
정작 부모님은 나를 키울 때 돈을 아낌없이 쓰셨으면서 부모님의 그늘 아래 잘 클 수 있었는데 자식 돈은 미안하시단다. 그렇다고 아주 안쓰시지는 않는다. 같이 드라이브가면 아이처럼 좋아하고 신나하신다. 같이 갈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놀러다녀야 겠다. 사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 말의 뜻을 이해할 때는 남아있는 시간이 정말 없다.
내 방에서 방문을 열고 나가면 거실에서 이어지는 곳이 부모님의 방이었다. 내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거나 닫고 나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는데 나와보니 꽤 넓은 방들이 있었다. 너무 늦지 않게 내 방을 열고 나와야 한다.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는 걸 계속 봐오고 있었고, 나도 같이 가서 할머니를 돌봐드리다보니 그게 당연하다. 엄마는 할머니와 헤어지기 전 자녀로서 후회가 남지 않게 할머니를 더 자주 찾아뵙고 있다. 엄마가 늦게 자동차를 배우신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엄마랑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둘이서 투닥투닥 많이도 싸운다. 내가 엄마랑 싸우는 것처럼. 나이가 든 부모님은 말을 듣지 않으신다.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갔다.
아빠 엄마의 젊은 시절에는 휴대폰이 없어서 어떻게 약속을 잡았냐고 여쭤보니 그냥 밖에 나가면 친구들이 있었다고 한다. 애들이 아직 안 나왔으면 그 집 앞에 가서 진수야 놀자 하고 외쳤다고 한다. 낭만이 넘치는 시대이다. 텔레비전있는 집에 가서 애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다같이 시청하는데 진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어머니들이 밥먹자하고 소리치시면 아이들이 다같이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부모님의 결혼 사진을 봤는데 힙했다. 결혼식날 신부 화장이 하나도 촌스럽지 않았다. 그때는 사자머리 웨이브에 화려한 화장과 엄청난 귀걸이를 한 신부화장이었는데 엄마의 젊은 시절에는 다 소화 가능했다. 딸기우유색 립스틱이 어울리다니.. 제주도에 신혼 여행 가셔서 찍은 사진이 정말 멋있었다.
자신을 가꾸고 꾸밀 시간에 우리를 가꿔주고 예브게 옷 입히느라 자신들의 옷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으셨다. 한 해 한 해 넘어갈수록 자녀의 사진이 많았다. 부모님의 사진은 가족 사진 찍을때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다 클때까지 부모님의 사진이 얼마 없다. 지금 우리가 크고나서는 두분이서 여행도 다니시고, 사진도 많이 찍으신다. 사진 속에 공백이 있는게 슬프다.
공백을 지금 다시 채울 수 없어서 시간이 아까운거다. 머리속에 추억은 남아 있지만 다시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지금에서야 찍는 부모님의 사진도 중요하지만 그때만 볼 수 있었던 부모님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 부모님이 젊으실 때 지금처럼 인스타그램이 유행했다면 사진을 많이 찍는 문화가 있었다면 사진이 더 남아있었으려나.